"카이로와 바그다드를 공습한 것이 이스라엘군이 아닌 미군이었단 말씀이십니까?"


태별이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면서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제임스 스미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라크와 이집트군의 방공망은 유치하기 그지없더군요. 이제 우리 미군이 제공한 제공전투기 150기가 이스라엘에 도착했고, 이미 이집트군과 이라크군의 주력은 격멸되었으며, 미군 12만 6천 명이 수에즈를 점령했으니 중동 전역도 금방 막을 내릴 것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제임스 스미스가, 자기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청을 떨었다.


"아, 소비에트 제8대 서기장 게오르기에게 정치 자금을 제공한 게 우리 미국이라는 걸 얘기했던가요?"


"뭐라고요?"


깜짝 놀란 태별이 고개를 들었다. 제임스 스미스가 빙그레 웃으면서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가리켰다.


"이제 대영제국을 쓰러뜨렸으니 소련의 군비를 축소하고 핵 보유량 역시 감축해도 된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소련의 정치인이 있다는 건 우리에게 행운이었습니다. 우리는 스위스 은행을 통해 게오르기 이바노프에게 정치 자금 1,200만 달러 이상을 제공했고 그로서 그를 서기장으로 만들었지요. 그 결과 소비에트는 450만 명에 육박하던 군대를 70만까지 감축했고, 전투기, 탄약, 전차 등의 생산도 어리석을 정도로 줄여놨습니다. 7만 6천 발에 육박하던 소비에트의 핵폭탄은 이제 겨우 4천 발 남았습니다."


"...그 모든 게 의도된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폴란드 봉기군에게 15억 발의 총탄과 5천 문의 대전차 무반동포를 비밀리에 제공한 것도 미국이라고 말씀드렸나요?"


태별은 놀라 자빠질 뻔했다. 제임스 스미스가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인도 독립군에게 대량의 120mm 박격포를 제공한 게 저희 미국이라는 이야기는 드렸나요? 아니면 일본 제국 독립군의 탄약 중 70% 이상이 우리 미국에서 만든 거라는 이야기는요? 아니면, 당신네 이거명을 끌어내리고 윤지영을 당선시켰던 그 유명한 미국 닭고기 조류독감 설이 우리 미국에서 고의적으로 퍼뜨린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는지요?"


"당신이었군요."


태별이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하고, 예비하고, 오늘날의 상태까지 끌어낸 장본인이, 바로 당신이었어."


제임스 스미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 그러면 안 되었나요?"


"어째서?"


태별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제임스 스미스를 노려보았다.


"글자 그대로 온 세계를 당신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이미 그만한 힘이 있다는 뜻이오. 그렇다면 단지 더 큰 권력이 목적은 아니었을 것. 그렇게 세계를 주무르면서 얻으려 한 것이 무엇이오?"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과정에서 암투와 밀거래가 있었습니다."


제임스가 다리를 꼬아 탁자에 올려놓으며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그건 옳지 않은 거죠."


"그렇다면 당신은 옳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라고 하기보다는."


제임스가 빙그레 웃고 대답했다.


"옳지 않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말씀을 드리지요."


"그게 무슨..."


제임스가 시계를 보더니, 박수를 딱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오후 7시 20분! 시간이 됐습니다. 자, 발코니로 나오시죠."


흑악관의 발코니로 걸어나온 태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제임스가 하늘을 가리켰다.


"자, 보십시오.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온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더니 흑악관 저편에서 흰 연기를 뿜어내며 불덩이가 솟아 올랐다. 태별은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그것은 단지 캘리포니아에서만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똑같은 것 12만 5천 개가 미국 전토와 하와이, 알래스카, 그리고 세계 바다에 퍼져 있던 미합중국 해군 소속의 전략원잠들에서 솟구쳤다.


이어서 12만 5천 발의 핵폭탄이 삽시에 소련 전토에 쏟아져 내렸다. 핵탄두 한 발이 모스크바에 떨어지는 즉시 소련의 핵무기 시스템인 지구 최후의 날 기계가 가동되었다. 소련이 보유하고 있던 3,800여 발의 핵폭탄이 최후의 발악으로 솟구쳐 올랐다.


곧이어 미국 전토에 대기하고 있던 1만 개의 사드가 그 4천 발도 안 되는 소련의 마지막 발악을 모조리 요격해버렸다. 소련이 쏘아올린 3,800발의 핵폭탄은 단 한 발도 미국 본토에 착탄할 수 없었다. 반면 미국이 삽시간에 쏟아 부은 12만 5천 발의 핵폭탄은 순식간에 소련 전토를 핵으로 찜질해 버렸고 단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소련의 3억 인민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렸다.


미국이 쏜 핵폭탄 중 1,240발은 대영제국 본토에 쏟아져 내렸다. 런던의 빅벤, 웨스트민스터, 타워 브릿지 등 한때의 시대를 풍마했던 랜드마크들이 핵폭발 속에서 한 줌 재로 변해버렸다. 대영제국의 핵 요격 체제는 있는 힘을 다해 미국의 핵탄두를 요격했지만 1,240발이라는 숫자는 그 정도로 감당 가능한 수량의 공격이 아니었다. 그건 재난에 가까웠다.


같은 시각, 대서양 버뮤다 일대로 미군의 공습이 가해졌고 대영제국의 대서양 함대 잔존 세력까지 일소당했다. 이스라엘군은 서쪽으로 카이로, 동쪽으로는 테헤란까지 밀고 들어가고 있었으며 미군이 수에즈를 점령했다. 히로시마와 고쿠라에도 핵이 떨어졌고, 일본 제국 독립군은 더 이상 대한제국을 상대로 그 성스러운 독립전쟁을 치를 능력을 상실해버렸다.


동시에 인도에도 핵이 떨어졌다. 전 세계에 미국의 무차별적이면서도 철저히 계산된 전략적 학살 타격이 가해졌고 그건 고작 10분 만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의 2할을 지워버렸다. 무차별적인 핵 폭발로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지구 대기의 평균 기온은 40도까지 올랐고, 기류가 역류하면서 고비 사막에 비가 내렸다.


사드가 소련의 핵폭탄을 요격하는 불꽃이 7시 20분의 하늘을 가득 메운 노을을 배경으로 불꽃놀이처럼 온 하늘에 번쩍였다. 제임스가 양 팔을 벌리고 그 황홀한 절망 앞에 서서 태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포효했다.


"Welcome to the America, The Great, Again(다시 한 번 위대한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미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도 이길 나라의 최고 권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스미스는 기다렸다. 그는 중동에 이스라엘을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대영제국, 소비에트, 대한제국의 식민지에 비밀리에 지원하여 내전을 야기했다. 소련과 대한제국의 정권을 자멸적인 인물이 주도하도록 어둠 속에서 간섭했으며 그것은 모두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 미국이 저 강대하다는 소련을 이길 확신이 서고, 대한제국을 명백하게 자신의 동맹으로 끌어들이고, 대영제국으로부터 대서양 패권을 점탈해올 수 있다는 것이 자명해지기 전까지 그는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기회가 오자 전격적으로 행동했다. 그렇게 그는 세계를 굴복시켰다.


"제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느냐고 물으셨습니까?"


제임스 스미스가 눈을 찌푸리면서 태별을 내려다보았다. 태별은 비틀거리다가 절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제임스가 석양을 등지고 이글거리는 그의 눈동자로 태별을 쳐다보았다.


"당신들은 세상을 "천하"라고 한다지요? 어디,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천하를 손에 못 가져보고 죽는대서야, 억울해서 살겠습니까?"


"당신은 이미 천하를 쥐고 있었습니다."


태별이 씁쓸하게 말하자, 제임스 스미스가 다시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가진 것(Own)이 아니라, 지배(Rule)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둘은 차이가 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