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태조"라는 명칭으로 널리 불리는 군주는 크게 둘임. 하나는 고려의 개국자인 태조 왕건이고, 나머지 하나는 조선의 개국자인 태조 이성계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고구려에도 태조라는 왕이 있음.

이 무덤은 칠성산 871호라 불리우는 고구려의 돌무지무덤으로, 주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고구려 태조왕의 무덤으로 비정하고 있음.


고구려 왕사는 추모왕 주몽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리명왕, 대무신왕, 민중왕, 모본왕으로 대가 이어지고, 모본왕 다음에 즉위하는 군주가 태조왕 내지 태조대왕임.


광개토대왕이나 미천왕에 다소 밀리는 감이 있지만 고구려 역사를 백제, 신라보다 수백 년 이상 앞서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함. 근본적으로 국가가 점과 선 단위로 이루어지는 지배를 면과 경계 단위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소국들을 정리하고 중앙집권화하는 작업이 필요함.


백제는 마한, 특히 남부의 침미다례를 완전 복속시키는 일을 무령왕 대에 들어서야 완료하고(나중에 이거 갖고 얘기 좀 하겠음), 신라는 최전성기라고 불리우는 진흥왕 대에야 가야를 정리했는데,

(지도는 도지챈펌)

고구려는 이미 태조왕 당시 동옥저, 갈사, 조나, 주나, 현도군 등을 공격하여 흡수하고, 나아가 한나라가 지배 중이던 요동에 쳐들어가 요동 태수의 목을 자르는 등 교통정리에 돌입함.


53년에 즉위해 146년까지 재위하며 19년간 상왕으로 살아 118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정황상 구라같고, 중국 쪽에서 확인 가능한 사료에서는 121년에 태조왕이 죽었다고 쓰고 있음. 삼국사기에서도 태조왕 다음 왕인 차대왕이 121년부터 "섭정"을 한 것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121년에 태조왕이 죽었고 차대왕은 태조왕의 동생으로서 섭정이라기보다는 권한대행격으로 있었을 가능성 또한 있음.


어쨌든 훗날 동아시아 패권을 좌지우지하게 될 고구려의 역사를 실질적으로 쏘아 올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여기서 좀 이상한 걸 느낄 수가 있는게, 위에 있는 태조의 묘호를 받은 왕건과 이성계는 분명한 창업군주임. 


물론 태조왕에게 붙은 태조는 묘호가 아닐 수 있음. 묘호는 왕이 죽고 나서 붙는 건데 태조왕은 자기 스스로 태조대왕이라고 자칭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


그러니까 그냥 수상할 정도로 창업군주에게 붙는 묘호와 비슷한 시호를 가진 왕일 수도 있음.


근데 몇몇 책들을 들춰보면 좀 수상한 냄새가 더 진하게 나고 가실 기미를 안 보임.


이상하게 [삼국유사]에서는 유리왕, 대무신왕, 민중왕을 고씨가 아니라 해씨라고 기록하고 있음.





그리고 동시에, [동서강목]에서는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추모왕)을 해주몽이라고 기록하고 있음.


그럼 여기서 합리적 의심(?)을 해보자.


사실 시스템적 차이나 국성을 제껴놓고 그냥 국체의 유지를 놓고 본다면, 이성계는 "창업군주"가 아님. 이미 기존에 있던 국가인 고려의 어보를 강탈했고, 고려라는 국호도 바로 고치지 않았으며, 고려의 대왕대비에 의해 왕위를 공양왕에게서 "승계"받은 것임.


하지만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국가의 상징성 그 자체인 국성이 뒤집힌 것이었고, 따라서 단순히 왕이 왕씨에서 이씨로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자체가 창업이었던 것임. 이걸 역성혁명이라고 함.


다시 말해서,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국성을 바꾸면 태조가 됨.


그렇다면 태조왕도 혹시?


???: 시발 아니야


그렇다 잘못하면 애먼 정복왕 갑자기 찬탈역적 만드는 꼴이니까 좀더 주의깊게 들여다보자


태조왕 바로 앞 왕이 누구일까? 바로 모본왕이다. 모본왕의 기록에는 해씨라는 기록이 없다. 그럼 혹시 모본왕 때 성씨만 해씨에서 고씨로 바꾼 건 아닐까?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만한 게, 아무리 고구려가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국가라고 해도 유리명왕 시대부터 줄곧 부딪혀온 부여와 같은 국성을 쓴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수 있음.


삼국사기 모본왕 기록을 통해 검증해보자.


???????????????????


?????????????????????


그렇다. 씨발 이것저것 들춰보다 보면 뭐지 씨발? 싶어지는 것들이 많음


진짜로 태조왕은 해씨 왕조를 끝장내고 고씨 왕조를 세운 태조이자 창업군주이며 찬탈자일까? 이것을 해씨 고구려설이라고 하며, 현재 국내 고구려 관련 최고 권위자 중 하나인 서울대학교 노태돈 교수의 주장이기도 하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반론이 있음. 우선 고구려는 처음부터 한자를 쓰던 나라가 아님. 중국으로부터 한자가 유입된 것 뿐. 따라서 한자가 있기 전부터 고구려의 왕성은 이미 어떤 발음 내지 단어로서 존재했으리라는 것임.


일단 고구려는 예로부터 태양을 자신의 상징으로 여겼고, 주몽 또한 태양의 후손임. 그리고 아시다시피 태양의 순우리말 표현은 "해"임.


다시 말해서, 기존에 다른 국왕들을 "해씨"라고 기록한 것은 그들이 태양의 후손임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의 국성으로 "해"와 비슷한 발음을 사용하다가, 한자가 들어왔을 때 이를 음가만 따서 발음을 기록한 것이 해씨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국성인 횡성 고씨의 고(高)는 "높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기존에 "음가만 따서 발음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던 해씨라는 표기를 "의미까지 옮기는 방식"으로 바꾸어, 하늘 높이 있는 태양을 수식하기 위해 "높다"는 의미까지 가지고 있는 한자로 성씨를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음.



둘째로, 애당초 고구려에 국성이 둘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뭔 개소리냐 싶겠지만 신라는 진짜 그랬음. 박씨, 석씨, 김씨가 왕위를 돌려먹기함. 비슷한 맥락에서, 고구려의 중심지인 계루부의 성씨인 고씨와, 기존세력인 졸본부여 연노부의 성씨인 해씨가 서로 먼 친족관계로 왕위를 돌려먹기하다가, 어느 순간 고씨가 해씨를 집어 삼키고 단일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음.


그 논거로,



고구려 중흥을 이끈 중요한 왕 중 하나는 소수림왕임. 아마 교과서에서 씨.발 그 망할 놈의 왕즉불, 태학, 율령, 수곡성 공격 등으로 게이들에게 외울 거리를 존나 많이 만들어 준 그 왕일거다.




해동고승전과 삼국유사에 의거하면 이 사람은 거의 확실하게 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명으로 해미류왕(解味留王)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상술한 "성씨가 해씨라는" 군주들에서만 이명 혹은 별칭으로 해 자가 사용되었는데(대무신왕 = 대해주류왕, 민중왕 = 해색주, 모본왕 = 해애루, 유리명왕 = 여해) 이상하게(?) 태조왕 대부터 해를 사용하는 빈도가 급감하더니, 갑자기 소수림왕 때에 해미류왕이라는 명칭이 나옴.


즉, 소수림왕 대에 고씨가 해씨를 완전히 집어삼키는 작업이 끝났다는 뜻일 수도 있음. 소수림왕 대에 고구려가 대대적인 내부 개편이 있었고, 소수림왕 직후인 광개토대왕 대에 고구려가 중앙군을 통폐합하는 작업을 시행했음으로 미루어 보아 고구려 귀족들의 힘이 소수림왕 대를 거치며 크게 꺾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해씨 세력이 고씨에게 완전히 "인수"되면서 소수림왕 대에 국성이 완전히 고씨로 굳어졌을 수 있다는 것임.


아직까지도 해씨 고구려설은 많은 논쟁을 낳고 있으며, 학계 다수에서는 고씨와 해씨를 실질적으로 동일시하지만 소수설인 해씨 고구려설을 주장한 사람이 하필이면 고구려 최고 권위자인 노태돈이라 소수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세력이 상당히 강한 상태임.


 


과연 태조왕은 정말 해씨 왕조를 끝장내고 고씨 왕조를 세운 창업 군주일까? 진실은 아마 무덤 속의 태조왕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