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특징은 역사가 짧지만 나라가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전신인 13개 식민지는 1607년 버지니아 식민지로 시작되었으며, 미국의 건국은 독립을 선언한 1776년에 이루어졌으니 미국의 역사는 식민지 시절을 포함해도 400년을 좀 넘는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1776년에 건국된 미국은 지금도 계속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조선, 청나라, 프랑스 왕국, 프로이센 왕국, 러시아 제국같은 1776년에 있었던 나라들이 그 뒤로 격동의 시대를 지나면서 지금도 같은 나라로 계속 존재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대단한 점이다.


그만큼 미국의 정치 체제는 오래되었으며, 이번에 설명할 미국 헌법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헌법은 1787년에 제정되어 1788년에 비준되고 1789년부터 230년이 넘게 지금까지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 제정되어 비준된 내용이 변화 없이 그대로 내려온 건 아니고 계속 개정되어 왔다.

미국 헌법은 처음 제정되어 비준된 본문 7개조와 그 뒤로 추가된 수정 조항 27개조로 나뉜다. 본문은 연방 의회, 연방 정부, 연방 법원, 그리고 연방을 구성하는 주와 관련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로 미국 헌법은 수정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개정되었으며, 첫 개정은 1791년에 이루어졌고 마지막 개정은 1992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수정 헌법 제 27조는 매우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조항의 내용은 하원의원 선거 때까지 의회 의원들의 급여가 동결되는 것인데 이는 다른 수정 헌법에 비하면 평범한 수준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조항은 사실 1789년에 발의된 것이었으며 1992년에 비준되기까지 203년이나 걸렸다. 미국이 신생 약소국이던 시절 나온 법안이 냉전이 끝나고 전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었을 때 통과된 것이었으며, 우리나라로 따지면 조선 정조 시기에 나온 안건이 대한민국 노태우 정부 시기에 처리된 것이었다.


수정 제 27조가 200년을 넘어서 끝내 비준된 계기는 무려 한 대학생의 학점 때문이었다. 본문 제 5조에 따르면 4분의 3의 주가 수정 조항을 비준하면 해당 조항은 수정 헌법에 비준되게 되는데, 이 조항이 발의된 당시에는 7개의 주만 비준했기 때문에 수정 헌법에 비준될 수 없었으며 이후로도 2개의 주만이 비준했다. 그런데 1982년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학부생 그레고리 왓슨이 이 조항을 가지고 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논문에서 왓슨은 해당 조항에는 비준 기간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각 주들이 비준하면 수정 헌법에 비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의의 조교가 해당 조항은 사문화되었기 때문에 각 주들의 비준으로 수정 헌법에 비준될 수 없다고 하면서 C학점을 준다.


왓슨은 C학점을 받은 것에 대해 억울해하며 주 의회에 편지를 쓰는 캠페인으로 비준하지 않은 주의 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해당 조항을 비준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의회 의원들이 알게 모르게 급여를 올리는 것에 분노하는 사회적 여론이 조성되며 각 주들이 해당 조항을 비준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시건 주가 비준하는 것으로 50개의 주 중에서 38개의 주가 비준해서 수정 헌법 비준 기준을 달성했기 때문에 수정 헌법 제 27조가 비준되었다. 그런데 1996년에 비준하려고 한 켄터키 주가 알고 보니 1792년에 이미 비준을 했는데 이를 통보하지 않고 잊어버렸던 게 드러나면서 비준의 기준이 미시건 주에서 앨라배마 주로 변경된다.

2016년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정치학과의 자크 엘킨스 교수는 왓슨의 일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80년대에 은퇴한 강의 강사 샤론 웨이트에게 학점을 정정할 것을 제안했고, 웨이트는 모두가 그렇게 오래된 조항이 비준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C를 준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않지만 왓슨은 각고의 노력으로 그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A+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면서 정정에 동의했으며, 텍사스 대학교 기준으로는 A가 최고 학점이었기 때문에 텍사스 주의회는 학점 때문에 나라의 헌법을 뒤집은 왓슨을 위해 학점을 C에서 A로 정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