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승상, 좌승상, 함경부사 등이 상소를 올리기를,


"함흥은 우리 목조(穆祖, 이안사)께서 삼척을 떠나신 후 새롭게 터로 삼으신 곳이며, 목조 이래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와 더불어 태조, 정종, 태종께서 나고 자라신 곳으로 그 중함이 다른 경들에 비해 크게 처지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고조께서 서적(명나라)을 징치하여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신 이후로 스스로 신하 되기를 청한 부여(발해 부여부), 막힐(발해 막힐부), 영고(발해 상경용천부), 해성(연해주) 등의 여진들이 한경으로 바치는 공물 등이 모두 함흥을 거쳐 오니 그 물산이 결코 작다 여겨질 바가 아니며, 경흥부에 이어 여진을 순시하며 반역하는 이를 걸러내는 북방의 중추로써의 역할 또한 막중합니다.


개성은 이미 유수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대우 또한 다른 경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으니 굳이 다시금 중경으로 승격할 필요는 없으나, 함흥은 일임되어 있는 중대한 역할과 풍패지향이라는 것에 비하여 그 격이 단지 일개 부로써 한정되어 있으니 이는 타당한 예가 아닙니다.


청컨대 함흥을 북경(北京)으로 삼아, 각각 토관(土官)을 설치하고 군병(軍兵)을 가정(加定)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거의 형세의 승(勝)함을 얻어 위급(危急)할 때에도 또한 족히 의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