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거란군이 창을 뻗으며 고려 병사를 찔렀고, 창은 고려 병사의 배에 그대로 찍혔다.


뒤쪽의 고려군은 그 거란 병사를 향해 칼을 휘둘렀고, 그것을 본 거란 병사는 재빨리 창을 뽑아 대응하려 했다. 허나 고려군이 그의 목을 긋는 속도가 더 빨랐다.


휘둘려진 검에 베인 거란 병사의 육중한 몸뚱이는 땅으로 고꾸라졌다.


다른 쪽에선 고려군이 쏜 화살이 거란 기병이 타고 있는 말에 눈이 박혔다. 화살을 눈에 맞은 말은 미쳐 날뛰며 주인을 단단한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낙마한 거란 병사는 그대로 척추가 부러지며 죽었다. 전장을 배회하는 다른 말이 시체를 밟으며 퍼석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시체를 밟은 거란군 기병은 고려군을 향해 창을 여러번 휘둘렀고, 고려군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거란 기병은 칼을 든 고려군에게 그대로 돌진했다. 고려군은 뒤늦게 그것을 발견하고 허둥지둥 거리다가 그대로 목이 날아갔다.


기병은 이번에는 창을 든 고려군을 노리며 말을 재촉하려 들었다. 말이 달려들기 전에 다른 고려 창병이 그의 말의 옆구리를 찔렀다. 창에 찔린 말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주인을 내동댕이쳤다.


떨어진 주인은 다시 일어나려 하였지만, 고려 병사가 그의 목을 겨누어 칼을 내려쳤다.


그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고려군 쪽이 아닌, 거란군 쪽으로.


"어..어어!"


"젠장할, 제대로 못 걷겠어!"


성인 여성이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다.


바람의 힘을 견디지 못한 거란의 병사들은 싸우는 와중에 여러 방향으로 고꾸라졌다. 개중에 누구는 뒤로 고꾸라지는 와중에 아군의 창에 뒤통수를 관통당하기도 했다. 


"지금이다, 쏘아라!"


상원수 강감찬의 명령에 한껏 쏘아진 화살은 강력한 바람을 타며 거란 진영으로 날아갔다.


기세를 타며 쏟아지는 화살에 거란군들은 그대로 벌집이 되었다.


거란군들은 그렇게 날아간 화살들로 인해 가지각색으로 숨을 거두었다.


"커억!"


화살을 쇄골에 맞으며 고꾸라졌고


"욱!"


투구를 뚫은 화살이 이마에 박혔고


"우으억!"


혹은 영 좋지 않은 곳에 화살이 당도했다. 


주위의 동료들이 절명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본 거란군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져갔다. 처음엔 몇 명이 공포에 질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공포는 빠르게 거란군 진영으로 퍼져나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히,히익! 난 여기서 죽을수 없어!"


개중에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진영을 이탈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도망치기도 전에 고려군의 화살을 맞으며 절명했다.


-두두두두두두


이제 승기가 고려군에게 잡혀갈 즈음, 멀리서 흙바람을 일으키며 거란군 뒤쪽으로 돌격해오는 한 무리가 보였다.


한자로 고려가 적힌 깃발을 든 무리였다.


"어...어어!! 솔호(고려) 놈들이다! 솔호 놈들이 우리 뒤에서 오고있다!!!"


거란군의 사기는 그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무너졌지만, 지원군을 본 고려군은 그 반대였다.


고려군은 기세를 몰아 거란군을 밀어붙였고, 거란군은 패닉에 빠져 그저 살기 위해 평원으로 내달렸다.


"비켜!"


"아악!"


"씨발, 비키라고 이 새끼들아!"


다음을 기약하며 퇴각하는 질서정연한 후퇴가 아닌, 그저 패잔병들이 살기 위해 도망치는 추한 패퇴였다.


거란군들은 서로 제가 도망칠 퇴로를 만들겠답시고 옆의 동료를 밀치고, 칼로 휘두르고, 창으로 찔렀다.


혼란은 더욱더 가중되었다. 그에 따라 거란군의 시체도 더 늘어갔다.


"이놈들아!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느냐?! 자리를 지켜라!"


거란군 총사령관 소배압은 칼을 들며 병사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화살과 뒤쪽의 고려 기병으로 패닉에 빠진 거란군들은 사령관의 말을 무시했다. 그저 목숨만을 건지기 위해 자리를 이탈하였다.


"물러서는 자는 머리를 베어라, 물러서는 자는 머리를 베어라!"


초조해진 소배압은 다시금 칼을 높이 들며 항전을 촉구하였다. 개중에 그의 말을 치며 도망치는 몇몇 병사의 목을 베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컥!"


"억!"


그런 그의 몸부림이 무색하게, 1만 명의 고려 기병들은 거란군의 진영에 도달하며 거란군 사이를 비집으며 병사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소배압과 극히 일부의 장수와 장졸을 제하고는 모두 이성을 잃고 오직 살기 위해 날뛰는 판이었다. 기병이든 보병이든 소용이 없었다. 이대로는 항전이고 퇴각이고 모조리 죽을 판이었다.


"....퇴각하라."


마침내 결단을 내린 소배압은 공식적으로 퇴각 명령을 내리렸다. 그는 도망치는 병사들과 같이 전장에서 빠져나왔다.


1만의 고려 기병과 20만 고려군이 합쳐 공격하니, 본격적으로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거란 군사들은 고려 기병에게 목이 잘리고, 가슴팍을 꿰뚤리고, 혹은 넘어져서 그대로 말발굽에 짓밟히기도 했다.


본래라면 고려 보병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려야 했을 거란 기병들이 보병을 두려워하며 도망치는 진풍경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기도 했다.


간혹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무기를 고려군 쪽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사방팔방이 장애물이고 적인 상황에서 전황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컥!"


"우욱!"


고려 기병은 그들을 뒤쫓으며 거란군의 수급을 하나 하나 취해갔다. 어느덧 평원을 가득히 메웠던 거란군은 이제 극히 일부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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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쓴거에서 문장의 호흡이 길어 박진감이 안느껴진다는 지적이 있어서 고쳐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