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쟁이 나서 징집령이 떨어졌을 때는, 하필이면 전역 바로 전날 이런 일이 터졌다는 좆같음과, 왜 하필 지금이냐는 원망감, 전쟁터에서 나도 총 맞고 죽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섞여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실탄을 탄창에 넣고 완전군장을 하고 차량에 올라타며 DMZ로 향하는 때까지 그런 감정은 더 증폭되면 증폭되었지 가라앉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커녕 근처 건물의 총흔조차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뭔가 싶어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중, 내 눈에 허겁지겁 죽을 먹고 있는 무척이나 작은 체구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다 해진 갈색 군복을 입은 그들은 누가 보아도 우리 군은 아니었던지라 북한군인 걸 단번에 알아챘는데, 그들은 걸신 들린듯이 허겁지겁 죽을 다 흘려가며 먹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DMZ 쪽의 북한군 지휘관들이 전쟁이 나자마자 싸우지도 않고 바로 병사들과 항복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확 짜증이 올라왔었다.


이럴 거면 그냥 보내주지, 뭐하러 나까지 끌고 간거냐?


그렇게 욕해봤자 어차피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돌아갈 수도 없다.


1년쯤은 견뎌야겠지, 그냥 포기하자.


그렇게 생각했었다.


"...."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어느새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로 나는 평양에 있었다.


사리원과 황주에서도 전투라는걸 벌이지 않고 쉽게 점령했었지만, 그래도 내심 평양은 다르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평양에 도착했을 때 평양 시내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들렸고, 나는 이젠 진짜 실전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게 실감되는 것을 느꼈다.


사리원과 황주에서 잠시 늘어졌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었고,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큰 압박감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건 우리 부대의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였던지라, 간만에 부대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차가운 분위기는 잠시 후 깨졌다.


"예? 아니 그게 진짭니까?"


대대장님이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잠시 뭔가 대화를 하시더니, 이내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었다.


그때 총소리가 멎은 걸 보고 눈치챘어야 했는데.


평양 시내로 들어가니, DMZ에서와 같이 치열했던 교전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


그저 쭈볏거리며 우리 부대를 맞이하는 평양 시민들만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