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건물, 그중 특히 천수각(센고쿠 지다이에 요새 중심의 사령탑으로 지어진 건물)은 매우 높은 건물처럼 생겼다.


때문에 일본 전통 건축 중에서는 높은 게 상대적으로 많이 보임. 화려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함.



한국도 황룡사 9층목탑이나 미륵사 삼탑 같은 높은 건축들이 있었음.


전쟁으로 모두 불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우리 조상들은 이것들을 재건하지 않아서 씨.발 웅장한 유적들을 남겨주지 않은 것일까? 한번 알아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에도 고층 건물의 "유적" 자체는 그렇게 많이 안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존나 웅장한 천수각으로 유명한 오사카 성은 관광 목적을 두고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한 거임. 그 외에도 대부분의 천수각들은 목조를 사용하더라도 현대 기술력(크레인, 공장제 현대 기와나 강철 프레임 등)을 동원해 복원한다.


워낙 복원이 엉망진창으로 고증 무시하고 이뤄졌던 과거가 있어 심지어 안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경우도 있음.


이게 천수각의 현실.


믿기지 않겠지만 천수각 내부임.


일본의 성들 중 지어진 당시의 모습을 별 위해 혹은 대대적인 재건 없이 부분적 순수목조 보수공사만 해서 유지해 온 성은 현존하는 천수각 중 반도 되지 않으며, 그중엔 가로 너비가 좁아서 높아 보이는 거지 부피 자체는 경회루보다 작은 소형 천수각도 꽤 있음.


현존하는 천수각 중 "목조상태"를 완전하게 유지하고, 콘크리트 재건이나 강철 프레임 보강 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은 히메지 성의 천수각임. 그 높이는 석축과 산 높이를 제외하면 31m 정도 되는데,

근정전도 석축 제외하면 22미터임. 그림 크기 비례는 ppt 이용해서 똑같이 비율 맞춘 거임. 둘이 같이 세워두면 딱 저 정도 차이임.


그냥 산 위에 석축 쌓고 우뚝 솟은 전쟁용 망루이기 때문에 위압감 주는 거지, 천수각의 덩치 자체는 그렇게까지 존나 크지 않음




둘째로, 일본의 건축에서 주로 사용하는 목재인 삼나무는 매우 가볍고 위로 길게 뻗기 때문에 건물을 높게 짓기 좋음.


한국의 삼국시대 건축이 유독 웅장하고 거대한 이유는 당시 한국이 건축에 주로 사용한 나무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참나무였기 때문임. 그러나 조선시대로 들어서면서 한반도의 기후가 변화하고 소나무 비중이 높아지며 점점 집의 무게도 늘어남. 이는 곧 건물을 높게 올릴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됨.


오히려 소나무로 20미터권의 대궐을 유지한 건축기술이 찬사를 받아야 할 지경임.




셋째로 다 알겠지만 씨.발 불탔기 때문임.


위에 있는 것은 고구려 안학궁의 치미로 그 높이만 2미터에 이름.


치미가 뭐냐?


네. 이거요.


황룡사 금당치미도 높이가 180cm를 넘음. 치미가 거대할수록 건물은 당연히 더 거대해지고, 삼국시대의 사찰이나 대궐들은 현재 남아 있는 조선의 것들보다 거대했을 확률이 대단히 높음.


그 이유는 좀 더 현대적인 방향성에서 찾아야 할 거 같은데,



1937년 파리 박람회의 모습으로, 박람회장 건물을 잘 보자. 왼쪽은 나치 독일이고 오른쪽은 소련임.


양쪽 모두 호스트인 프랑스의 박람회장보다 훨씬 거대하고 높은 건물을 지었으며, 서로 더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 경쟁함. 국가 간 자존심, 국력 과시의 경쟁을 "높이"로 표현한 것.


건축 관련 유튜버 가운데 독보적인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홍대 건축 교수 유현준은 "대부분의 마천루는 권력과 자본의 과시를 위한 목적성을 항상 병행한다"고 말했으며, "높은 건물은 곧 권력과 자본을 위치에너지로 바꾼 결정체"라고 주장함.


다시 말해 삼국시대에 유독 더 높고 거대한 건물, 사찰, 대궐을 지으려는 경쟁이 일어난 까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자신의 국력을 과시하고 백성들에게 중앙권력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던 목적성이 매우 강할 수 있다는 이야기임.


지나치게 모던한 분석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미 기원전 10세기보다도 더 전에, 이집트와 오리엔트 패권을 두고 다투던 히타이트 제국이 그 수도인 하투사에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도 더 거대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 존재함.


스핑크스 문이라고 부르고, 높이는 피라미드보다 낮지만, 폭은 피라미드보다 훨씬 큼. 이미 예전부터 인류에게 "높고 거대한 건축물"은 곧 국력과 자본의 상징이었던 것.


다시 말해서, 오히려 높은 건물이 구태여 지어지지 않는 시대야말로 국력과 자본을 과시할 필요성이 부족한 소위 말하는 태평성대인 것임.


일각에서는 "조선이 유교사상으로 검소를 추구했기 때문에 건물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조선의 대궐은 고려의 만월대보다 훨씬 더 크고, 그 숫자도 많음. 유교가 건축의 양식(화려한 처마나 다락 등)을 검소하게 바꿨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건축물 자체의 규모"를 줄인 것이 유교라면 불교국시의 고려 건축에서도 황룡사 9층탑 등 기존 유적을 보수하는 정도로 만족했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함.








+ 첨



온돌 이야기가 나와서 첨부하자면, 실제로 상술한 유현준 교수는 "온돌 때문에 고층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던 바 있는데 이는 "주거용 건물에서" 고층건물이 나오지 않은 까닭을 말한 것임.


애당초 사찰의 고층 탑들은 주거용이 아님. 심지어 아예 3층 이상 올라갈 수도 없는 탑들도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탑을 짓는 가장 큰 이유는 그냥 "멋있기" 때문임.


한국식 온돌의 원조인 고구려도 정릉사 같은 곳에는 고층탑 얼마든지 지었다.


거주공간이 고층화되지 못한 이유는 온돌이 답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단순히 조선시대에 고층 건물이 지어지지 않은 이유로는 온돌이 충분한 답이 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