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정협회는 민정협회 -> 제국민정회 -> 제국민정당 -> 황국민정당으로 그 당명을 바꾸고, 독립협회는 독립협회 -> 대한독립회 -> 대한협회 -> 대한융회 -> 대한애국신민당 -> 대한정우회로 그 당명을 바꾼다. 그러나 정치사 설명에서는 편의상 민정협회와 독립협회로 고정해서 부른다. 이 두 당이 아닌 다른 당이 집권하는 것은 제국 최후반기의 일이며, 이때의 당은 처음 창당될 때의 당명인 제국해방당, 정창협회, 하나되다로 부른다.



[광무 시대: 1864~1894]

광무 시대는 제후국이었던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칭제건원한 광무제 고조(재위 1864년~1894년, 황제 1878년~1894년)의 시대이며, 동시에 대한제국 역사를 통틀어 최대의 전란의 시대였다.


신미전쟁(미국의 강제 개항. 1871), 병자출병(대한제국의 간도 침략. 1876~1877), 광무전쟁(류큐 종주권을 둔 일본 제국 - 대한제국의 분쟁. 1878), 요동전쟁(대한제국의 만주 및 요동 침략. 1879), 극동대전(대한제국의 경진대출병을 통한 일본 제국 침략과 청의 요동 수복 시도,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개입으로 벌어진 전 동아시아적 전쟁. 1880~1881), 정해동정(대한제국의 내정간섭으로 인해 일본이 반발하면서 일어난 전쟁. 1887), 한영전쟁(극동대전의 후폭풍으로 일어난 대영제국과 대한제국의 전면전. 1892), 환도의 밤(의친대군과 민자영의 후계권 쟁탈을 위한 내전. 1893)에 이르기까지, 광무제 시대에 대한제국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렀다.


대한제국이 치른 전쟁 중 한영전쟁과 신미전쟁을 제외한 모든 전쟁은 대한제국의 일방적인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이었으며, 이에 따라서 분명 광무제 시대는 민정협회와 독립협회가 등장하면서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무신 세력의 집권이 이어졌다. 그 종주는 극동대전에서 홍콩 해전으로 대영제국 동양함대를 궤멸시켰던 병조판서 홍성익과, 북방에서 자신의 사병 조직인 사포대를 통해 청나라를 굴복시켰던 간도관리사 이범윤이었다.


이 세력을 이른바 벽신이라고 하는데, 홍성익이 엄연히 문신이었던 데다가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적 치세가 발흥하던 당시 대한제국의 정치 상황에서 독자적 패권노선을 주장했던 독립협회가 이들과 손을 잡았으므로 벽신 세력은 거의 전 조정을 장악했다. 벽신 세력에 맞서는 집단은 범민족주의와 교린정책을 주장하는 민정협회였지만, 실상은 민자영(명성황후)과 그 친척들의 어용정당이었다.


그러다가 환도의 밤으로 정권을 잡은 의친대군이 민자영과 여흥 민씨를 무너뜨리고 민정협회에 대하여 대규모 숙청을 감행하면서 민정협회는 대거 물갈이되었고, 소장파 야당으로 그 위치를 굳히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의친대군을 황제로 밀어줬던 독립협회와 벽신, 그리고 만주의 사포대 세력이 워낙 강성했고, 의친대군이 마침내 후계의 자리를 거머잡으면서 민정협회의 입지는 여전히 좁았다.



[건양 시대: 1894~1919]

건양 시대는 광무 시대에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솟아오르기 위해 몸부림치던 것과는 여러모로 다른 시대로, 패권을 공고히 하고 아시아의 맹주로서 말뚝을 박는 시대였다. 때문에 이 시기에 치른 대부분의 전쟁은 딱 1번만 빼고 대부분 대규모 전란이 아니었다.


이때 대한제국이 실질적으로 치른 대규모 전란은 4회로 의화단 전쟁(청나라에서 일어난 의화단에 대한 토벌전. 1899), 임인동정(일본 메이지 의병에 대한 토벌전. 1902), 북일본 대토벌 작전(일본 강제병탄 후 의병 및 본거지에 대한 대학살. 1912), 제 1차 세계대전(사라예보 사건으로 촉발된 식민제국 해체전쟁. 1914~1919)이다. 실질적으로 치른 전쟁의 수는 광무 시대보다 훨씬 적지만, 마지막 1번의 전쟁에서 300만 대군을 동원했기 때문에 실제로 건양 시대에 전쟁에 투입한 인력과 자본은 광무 시대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의화단 전쟁을 마친 뒤 여군에 대한 공신책봉이 논란이 되면서 여관용제(여성에게도 관직의 길을 열어 주는 제도) 등이 발생했고, 또한 악습이었던 노비제가 실질적으로 철폐된 시기("현재 보유한 노비는 그 소유를 인정하나, 앞으로 단 한 명도 더 노비가 될 수 없음")가 이때이다. 동시에 일본 제국에 대한 완전한 강제병탄이 이루어진 시기였고, 청나라를 제후국으로 전락시켜 버리며 부정할 수 없는 동아시아의 종주국으로 등극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가장 크게 발흥한 세력은 다름 아닌 초신이다. 벽신의 후계세력으로 등장한 초신은 처음으로 대한제국 관직에 오른 여인인 박태연과 한영전쟁에서 영국 해군 300척을 격침시키며 충무공의 현신으로 불린 한수전을 중심으로 하는 무신 세력이다. 벽신의 비호 아래 성장한 후계세력이니만큼 역시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집단이었다.


건양제는 한때 세조나 태종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황권의 군주였으나, 박태연과의 정권 경쟁에서 패배하며 허수아비로 전락했고, 박태연과 한수전은 부부가 되어 후대 황제인 경덕제의 후견인이 되기까지 하면서 장기집권할 준비를 끝내 버렸다. 이후 건양제는 술에 절어 살다가 어느 궁녀에게 승은을 내리던 중 잠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자 "내가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위협했는데, 술김에 한 농담이었지만 이 궁녀는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그날 밤 건양제를 목 졸라 죽여 버렸다.



[경덕 시대: 1919~1921]

경덕 시대는 건양 시대 1차 대전의 후폭풍을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이를 성공적으로 처리한 시대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공황은 대한제국까지 번지지 않았으며, 동시에 경덕제는 미국의 대공황까지 내다보고 이에 대비해 일자리를 늘리는 등 많은 대응을 했다.


그러다가 박태연, 한수전, 중전, 황태자, 나머지 두 아들까지 함께 황금마차를 타고 가던 중, 1921년 일본 독립운동가의 폭탄 의거로 몰살당하면서 황제가 승하했다. 하루아침에 핵심 구심점인 박태연과 한수전이 죽어 없어지고 여타 초신들은 황제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론에 휘말렸으며, 마침 총선에서 승리한 민정협회의 급격한 성장으로 독립협회의 세력이 축소되며 광무시대부터 3대에 걸쳐 온 실질적 무신정권은 종언을 고했다.



[만윤 시대: 1921~1950]

만윤 시대는 경제 부흥의 시대로 만윤성세라 불리울 정도로 중흥한 시대였다. 만윤성세가 없었다면 광만성세도 없었을 것이고, 대한제국이 파시즘으로 타락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950년 즉위한 만윤제는 경덕제의 동생이었으며, 민류황후 차씨는 민정협회의 지지를 받은 인물이었다. 이 시대는 민정계 정당이 가장 크게 부흥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민정계 정당은 이전까지 집권해본 적 없는 티를 강하게 내며, 특히 전란기에 총체적으로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전 세계는 대공황으로 시끄러웠으나, 대한제국은 소련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데다가 1926년 미국과의 교역을 대폭 감축했기에 대공황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에는 급기야 대영제국이 나치 독일에게 굴복, 소련의 단독 대독전이 개시되자 국제정세는 격변했다.


소련에게 전쟁물자를 팔아먹으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대한제국에게 나치 독일은 불만을 가졌고, 이에 따라 중화민국에게 대거 기술 이전과 무기 판매를 승인하며 대한제국을 묶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1942년 개시된 북중국 전쟁에서 고작 4달 만에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까지 함락시키며 독일의 모든 구상을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 병사들은 중국인에 대한 대학살과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며, 당시 친정에 나선 만윤제는 이 참담한 전쟁을 두 눈으로 보고 우울증에 걸려 버렸다. 난징에서 대한제국이 중국에 가한 전쟁범죄는 전 세계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대한제국은 이것으로도 모자라 중화민국의 각 도시와 거주구들을 소이탄으로 무차별 폭격하는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민정협회는 이와 같은 전쟁범죄를 통제할 수 없었고, 그 여파로 문민통제까지 붕괴하는 대참사를 맞닥뜨렸다. 이 시기에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를 법령 반포로만 통제하느라 온갖 법이 난립하여, 본래 1만 개 조항 정도였던 대한제국 법률이 230만 개로 폭증, 대한제국의 법 체계가 개박살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2차 대전기에 대한제국은 큰 인명 피해 없이 중국 북부 전 지역을 손에 넣었고, 동시에 소련에 대한 전폭적인 군수지원으로 소련이 단독으로 나치를 무너뜨리며 전 유럽을 공산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소련은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 괴뢰정부를 세우고, 원래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와 인도차이나를 대한제국의 위임통치령으로 넘겨주었다. 이로서 대한제국은 동남아시아까지 대거 진출하며 대영제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된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난 1947년, 민정협회의 총수가 된 최노을의 대대적인 개혁으로 무너졌던 문민통제가 확립되었으며, 민정협회의 당내 안정도도 높아졌다. 이리되며 민정협회와 독립협회(이 시점의 당명은 각각 제국민정당과 대한융회)의 완전한 양당체제가 정립되었다. 


어쨌거나 전쟁의 승리로 중국 북부와 동남아시아를 얻었지만, 이후 민류황후의 죽음과 만윤제의 자살로 시대가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