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 복창을 시키는 판사님도 소개해야겠네요. 무슨 군대 교관 출신 판사님이냐고요? 이분은 너무나 온화한 인상의 여성 분입니다. 서울 가정법원에서 부장판사로 일하고 계신 분인데요.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많이 알려진 일화의 주인공입니다.

여러번 절도와 폭행 사건을 일으켜 소년법정에 선 16살 소녀에게 단 한 가지, 법정에서 일어나 판사의 말을 따라서 외치게 하는 처분만을 내린 분이죠. 남학생 여러 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후 자존감을 잃고 자포자기한 삶을 살고 있던 소녀에게 이분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라,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운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다 따라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 소녀에게 다시 이 분은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지금처럼 힘든 일도 이겨 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법대 앞에 선 소녀의 손을 잡아 주며 말하길,

"마음 같아선 꼭 안아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 사이를 법대가 가로막고 있어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하구나."

이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제판을 한 이 선배 법관의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감동과 존경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보니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감성팔이 재판' '온정주의 재판'이라며 무원칙한 용서라고 비판하던 의견도 있더군요.' (후략)

문유석 - 판사유감 



'먼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폭력의 잔혹성'에 대해 살펴보자. 나는 21년간 법관 생활을 했으며, 지난 8년 동안 소년 사건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소년법정에서 1만 2천여명 이상의 소년범을 만나 온 나의 경험으로는, 8년 전과 지금을 비교할 때 폭력의 잔인성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중략) 청소년범죄의 흉포화 여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위의 책(범죄백서 2016)에 따르면, 소년범죄에서 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20건에서 2015년 16건으로 큰 차이가 없으며, 강도의 경우 38.8퍼센트에서 15.9퍼센트로 오히려 큰 폭으로 감소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약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잔인한 범죄를 저질른다는 이야기도 반드시 맞는다고 보기 어렵다. 예외적인 경우가 간혹 있겠으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런 의도를 가지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후략)

천종호 -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위의 두 판사들의 글은 무조건적인 처벌보다는 교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학교폭력 관련 회의에서 겪었던 일이다. 소년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는 판사가 갑자기 '이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안아준 적이 있느냐'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자신은 재판을 하고 나서 소년범들을 꼭 안아준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진심으로 반성하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꽤나 감동적인 연설이었고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아이들에게 좀 더 정성과 사랑을 기울이자는 아름다운 결론을 내리며 자연스럽게 회의는 끝났다. 추악하고 황량했다.

설마 그 아이들을 안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혹 누군가 안아주었다면 그렇게 잔혹한 가해가 없었을까? 불행인지 모르나 내가 만난 학교폭력 가해자 중에 프리 허그로 교화될 수 있는 아이들은 없었다. 검찰청이나 법원까지 오는 길은 우연히 잘못 들르게 되는 길이 아니다. 특히 소년 법원까지 가는 아이들에게는 대개 많은 기회와 관심이 부여된다. (중략) 흔히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이는 처벌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 처벌하지 말란 뜻은 아니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고기는 성인병을 유발할 우려가 있으니 되도록 삼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감동적으로 행복하게 해결했다고 믿고 싶고, 보기 싫은 진실이나 현실은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중략) 인권 의식은 자신이 귀중하다는 인식이 아니다. 자기가 소중하다는 것은 굳이 안 가르쳐도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목숨처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주관적인 자기 환상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인지편항과 우월환상을 통해 자신은 옳고 소중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자기에 대한 사랑이니 힐링이니 하는 것은 적당히 해도 된다. 지나치면 '나는 오늘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했다'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허세가 되어 버린다.'

김웅- 검사내전 

이 검사의 글에선 처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어느 주장이 더 옳다고 생각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