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1,030일째]


일본광복군의 방어선도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쉬지 않고 몰려오는 대한해방군의 보병들을 향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관총탄을 쏟아붓고 포탄과 화염방사기까지 들이부었지만 일본광복군의 물자보다 대한해방군 예비군의 수가 더 많았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한해방군의 나이는 어려지기 시작했다. 장애인, 자폐아, 다운증후군, 치매 노인들에게 군복을 둘러서 1선으로 내보내던 1파 공세와는 전혀 달랐다. 27파 공세쯤 되었을 때는 대한해방군 병력의 절반 이상이 중년으로 변했고 50파 공세를 넘어서자 대한해방군의 병력 중 절반 이상이 건강한 청년으로 변해갔다.


40파 공세를 맞닥뜨린 순간에 스메라기 미카도는 그제서야 김민현이 벌이고 있는 작전의 최종 목표를 깨달았다. 김민현은 최소한의 피해로 경상도 방어선을 돌파할 의향이 없었다. 저출산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의 인구 구조를 이 방어선에 갈아넣어서 해결하겠다는, 전후 처리에 가까운 작전을 감행하고 있던 것이다.


그 결과 50대 이상이 본토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던 2026년 개전 시점에 비해, 2031년 현재의 대한민국 인구 구조에서는 30대 이하가 사실상 인구의 과반을 초과하고 있었다. 김민현은 이 방어선에 2,000만 명 이상의 노인과 중년을 대포밥처럼 갈아 넣었고, 그들을 죽이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어느새 공세의 횟수는 세 자리수를 넘어섰고 103파 공세가 방어선에 충돌했다. 마침내 가장 골치 아프던 각 벙커들의 탄약 보급 속도가 대한해방군의 진격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기 시작했고 기관총들이 일제히 멈추기 시작했다.


백병전이다!


최정예 청년 병력들을 일선에 배치했던 일본광복군은 이제 병력의 태반이 노년에 포로들까지 섞여 있었으나, 대한해방군은 그 반대라 병력의 사실상 대부분이 최정예 청년병이었고 가장 고도로 훈련받은 병력이 일점으로 모든 위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전선 전방위적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던 대한해방군은 무서운 속도로 그 일점으로 위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쟁 1,030일째, 일본광복군의 경상도 방어선은 붕괴되었다.


대구와 포항의 사이 영천 일대에 마침내 대한해방군은 피로 물든 돌파구를 형성했고, 그곳에서만 최소 1,3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본토 인구를 다 합쳐도 1억 2천만에 지나지 않는 대한제국으로서는 국가의 10%가 그 방어선 일점에서 갈려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김민현이 원하던 일이었다.






[전쟁 1,031일째 자정]


대한해방군 기지이자 대한민국의 수도인 대한성 병조.


대신들이 쭉 늘어 앉아 있는 거대한 책상 한가운데에 밝은 모니터가 누워져 있었고, 그 위로 전선이 그려진 지도가 있었다. 태별이 양손으로 책상 좌우를 탁 치며 일어났다.


"때가 되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지금 즉시 대한육상해방군은 최정예 기계화보병 12개 사단과 4개 중기갑사단, 18개 군단포병을 동원하여 돌파구를 뚫고 기동을 개시하라고 전하세요!"


태별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대한항공해방군."


주민아가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태별이 지시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여 항공지원을 개시하세요. 2차 방어선은 1차 방어선 때와 전혀 다를 것입니다. 후방지원을 위한 참호이니 항공폭격으로도 충분히 제압 가능할 것이오. 전력을 동원하세요."


주민아가 벌떡 일어나서 경례한 후, 황금박쥐 문양이 새겨진 헬멧을 쓰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가 연병장의 단을 향해 달리자 곧 젊은 장교 다섯 명이 외쳤다.


"전원 차렷!"


주민아가 단 위에 섰다. 연병장에는 500여 명의 파일럿들이 정렬해 있었고 그들은 모두 황금박쥐라는 전설을 향해 경외감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군도통사께 경례!"


전 파일럿들이 경례했다. 주민아가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어제 경상도 방어선이 뚫렸다. 육군이 밟고 지나갈 길에는 포장이 필요하다. 긴말하지 않겠다. 전원 지금 당장 작전 준비하라!"


파일럿들이 일제히 경례하면서 다시 한 번 외쳤다.


"전원 작전 준비!"


그 뒤쪽으로 400여 기에 이르는 번쩍이는 보라매가 날개와 무장창에 폭탄을 잔뜩 머금고 정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