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창끝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검은색의 그 전투기는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않았고 약하지도 않았다. 대공미사일을 끝까지 모두 피해낸 그 괴물의 앞에서, 이미 정찬욱은 기수를 돌려 본부로 돌아가고 있었고 하미진은 필사적으로 싸우며 지고 있었다. 열심히 용감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아무튼 간에 지고는 있었다.


대한해방군의 최정예 파일럿들이 그렇게 처절하게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며, 도쿄의 창끝이라는 그 사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들보다 더한 괴물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들어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양측의 미사일이 모두 소진된 상태에서, 도쿄의 창끝이 하미진의 후방 6시 방향을 잡기 직전, 대공미사일 한 발이 곧바로 날아왔고 도쿄의 창끝은 플레어를 산개하며 기체를 돌려 피했다.


주민아가 황금박쥐의 조종간을 붙들고 그대로 도쿄의 창끝을 향해 들이닥쳤다. 그리고 하미진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그 틈새로 들어가서 다시 한 번 도쿄의 창끝을 향해 대공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같은 에이스 파일럿으로서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도쿄의 창끝은 황금박쥐라는 존재가 난입했는데도 전혀 당황하거나 놀란 기색이 없었다.


도쿄의 창끝이 대공 미사일에 대고 기관포를 갈겨 파괴하는 기예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그 어떤 파일럿도 저런 행동은 할 수 없다. 도쿄의 창끝이 황금박쥐를 향해 질주하는 순간, 주민아는 자신의 무장창을 모니터를 내려다보았다. 남은 미사일은 한 발. 도쿄의 창끝이 뭔가 해보기 전에 잡아야 한다.


주민아가 항공기 방향을 격하게 돌리며, 도쿄의 창끝이 겨눈 기관포의 방향으로 자신의 오른쪽 날개를 내주었다. 도쿄의 창끝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향해 기관포를 갈겼다. 통상의 기체였다면 그 상황에서 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격추되었겠지만, 주민아는 보라매의 내구성과 자신의 순간감각을 믿고 기관포탄이 날아온다고 판단된 그 순간 기체의 방향을 확 틀었다.


기관포탄 10여 발 중 단 한 발만이 황금박쥐의 날개를 관통했고 날개에서 요란하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민아는 황금박쥐를 대단히 요란하게 기동시키며 그 연기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비행기 구름처럼 그 형태를 유지하면서 퍼져 나가는 연기는 삽시에 근접격투전의 전장 전체를 어둡게 만들었다.


이미 BVR을 치르기에는 너무 가까워진 상황. 도쿄의 창끝이 그 연기의 사이로 빠져나가려고 방향을 틀었다. 주민아는 검은 연기 사이에서 그 분말과 안개를 뒤집어쓰며 도쿄의 창끝을 향해 기수를 급격하게 틀었다.


그리고 그녀의 장기인 포스트스톨 기동을 감행, 도쿄의 창끝을 정확히 겨누었다. 그녀는 저 빌어먹을 적기가 검은 연기 속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곧바로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어서 도쿄의 창끝 기체 한가운데에서 폭발이 일었다. 잡았다! 도쿄의 창끝이 화염을 내뿜으면서 불과 연기를 뒤섞어 토해내고 이내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제 끝났다. 주민아가 다시 기수를 돌리려고 기동을 감행하는 순간, 마침내 아까 맞은 탄환 자국을 견디면서 포스트스톨 기동까지 당했던 날개 오른쪽이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절반 가까이 떨어져 나갔다.


"이런 젠장!"


이어서 무전기를 비롯한 통신 장치가 모조리 나가고 우지끈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황금박쥐가 추락하고 있었다. 주민아가 다급히 사출좌석의 손잡이를 당겼지만 그것도 고장났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황금박쥐는 황금빛의 날개로 잿빛의 연기를 싸고 있었다. 주민아가 바쁘게 계기판을 붙들고 이것저것 눌러보았지만 끝까지 계기판은 사출장치를 열어주지 않았고, 그 거대한 알루미늄 날개가 바다에 처박을 때까지도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을 듯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머리 뒤의 사출장치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황금박쥐는 그녀를 토해 내지 않았다. 잠깐의 우당탕거리는 소동 끝에, 주민아는 다시 조종간을 잡았다.


좋아, 어차피 사출은 틀렸어. 이대로 동체 밑으로 바다에 들이박자. 시커먼 잿빛 연기의 분자를 뒤집어써서 앞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황금박쥐의 머리를 아래로 기울였다. 그리고 그 각도를 느꼈다.


이 각도대로만 정상적으로 들이받으면 바다 표면에 미끄러지듯이 쓸고 나갈 수 있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전투기 콕핏 열고 나가는 방법을 다시 한 번 복기했다. 착수하자마자 나가지 않으면 같이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다.


그녀가 무전기 달린 헬멧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여기는 청창-1. 청창-1. 기지 들립니까? 비상 착수하겠습니다. 좌표는 D-28/G27. 이곳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있겠습니다. 반복합니다. 비상 착수하겠습니다. 좌표는 D-28/G27."


무전기 건너편에서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곧 황금박쥐가 안개와 제 몸에서 쏟아진 검은 연기를 뚫고, 잿빛이 된 콕핏 너머로 그녀가 떨어질 장소를 보여주었다.


"이런 씨발!"


분명 그 주변으로는 전부 다 바다였는데 하필 그녀가 들이받을 그 장소에 섬이 있었다. 주민아가 다급히 조종간을 위로 치켜올렸지만 이미 그것까지도 고장난 듯했다. 황금박쥐는 그대로 치고 내려가면서 그 섬의 백사장을 향해 곧바로 처박았다. 마지막 순간, 주민아는 다시 한 번 사출좌석을 당겼다.


그 순간, 너무나 귀에 익은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 아래에서 익숙한 폭발이 느껴졌다. 이어서 그녀는 곧바로 전투기 콕핏을 박차고 그 빌어먹을 전투기의 동체에서 하늘을 향해 튕겨 올랐다. 그녀가 튕겨 오르는 순간 황금박쥐는 그대로 모래밭에서 두 번의 폭발을 일으키면서 사라져 버렸다.


땅으로부터 10미터도 안 떨어진 상황에서 발사되었으므로 그녀에게 낙하산을 펼칠 시간 따위는 없었고, 하늘로 튕겨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다시 땅으로 튕겨 내려와야 했다. 반쯤 펼쳐진 낙하산이 모래밭에 그대로 내깔렸고, 그녀는 그 낙하산에 우당탕 구르며 모래밭에 처박혔다.


"어휴!"


그녀가 헐떡이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만지면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주민아가 백사장에서 비틀거리며 몇 걸음 걷다가, 문득 오른쪽 다리가 욱신하여 바닥에 다시 주저앉았다. 오른다리가 부러졌든 끊어졌든 어쨌든 무슨 문제가 있는 듯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 순간, 화염과 연기를 휘몰아치며 하늘에서 검은 전투기가 그대로 떨어져 백사장에 처박았다. 주민아는 비명을 지르면서 그 충격으로 날아갔고 이번에는 바닷물에 빠졌다. 그녀가 오른다리를 덥석 붙잡고 물 속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신음했다.


"끄으윽!"


오른다리를 못 쓰는 상황에서 안간힘을 다해 물 밑의 바닥을 딛고 일어서자, 방금 떨어진 그 전투기의 정체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도쿄의 창끝이다! 그녀가 황망히 허리에서 권총을 뽑아 절뚝거리며 그 전투기 잔해의 콕핏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콕핏을 겨눈 채 한국어로 말했다.


"드, 들리나? 나는 대한민국 대한해방군 567비행전투대대 소속의 황금박쥐 주민아다. 콕핏을 열고 밖으로 나와라."


한국어인데 일본인 파일럿이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곧 콕핏이 열리고, 검은 헬멧에 만신창이가 된 슈트를 입은 남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주민아가 권총을 똑바로 겨눈 채로 말했다.


"하, 항복해라. 항복하면, 항복하면 국제법에 의거하여 너를 일본군 포로로 대우하겠다."


그러자 그 파일럿이 헬멧을 벗고 주민아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한국어로 대답했다.


"난 일본군이 아니야."


주민아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파일럿이 주민아의 권총 총구를 노려보면서 다시 한 번 한국어로 말했다.


"일본인도 아니야."


주민아가 권총을 똑바로 겨눈 채 다시 한 걸음 다가섰다. 도쿄의 창끝이라는 이름 아래 이제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한해방군 파일럿들을 바다에 처박아온 그 사내가, 한국의 영웅을 우러러 다음과 같이 쏘아붙였다.


"난 구 제국의 백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