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야, 그러십니까?"


태별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표정으로 안보율 앞에서 뚜벅뚜벅 걸어다녔다. 안보율이 태별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다시 한 번 쏘아붙였다.


"대체 속셈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모든 걸 다 읽어내시고, 대적하시고, 종국에는 꺾으신 좌상 대감이,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시겠습니까?"


태별이 뚜벅뚜벅 걸어가서 원이청(媛利廳: 여성을 이롭게 하는 관청. 현실의 여가부) 서류 하나를 멋대로 꺼내 넘기기 시작했다. 짜증났지만 사헌부 소속의 간원, 대한제국에 사헌부 간원이 읽지 못할 서류는 없다. 풍문거핵과 불문언근의 원칙은 그 형태만 바꾸어 아직까지 존속 중이다. 사헌부 간원은 어떤 서류든지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황제조차 열람하지 못하는 실록까지도. 그리고 탄핵문을 올릴 적에는 정치보복을 피해 논거의 주장자를 대지 않을 수 있다.


"이보세요, 태별."


"아, 예, 좌상 대감."


"대체 나랑 무슨 원수를 졌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대감께서 대과에 여성할당제 시행하시는 바람에 제가 16살 때 낙방했었죠."


안보율의 말문이 막혔다. 태별이 휴대폰을 꺼내서 서류를 촬영했다. 아마도 뭔가 예산을 전용한 흔적이라던가 아무튼 그런 걸 찾아낸 모양이었다. 총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판인데 약점을 많이 잡히면 잡힐수록 불리해지게 마련.


"지금 나이가 몇이라고 했소?"


"스물하나입니다."


"군대는 아니 다녀오셨고?"


"아직입니다."


"올해 중에는 입대를 하시겠네?"


"군대 가지도 않으시는 입장이시면서 왜 참견하십니까? 왜, 소생 군대 가기만 기다리실 생각입니까? 소생은 원이청이 혁파되기 전에는 군대 안 갑니다."


"오, 병역기피를 자수하시는 것이오? 원이청은 절대 폐지되지 않을 것인데."


"아니요, 조만간 입대하겠다는 뜻입니다."


태별이 안보율을 보면서 보기 싫게 활짝 웃었다. 안보율이 그 미소를 보고 짜증 담은 한숨을 내쉰 뒤 쏘아붙였다.


"입대할 생각이면 나 짜증나게 하지 마요."


"왜요, 짜증나게 하면 대흥안령에라도 배치할 생각이십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아서십쇼."


태별이 빙그레 웃고 메롱 혀를 내밀어 보였다.


"소생 허리디스크 때문에 공익입니다."


"저 씨발새끼가."


안보율의 입에서 드디어 욕설이 튀어나왔다. 태별이 무릎을 치며 아쉬워했다.


"녹음할걸!"


"이 사람이 말 한마디 하면 공익 하나 현역 보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계실 것이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죠. 그렇죠?"


태별이 미소지어 보였다.


"정말 그리하신다면, 소생 복직하고 그때 가서 공론화해 드리겠습니다."


안보율은 슬슬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짜증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눈엣가시처럼 계속해서 신경을 박박 긁어놓는 저 건방지고 능청스러운 애새끼를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죽여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헌부만 아니었어도.


"...밥 한 번 먹을까요?"


안보율이 그렇게 묻자 태별이 더더욱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아이고, 대감, 이를 어쩌지요. 오늘따라 소생이 배가 좀 아파서요. 나중에 드시죠."


그렇게 말하고 정말 배가 아픈 건지, 아니면 미리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안보율에게서 돌아서면서 방귀를 크게 뀌고 다시 한 번 메롱을 지어 보이며 문을 열고 나갔다.


안보율이 조용히 코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저 개새끼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