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무지개의 날. 그는 자신의 상사를 부추겨,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국가의 수도를 자신의 손에 떨어뜨렸다.


둘째 날, 피라미드의 날. 그는 국가의 모든 경쟁자를 제압하고, 자신의 상사를 마침내 국가원수의 자리에 올려놓은 후 배후에서 조종했다.


셋째 날, 파고다의 날. 그는 한때 태양과도 같았으나 이제 저물어가는 다른 나라의 옛 유산을 가져와, 국가의 힘을 일신하고 천하를 지배할 역량을 건설했다.


넷째 날, 천둥번개의 날. 그는 자신의 꼭두각시이기를 거부하는 상사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국가원수의 자리에 올라섰다.


다섯째 날, 다이아몬드의 날. 그는 기존에 천하를 지배하던 국가의 힘을 가늠하기 위해 대리전을 일으켰다.


여섯째 날, 아폴로의 날. 그는 기존의 질서가 붕괴 직전임을 인식하고, 전격적으로 행동하고 파격적으로 움직여서 천하의 질서를 자기 손 아래 두었다.



+ + +



"장관! 장관! 나를 좀 살려주시오!"


제임스 스미스의 저택 앞에서, 고작 세 명의 만신창이가 된 경호원만 데리고 에이드리언이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전후좌우에서 플래시 불빛이 치솟았고 분노한 미국 군중의 함성이 들려왔다.


"에이드리언을 찾아라!"


"에이드리언을 찾아라!"


천천히 저택의 대문이 열리고, 제임스의 경호원 수십 명이 에이드리언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집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에이드리언이 허겁지겁 달려가서 저택의 문 앞에 주저앉으면서 울부짖었다.


"스미스 장관! 제발, 제발 나를 좀 살려주시오. 당신의 한마디면 저들의 분노를 제압할 수 있지 않소! 미, 미국이든 대통령 자리든 뭐든 주겠소. 살려만 주시오!"


그러자 문이 조용히 열렸다. 관리를 잘 했는지 삐걱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마치 그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까지 그 문을 관리해온 제임스 스미스가 문턱에 서서 말했다.


"...대통령 각하, 대통령은 장관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나십시오."


"스미스 장관, 나는 부족했소.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 거대한 국가를 이끌어 나갈 수가 없었소. 내가 대통령에 출마하기 전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 이제 제발 나를 좀 살려주시오. 당신이 영도했던 지난 10년간 미국은 강성했소. 그래서 국민들은 당신을 원하고 있소... 내가 아니라. 그러니까 당신이 대통령 자리를 인계받고 나를 살려주면..."


"...대통령의 모습이."


제임스 스미스가 눈을 찌푸리고 에이드리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참으로 우습고 또 하찮군요."


"이 우습고 하찮은 사람이 주제넘게 대통령의 자리를... 맡고 있었소. 제발 이제 대통령직을 가져가시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오. 나를 좀 살려주시오. 이대로라면 국민들은 나를 찢어 죽이려고 할 것이오."


제임스가 말없이 에이드리언을 내려다보았다. 그 때, 뒤에서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제임스가 고개를 돌렸다. 아리아나 스미스가 제임스와 그 앞에 무릎꿇은 대통령 에이드리언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있었다.


"...대... 대통령이 왜 여기 있어?"


제임스가 잠시 눈을 찌푸리다가 소리쳤다.


"여보?"


집 안에서 미란다 스미스가 대답했다.


"왜 불러, 이 인간아!"


"...아리아나 좀 데리고 들어가."


"어휴! 당신 때문에 내가 못 살아."


미란다가 오렌지 주스 잔을 들고 걸어 나와서 아리아나의 어깨를 잡았다가, 그대로 잔을 떨어뜨려 산산조각내고 경악한 표정으로 에이드리언을 바라보았다.


"...대... 대통령?"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제임스가 미란다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란다가 기겁한 표정으로 잠깐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당신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이런 사람이라고?"


"...굳이 말해야 했나?"


제임스가 턱을 까닥이자, 미란다는 이제까지 느낀 적 없는 남편에 대한 공포심으로 휩싸였다. 지난 18년간 결혼생활을 이어 왔지만 자신의 남편이 대통령이었고 지금은 장관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아내는, 그 사실을 자기 남편 앞에 무릎꿇고 애걸하는 대통령의 모습으로 알게 되었다.


미란다는 조용히 아리아나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제임스가 눈을 찌푸리고 에이드리언을 잠깐 노려보다가, 자신의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데이비드?"


"예, 장관님."


"이자를 끌어내라."


에이드리언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곧 경호원 다섯 명이 다가와서 에이드리언을 덥석 붙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제임스가 소리쳤다.


"오늘부로 미합중국 대통령 에이드리언 메릴류드는 탄핵되었다. 부통령에게 대통령의 전권을 넘겨야 하겠으나, 이미 부통령 데이먼 레이튼은 죽었고 하원과 상원은 해체되었으므로, 국무장관인 나 제임스 스미스가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차를 대기시켜라!"


곧 이제까지 누구의 접근도 없이 조용했던 그의 산 속 저택 앞으로 수백 명의 인파와 기자들이 밀려들었다. 기자들이 일제히 웅성거리며 제임스 스미스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고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제임스 스미스는 덤불을 헤치고 나가는 전사처럼 그 기자들을 헤치고 나가며, 자신을 위해 도착한 검은 차에 올라탔다.


방 안에서는 창문 밖으로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가 어떤 인간인지 직접 보며 경악과 두려움을 금치 못하는 아리아나와 미란다가 있었다. 아리아나가 미란다를 보면서 물었다.


"엄마, 우리 아빠 원래 저런 사람이었어?"


"...그랬나 봐. 엄마도 오늘 처음 알았어."



+ + +



미합중국 태평양수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흑악관에 다시 한 번 화려하게 불이 들어왔다. 수백만 명의 미국 시민들이,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시안을 가리지 않고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스미스!"


"스미스!"


"스미스!"


제임스 스미스가 차에서 내려, 그 어마어마한 환영인파 사이로 깔린 검은 카펫을 걸었다. 그리고 흑악관의 대문을 통과하여, 지난 10년간 자신의 집무실이었던 흑악관에 발을 딛었다.


저편에서 공개적으로 교수형당하는 에이드리언 메릴류드의 그림자가 보였다. 제임스 스미스가 흑악관 후면의 발코니에서 테라스를 잡고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더 이상 자신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영광된 대제국의 국민들을 바라보았다.


한때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미합중국을 다시 일으키고, 군부독재답지 않게 전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며, 국민들의 지지가 떨어지자 멍청이를 앉혀 놓고 물러난 뒤, 구관이 명관이라는 목소리가 일어나자 그것을 기회삼아 종신집권의 반석을 깔아놓은 제임스 스미스는, 더 이상 그를 대적할 인물도 비판할 인물도 없는 최고 존엄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 이전까지 개인으로서 그나마 강성했던 광만제나 이오시프 스탈린 따위는 더 이상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말 한마디로 대한제국의 후신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소련의 후신인 리투아니아-폴란드의 연방총리 정도는 갈아치울 수 있었으며, 지구상의 모든 행정구역이 그의 명령 아래 있었다.


40개 핵추진 항모전대가 지구상의 모든 바다를 통솔하며 그의 명령을 기다렸고, 지구상의 모든 무역로와 금융체제가 그의 손 아래 놓였다. 30,000발의 핵탄두를 발사할 가방이 그의 손끝에 있었고, 모든 언론과 정보기관들이 그의 숨소리와 눈길 밑에 있었다.


이제 하늘 아래 그보다 강력한 인물은 없었다. 이제까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없었고, 또한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는 세계의 황제였고 인류의 대통령이었으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권력의 과반을 자기 목소리 속에 둔 최초의 인물이었다. 누구도 그를 반대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를 비판할 수 없었다.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일곱째 날."


이제 완전한 독재자가 된 그는, 천천히 사무실에 있던 안락의자에 앉으며 덧붙였다.


"안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