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화국 당시의 대통령들의 업적 순위를 정해보았다. 최대한 정치적인 색을 없앴으며 또한 국내적인 정책들만 보는 시각에서 작성한 것으로 외교, 국제적인 문제는 보지 않은 평가다. 그러므로 국내적이고 정책적인 것만 나열하였음을 감안하고 보기를 바란다. 이것은 익명_IoHCx의 개인적인 평가로써 진리적인 평가가 아니기에 적혀진 본문 그대로 확산되는 것은 자제해주길 바란다.





1위

[노태우]


노태우는 6공화국에서 직선제로 뽑힌 최초의 대통령이다. 그는 그 전의 권위적인 정부의 행태를 없애기 위해 정치인의 대한 풍자를 보장했고 '물태우'라는 단어가 당당히 개그 프로그램에 나올 정도로 자유를 확산시킨 공이 있다. 또한 박정희 시대의 근로자에게만 해당되던 의료보험제도를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여 모든 국민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각종 사회간접자본도 건설하였는데 인천공항과 KTX의 건설은 그의 임기 때 시작되었고 아울러 서해안 고속도로와 전라도의 새만금을 비롯한 경기도의 일산과 분당 역시 그가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강력범죄 쪽으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범죄와의 전쟁으로 조직폭력배들이 완전히 몰락하였다. 덕분에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처럼  마피아, 야쿠자, 마약 갱단이 존재하지 않게 됐고 여자가 밤에 술을 마시고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의 치안 1위 국가를 만드는데 공헌하였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노태우는 한국에서 최초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끝으로 그가 있던 임기 시절은 가장 성장과 분배가 조화가 이루던 시기로서 지니계수도 당시 동아시아 국가중에서도 낮은 편이었고 전체 국민의 70% 이상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으며 경제학적으로 가장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이뤄낸 성공한 '진보적 경제정책'으로 평가된다.




2위

[김대중]


김대중은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이다. 그는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여 대통령이 맘대로 '내리꽂기'라고 표현하던 인사 제도에서 벗어나서 장관 후보자에 대한 공정한 검증을 거치는 제도를 원했고 현재도 장관을 임명할 때 청문회를 하게 되는 시초를 만든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던 당시에는 IMF가 터져있던 상황으로 그의 제1목표는 경제를 살려내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도입하여 결과적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폐해 또한 알고 있었기에 이에 대한 대비로 기초수급자에게 최저생계비를 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여 최저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안정망을 만들어 냈다.  그는 또한 IT산업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는데 현재의 고속 인터넷과 게임 문화 산업 등의 토대를 만든 선구자인 셈이다.  또한 문화적으로는 가장 개방이 되던 시기이기도 하며 그 전까지 금기로 여겨지던 '일본문화 전면개방'을 이뤄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권위주의를 적극적으로 타파한 인물로서 노태우 때까지 사용되던 각하 칭호를 없애고 공식적으로 대통령님으로 통일시켰다. 더불어 그동안 공공기관에 항상 걸려있던 대통령 사진을 치워버린 것도 김대중 정권 때였다. 군장병 대우도 그가 있던 임기 때 급격하게 호전됐으며 특히 월급 인상과 군 인권개선에 큰 노력을 기울렸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를 올리고자 노력한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3위

[김영삼]


김영삼은 6공화국에서 2번째로 당선된 대통령이다. 그는 가장 유명한 군대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여 문민정부화를 성공시켜냈다. 그는 공직자윤리법을 제정하여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와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제도를 만들었으며 본인이 솔선수범하여 재산을 공개함으로써 모범을 보이고자 했다. 또한 청와대에 있던 금고와 비밀회동으로 사용되던 건물들을 모두 철거했고 군부시대의 잔재를 없애버린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경제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것으로 비밀리에 일사불란하게 도입한 덕분에 이에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신원불명의 수많은 검은돈들이 일시에 붕괴하여 한국 경제의 투명함을 이끌어낸 공이 크다. 김영삼 정부 시기에 TV채널이 공중파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다양하게 많아졌으며 문화적으로도 검열제도를 완화하여 영화와 음악의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하였다. 하지만 IMF를 일으킨 대통령이기도 한데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클럽인 OECD에 가입하기 위해 무리하게 재정을 사용하였고 최초의 문민정부임을 내세우는 홍보 또한 너무 과도하였기에 너무나 많은 외화가 빠져 나갔다. 결국 당시의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되어 동북아시아까지 퍼져나가던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김영삼은 IMF로 다른 공이 너무나 많이 가려진 감이 크기 때문에 IMF 관련으로 변호를 덧붙였다.




4위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에서 2번째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대통령이다. 그가 당선되고 얼마 후 리먼브라더스 사태 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터지면서 미국의 금융위기가 시작되었고 기축통화 달러가 지배하던 세계경제는 엄청나게 흔들렸는데 그 경제에 편입된 한국 역시 그 여파를 피해가기란 불가능했다. 그가 이뤄내야할 제1과제는 미국 금융위기의 파도에서 한국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즉각 친기업적인 정책들을 내놓으며 기업들을 보호하였고 일자리 추경편성, 일자리 나누기를 적극 추진하여 OECD 국가는 물론이고 당시의 유럽 국가였던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을 포함해서 세계경제적으로도 취업률을 생각보다 잘 사수하였다. 이에 OECD는 리먼브라더스 사태에서 다른 국가들은 천천히 회복되는 반면에 한국은 빠른 속도로 회복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단순히 고용양만 늘어나는 것이 아닌 고용의 질 또한 늘어나는 등 좋은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친기업적인 정책으로 노동자의 입장이 대변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하여 노동적으로는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였는데 5명만 있다면 누구든지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했다. 덕분에 택배운전사, 대리기사들도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이 노동 관련으로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좋은 정책만 있지는 않았는데 그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정책중 하나였던 4대강은 아직도 논란이 있는 부분으로 남아있다. 




5위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도 하다. 박근혜가 했던 정책들은 민주노총 탄압과 전교조 불법화 그리고 좌익정당과 단체 해체 등등 대부분 정치적인 색체가 많기 때문에 우선 정치색을 뺀 정책들만 보고자 한다. 박근혜는 대체휴일제도를 재도입하고 치과에서 건강보험으로 스케일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으며 4, 5인실도 건강보험을 적용시킴으로써 그 전 정부에 비해 복지적으로 혜택을 주고자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국민건강을 위해 국가적으로 금연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하였고 각종 건물에서 금연구역이 대대적으로 확산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사회간접자본들도 꽤나 건설이 추진되었는데 원자력 발전소 4기 건설을 추진하였고 사회적으로는 외국인에 대한 비자심사를 강화하여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후죽순 넘어오는 것을 방지하였고 한국 최초로 외국인의 월세/전세 세입자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것을 포함하여 귀화자 시험문제도 상당히 어렵게 출제하였는데 박근혜 대통령 시기에는 불법체류자들과 외국인을 통해 생기는 문제들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였다.  또한 독립유공자 손자녀 지원금을 대폭 늘려냈고 종교인에게도 과세를 물렸으며 전두환 추징금을 실제로 받아낸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가장 긍정적으로 판단되는 대표적 정책은 공공, 공무원 관련 개혁으로 코레일 개혁을 대대적으로 실행하여 처음으로 흑자전환을 이뤄내고 그 전 대통령들도 건들기 껄끄러웠던 '공무원 연금개혁' 적극적으로 단행하여 훗날 국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총대를 잡았다는 평가 또한 존재한다. 




6위

[노무현]


노무현은 한국에서 아웃사이더로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다. 정치내부적으로는 지지 기반이 약하지만 외부적으로는 당시의 최초의 정치팬덤이었던 '노사모'를 통해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이다. 그는 한국에서 완전히 권위적인 색체를 없애고자 했던 대통령으로 평가받으며 국민들이 마음에 안 들면 혹은 그냥 기분이 나쁠 때 아무 이유없이 대통령을 욕하고 시원해 할 수 있는 그런 사회야 말로 민주주의 사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인권개선 또한 우선 과제로 뒀으며 성별로 생기는 차별과 학벌로 생기는 차별,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자 했다. 하지만 외국인 관련으로는 너무나 많은 조선족들이 우후죽순 한국으로 넘어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가 한국식 인터넷 문화가 생긴 시발점이기도 한데 인터넷상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대통령도 욕할 수 있는 그런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데에 대통령 본인의 입담이 크게 기여했다. 또한 노무현은 주 5일제를 시행하여 토요일도 쉴 수 있게 만들었고 국민과의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두며 실제로 각종 프로그램과 토론회에 직접 나가서 국민들과 직접 대화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외 국내적 정책들은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는데 등록금과 사교육비 폭등정책, 부동산 폭등정책, 의료민영화 추진 등등 야망이 넘치던 노무현 답게 야심차게 준비한 정책들은 엄청나게 많지만 부정적으로 끝난 정책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 시도는 선례로서 크게 평가받을만 하다.




7위

[문재인]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유명한 말이다. 지금 현재의 한국 대통령으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아직 3년 밖에 임기를 못 채웠고 이렇게 빨리 평가하는 것은 이를 수 있다. 그렇지만 일단 3년 동안의 나왔던 정책들을 보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문재인의 정책은 북한에 쏠린 국제외교적인 정책이 많으며 국내정책은 대표적으로 소득주도성장이 있지만 현재 그것은 실패한 경제정책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좋지가 않다. 그것을 추진했던 장하성은 중국으로 은근슬쩍 가버렸다. 그리고 인터넷 https 검열정책으로 크게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앞으로 문재인이 어떠한 국내정책을 실행하고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문재인이 했던 국내정책의 대부분은 소득주도성장과 관련된 것이고 그외 추진하려는 정책들은 국외정책이기에 비핵화를 포함한 남북화해사업 등 국외정책이 성공한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


최대한 국내적으로 '실제로' 실행하려 했던 정책들에 한해서 평가하려 했다. 국외적으로 봤다면 김대중은 햇볕정책이 나왔을 것이고 정치적인 것과 연관 지었다면 박근혜 국정농단과 노태우 군부봐주기 등등도 나왔을 것이다. 또한 문재인은 북한 관련으로 많은 언급이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의견으로 진리적인 의견은 아님을 다시 한번 알리고 작성을 마무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