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외치는 백성들의 한가운데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아침의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작은 용상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모든 문이 열려 눈보라가 밀려드는 사정전에 앉아 있던 젊은 황제의 얼굴을, 차가운 겨울바람이 베고 지나갔다.


황제의 앞에 놓인 탁자에는 서류나 책이 아니라 반쯤 빈 술병이 놓여 있었다. 궁녀가 어쩔 줄 몰라하며 아뢰었다.


“황제 폐하, 문을 열고 계시면 옥체가 상하시옵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였던가?”


광만제가 멍하니 입을 열어 그렇게 물었다. 옆에 서 있던 내관이 허리 숙이며 대답했다.


“예, 그렇사옵니다. 오늘이 1979년 12월 25일이옵니다.”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전주 이씨 황조 31대 군주이자 대한제국의 여섯 번째 황제,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대한제국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세운 황제 중 하나였던 광만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충격받은 표정으로 옆에 서 있던 도승지(군주의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시위대는 대영제국의 스파이들이 사주한 게 아니었다고?”


“예.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사옵니다.”


“짐이 틀렸단 말이지?”


도승지는 대답하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광만제가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내관이 달려와서 황제를 받쳐 안았다.


“폐하!”


“...그렇다면... 그러니까, 짐이... 짐이 아무 죄 없는 백성들 머리 위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라고 명령한 거란 말이지?”


광만제가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라부원군은 어디 있는가? 아직 오지 아니하였는가?”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폐하께서 신라부원군을 입궐시키라는 황명을 내린 바가 없으시옵니다.”


내관의 말에 광만제가 다시 한 번 실소했다. 10년 전 청소년의 몸으로 직접 남방의 전쟁에 나가, 자신과 함께 결의하여 절대황권을 세웠던 의형제들을 모두 잃어버린 충격으로 인해 심각한 전쟁 트라우마를 앓았다.


물론 그게 광만제라는 입지전적인 전제군주의 위치를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광만제가 그 트라우마로 아주 작은 결정 하나에 심각한 패착을 했다는 것, 즉 민주화운동을 대영제국이 사주한 폭동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대영제국의 손에 자신의 의형제들을 잃은 사람이라면, 대영제국이 사주한 폭동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고, 정신병 증세가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광만제에게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


“...신라부원군을 입궐시켜라.”


광만제가 숨을 몰아쉬면서 다시 용상에 앉았다.


 

+ + +


 

곧 문이 열리고, 한 나이 든 인물이 걸어들어왔다. 그는 홍만근으로 대한제국 근대화 시기부터 정치 핵심을 쥐고 흔들던 경주 홍씨 가문의 다섯 번째 당주였다. 또한 광만제의 처가이기도 했다.


“...신라부원군.”


홍만근이 고개를 숙였다.


“예, 황제 폐하.”


“짐이 백성들을 죽였소.”


광만제의 말에 홍만근이 조금 놀라 고개를 숙였다. 다들 알고 있었다. 대한제국의 각지 최대도시인 광주, 마산, 부산, 합빈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원자폭탄과 전차로 밀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광만제였다.


대신들 모두 민주화운동의 위세를 보고 두려워했고, 일부는 군경을 투입해 진압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며 또 어떤 지역에서는 군경들이 최루탄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를 투입하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고, 기갑부대를 투입하자는 말은 더더욱 나오지 않았으며, 시위대에게 핵폭탄을 쓰자는 것은 아무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는, 최종 결정권자이자 대한제국 역사상 최강의 절대황권을 누리던 광만제가 전쟁 트라우마로 미쳐 있었던 나머지 이 민주화운동을 대영제국의 간첩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믿어버렸다는 것이다. 1870년대 대한제국이 근대화를 시작한 이래 대영제국은 100년의 앙숙이었고, 광만제가 참전한 남방전쟁도 결국은 대영제국의 식민지인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강탈하기 위해 벌어진 전쟁이었다.


광만제는 자주포여단에 기갑여단까지 투입해 광주, 마산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 백성들을 짓밟아 거의 200여만 명을 죽였고, 부산에서는 전투함까지 투입해 도심을 포격했다. 그렇게 본보기로 밟았는데도 민주화운동의 불길이 꺼지지 않자, 광만제는 합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라고 지시했다.


군 수뇌부가 강경하게 반발하며 원자폭탄을 시민들에게 쓸 수 없다고 주장하자 광만제는 기존의 지휘관들을 모조리 중화민국과의 국경지대로 좌천시켜 버리고 직권으로 투하를 명령했다. 결국 크리스마스 새벽, 합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광만제에게 부산, 마산 등의 간첩들에 대한 수사결과가 전달된 건 원폭 투하 2시간 후였다.


“...짐이 무고한 백성들을 죽인 거요. 전쟁 나갔다 오더니 정신병에 걸려서...”


“폐하, 송구하옵니다.”


“더는 짐에게 국정을 이끌고 갈 능력이 없소. 이건 분명하오. 지금의 짐이 스스로에게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진단이오.”


광만제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장인어른, 이 불초한 사람이 부탁드립니다. 아직 나의 아들이 어려요. 이제 겨우 한 살입니다. 황태자의 칭호조차 아직 받지 못했어요.”


“폐, 폐하. 망극하옵니다.”


“헌데 짐의 상태를 보아하니... 더 이상 짐은 이 나라를 현명하게 이끌어 나갈 수 없는 사람이오. 책임을 지고 당장 용상을 나가야겠지만... 황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줄 수가 없기에,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인 장인을 부른 거요.”


광만제가 뺨을 짚고 탁자에 기대, 씁쓸히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태자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만... 그대가 섭정하시겠소?”


깜짝 놀란 홍만근이 고개를 들었다.


“폐, 폐하, 통촉하소서.”


“아니요. 충분히 통촉했습니다. 이만 물러가세요. 오늘부터 모든 국정은 영의정 당신이 보도록 하세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굳이 나에게 승인받을 필요 없습니다.”


홍만근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진심이시옵니까?”


“그렇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외척에게 권세를 주는 순간 세도정치가 재림한다는 것, 조선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뻔했던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어땠는가. 부와 권세를 한 당파가 독점하고 쥐고 흔드니 나라는 가난해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붕당정치는 차라리 의견 수렴이라도 가능했지, 세도정치는 그런 것도 없었다.


하지만 광만제는 다른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자기 아들을 지켜줄 사람은 지금 장인밖에 없었다. 전제황정의 서릿발 같은 기세 아래서 모든 대신들은 광만제에게 납작 엎드렸지만, 그것은 단지 두려워 엎드리는 것 뿐 광만제를 마음으로 보좌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홍만근이 사정전에서 천천히 돌아서서 나왔다. 그리고 계단을 걸어 내려가며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걸었다. 지난 100년간 경주 홍씨 가문의 최종 목표였던 2차 세도정치가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그것도 황제에게서 빼앗는 방식이 아닌, 황제가 스스로 양도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대한제국의 멸망이 시작되었다.

 


+ + +


 

“이것이 말이 되는가?”


대한제국 평양에 자리잡은 광명서원은 대한제국에서 성균관 다음가는 명문대학이었다.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규모가 큰 대학교이기도 했다. 야금야금 크기를 키워나간 광명서원은 이제 그 면적이 평양 도심의 10% 이상을 차지했고, 본관을 중심으로 200동 이상의 건물이 빼곡하게 둘러치고 1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재학했다.


대한제국의 병역면제법으로 대한제국 조정이 승인한 대학교의 재학생들은 군역을 지지 않는 대신, 일주일에 2시간씩 교련이라는 이름으로 군사훈련을 받으며, 전쟁이 발발하면 신속대응군 및 대민지원군으로 동원되었다. 지난 남방전쟁에 동원되었던 군인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서원, 특히 광명서원의 유생들이었다. 민주화운동을 지지했던 광명서원의 유생들로서는 민주화운동을 전차와 핵폭탄으로 진압한 것도 속이 끓고 분통이 터지는데, 이제 세도정치까지 하겠다고? 나라꼴이 이렇게 굴러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유생들은 일제히 플래카드와 현수막, 화염병과 각목, 죽창을 들고 몰려나가 시위를 벌였다.


“100년 전 나라가 도탄에 빠졌던 세도정치가 재림한다니, 조정은 각성하라!”


“백성들을 짓밟고 불사르는 것에 앞장선 권신 홍만근은 물러나라!”


“유교정치의 근간을 무시하는 절대황권 폐지하라!”


군경들은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방패를 세우고 경고했다.


“물러나십시오, 유생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미승인 불법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군경들은 일사불란해 보였지만 실상은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도 징병되거나, 생업을 위해 이 일에 뛰어든 백성들이었고, 누군가를 두들겨 패거나 싸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분노한 유생들의 눈에 그들은 조정의 졸개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곧 화염병과 죽창이 날아들었고 군경들은 필사적으로 막아 싸우며 버텼다. 심지어 주변의 백성들조차도 화염병이나 죽창에 맞아 다쳤고, 두려워 집 문을 걸어잠그거나 달아나기도 했다. 대학가 상인들은 자신들의 가게 앞에서 곤봉과 각목의 난투극이 벌어지는 꼴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유학을 배웠다는 선비들의 자세입니까!”


“허면 어찌할까요, 군경들 앞에서 깃발이나 흔들고 있을까요? 그렇게 하면 어디 먹힌답니까?”


학생들 사이에서도 대립이 팽팽했다. 이렇게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시위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온건파와, 때려 부수고 시끄럽게 해야 조정이 듣는다는 과격파로. 과격파는 온건파 학생들을 공격하거나 폭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광명서원 과격파 시위대는 시청, 경찰서, 심지어 소방서와 병원까지 들어가 때려 부쉈다.


 

+ + +


 

대한제국 조정 회의실.


“뭐요? 광명서원에서 또 시위가 일어났다고?”


홍만근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대신이 대답했다.


“군경들이 크게 죽고 다쳤으며, 시위의 강도가 워낙 강력하다고 합니다. 유생들 사이에서도 과격파와 온건파가 나뉘어지고, 과격파는 자신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온건파에게도 몽둥이를 휘두르는 중입니다.”


홍만근이 눈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했다. 과격파와 온건파로 패가 갈렸다면, 지금 여기서 무력으로 진압하지 말고 이간질로 갈라놓는 건 어떨까? 온건파를 잘 구슬리면 협상을 제의해서 과격파를 잠재우고 시위를 잘 마무리지을 수도 있을 텐데.


바로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젊은 남자가 뛰어들어왔다.


“아버님!”


홍만근의 아들 홍지철이었다.


“시위대가 시청에 화염병을 던져 지민이가 죽었답니다!”


“뭐야?”


홍만근이 벌떡 일어났다. 홍만근은 슬하에 두 아들과 두 딸을 두었는데, 그중 홍지민은 늘그막에 얻은 막내딸로 특히 더 귀여워하던 딸이었다. 이 날의 시위 당시 홍지민은 고작 7살로 평양 시청 앞 유치원에서 놀고 있었는데, 시청 직원들이 일단 아이들을 시청 건물 안으로 대피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격분한 홍만근이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한 대신이 말했다.


“대감, 참으셔야 합니다. 지금 무력을 투입하면 될 일도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제16기동사에 2천 명 이상의 전투병력을 끌고 광명서원을 치라고 해.”


홍만근의 입가에 분노가 잔뜩 내걸렸다.


“필요하면 공중폭격이나 기갑부대까지 동원해줄 테니까 들어가라고 해.”


“아이고, 대감!”


“반대하는 새끼는!”


홍만근이 손을 들고 손가락으로 회의실에 앉은 대신들을 쭉 훑으며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지민이를 살려 데려오고 나서 말해!”


 

+ + +


 

대한제국군의 시위대 무력 진압은 오히려 패착이었다. 광명서원 유생들은 대부분 남방전쟁 참전자 내지 예비군이었고, 광명서원의 학생 수는 10만에 달했다. 게다가 교련을 위해 광명서원의 교련장에는 7만 정을 넘는 총기와 넉넉한 총탄이 있었다.


군대가 들어와 닥치는 대로 쏴죽이기 시작하자, 분열되기 직전이었던 광명서원의 학생들이 오히려 단결해 버렸다. 학생들은 국가의 승인이 있어야만 열 수 있는 교련장 무기고 문을 부수고 총을 꺼내 무장했으며, 필사적으로 군에 맞서 항전했다.


대한제국군은 이듬해 3월 중순까지 광명서원 선비군을 상대로 싸웠지만, 기숙사 단지와 주차장 등에서 벌어진 치열한 시가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결국 홍만근은 광명서원에게 협상을 제시했다.


광명서원 학생들은 캠퍼스에 대한 자치권을 받았으며, 캠퍼스를 빙 둘러 거대한 담장을 치고 캠퍼스 안에 눌러앉았다. 경주 홍씨 세도가문에 반대하는 이들은 광명서원 자치구로 달아났고, 달아날 구멍이 생기니 더 이상 직접적인 투쟁을 벌이는 이들은 없었다. 이후 홍만근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 계속해서 커졌고, 그의 사후 그의 아들딸들이 권세를 물려받으며 본격적인 2차 세도정치 시대를 열었다.


홍만근이 광만제 앞에 섰다. 이제 국정을 포기한 광만제가 술병을 들고 마시면서 말했다.


“잊지 마시오. 20년 뒤... 20년 뒤에는 짐이 다시 복귀할 것이오. 그래서 다시 전제황권을 부활시키고, 그 권력을 태자에게 넘겨줄 것이오.”


광만제는 엄청난 권력욕의 소유자였으며, 그것을 위해 자신의 어머니까지 몰아낸 사람이었다. 민주화운동 진압을 반성하는 것과 별개로, 전제황정을 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홍만근은 20년 뒤까지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미 60을 넘긴 나이. 몸 곳곳에는 병이 생겼고 그중에는 중병이라 할 병도 충분히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허용된 무한한 권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홍만근이 돌아서서 나가려는데, 광만제가 그를 불러세웠다.


“잠깐.”


홍만근이 멈춰 섰다. 광만제가 한숨을 쉬고 덧붙였다.


“...이번 부산, 마산, 광주, 합빈의 민란은... 민란이어야 하오.”


“...그 어인 하교이십니까?”


“실록이든 언론이든... 철저하게 통제하시오. 민주화운동이네 뭐네 하는 식으로 기록하거나 보도하면 처형해도 좋소. 이것들은 민란이어야 하오.”


광만제가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래야 황태자의 정통성이 바로설 것이오. 백성에 대한 학살자의 아들이 아니라, 반란을 진압한 군주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그런 말이오.”


부마광합의 난.


그 해의 민주화운동은 그렇게 기록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