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골목에서는 붕어빵 냄새가 났고, 길 가는 행인들에게 군침을 흘리게 했다. 색동끝다리를 늘어뜨린 낡은 포장마차에서, 인상 좋아 보이는 중년이 붕어빵 기계를 능숙하게 돌렸다.


한 커플이 들어와서 중년 앞에 섰다. 여자 쪽이 남자의 팔을 안으면서 말했다.


“아저씨, 붕어빵 다섯 개 주세요.”


그러자 중년이 빙긋 웃으면서 빠르게 집게로 붕어빵 다섯 개를 집어 종이봉투에 넣고 내밀었다.


“20냥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장사였다. 30여년 전 대한제국의 중흥기였던 1960년대에는 소비에트와의 환율이 1냥에 10루블이었는데, 지금은 10냥에 1루블. 물가는 화폐 가치에 반비례했고, 화폐 가치는 백성들의 삶의 질과 비례했다.


남자 쪽이 한숨을 쉬고 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뒤적뒤적거리면서 돈을 찾다가, 지폐 몇 장이 삐져나온 쉽사리 못 펴는 주먹을 내밀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두 마리 빼 주세요.”


중년도 한숨을 마주쉬더니, 봉투에서 한 마리만 빼서 건넸다. 두 마리 빼자니 야박하고, 그렇다고 두 마리 공짜로 주자니 아깝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짓이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감사합니다.”


남자 쪽이 허리를 90도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포장마차의 매대로 한 아이가 걸어들어왔다. 중년이 그쪽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어서 오세요. 몇 마리 드릴까요?”


“아빠.”


중년이 고개를 돌렸다. 소년, 그러니까 아까 김민현과 남산에 드러누워서 놀던 소년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중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상훈이... 왔구나.”


한상훈. 그 소년의 이름이었다. 중년이 천천히 다시 붕어빵 기계를 돌리면서 말했다.


“아들 잘... 놀다 왔어?”


“응.”


한상훈이 매대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아빠 손목도 안 좋으면서 왜 아직까지 굽고 있어. 어차피 늦어서 손님 더 안 와.”


“이게 마지막이다.”


아버지 한정철이 붕어빵 기계를 열어, 따뜻한 붕어빵 두 개를 꺼내 한상훈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한상훈 앞에 앉으면서 말했다.


“아들, 이제 내년부터는 중학교 가겠네. 어느 중학교 썼어?”


“아빠.”


한상훈이 주섬주섬 가방을 열어서 가정통신문을 꺼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한 표를 짚으면서 말했다.


“나 중학교 안 가도 돼.”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보면 국가인재속성교육이라는 게 있는데, 이쪽으로 빠지면 15살에 고등학교 졸업 자격까지 받고 바로 대학 진학할 수 있어. 나 이거 하려고.”


한정철의 표정이 약간 어리둥절하게 변했다. 한상훈이 가정통신문을 접으면서 말했다.


“빨리 대학교 가서 빨리 취업하는 게 아빠한테도 좋을 거 같고.”


현실적이지만 12살짜리 어린애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한정철이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아빠 걱정 때문에 그러는 거면 됐으니까 너는 너 할 일이나 열심히 해.”


“사실은 학교에 더 있기도 싫어.”


한상훈이 책가방 지퍼를 잠그며 짜증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졸업반 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학교에는 여전히 다 바보들밖에 없어. 나랑 말 통하는 애들 한 명도 없단 말이야.”


“그 김민현이인가? 걔하고는 말이 통한다며.”


“걔 작년에 검정고시 두 번 보더니 고등학교 졸업장까지 가져갔어.”


“너도 그럼 그렇게 하지 그랬니.”


한상훈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학교에 가면 급식이라도 주는데, 집에 있으면 밥값이 더 나가야 하니까. 아들이 왜 말을 안 하는지 깨달은 한정철이 쓸쓸한 표정으로 붕어빵 기계를 닦으며 골목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겨울이 끝나고 봄바람이 불어오는 시절이었다.


“내일부터는 붕어빵 기계 집어넣고 떡볶이하고 만두나 팔아야겠다. 슬슬 날이 따뜻해지네.”


“아빠 다리는 괜찮아?”


한정철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그의 오른다리에는 금속으로 된 의족이 달려 있었다. 한상훈이 한숨을 쉬었다.


1970년대를 피로 물들인 남방전쟁은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를 냈고 한정철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일본 열도와 만주, 중국 북부에 이어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 파푸아뉴기니 등을 점탈하고 아시아 패권에 미쳐 있던 대한제국이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얀마와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강탈하고자 70만 대군을 일으켜 침공을 감행한 것은 1971년의 일이었고, 1978년까지 7년 6개월간이나 이어진 대전쟁은 대한제국의 승리로 끝났으나 대한제국에게 많은 사상자를 냈다.


당시 현역병이었던 한정철도 그 사상자 중 하나였고, 그의 오른쪽 무릎 아래는 아직까지 말레이시아 참호 유적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한상훈이 책가방을 들고 포장마차 바로 뒤에 있는 반지하 방으로 향했다. 그게 한정철과 한상훈의 보금자리였다.


한정철이 절뚝거리면서 포장마차 문을 닫고 끈으로 묶었다. 낡고 오래된 상가들이 가득한 청계천 주변은 노숙자들과 빈민들의 주요 거주지역이었다. 반지하 같은 집이나마 있는 한정철 부자는 이곳에서 상당히 잘사는 축에 든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하자, 곧 뒷골목 전체가 신문지와 골판지로 꽉 찼다. 전부 노숙자였다. 과장 없이 사람이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숙자들이 어지럽게 곳곳에서 노숙하고 있었다.


한정철이 천천히 반지하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상훈은 어느새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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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현이 끙끙거리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목이 말랐고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잠을 잘못 잤나... 김민현이 비틀비틀 부엌으로 걸어갔다. 집 안은 조용했고 아무 일도 없는 듯했다.


그 때 1층에서 나는 불빛이 계단실을 따라 새어 올라왔고, 김민현은 물병을 집어 들고 컵에 따르면서 그 불빛을 바라보았다. 불빛과 함께 소리가 새어 올라왔다.


김민현은 밑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아들 문제는 그쯤 해 두세.”


아버지 김경훈의 목소리였다. 자기 이야기임을 직감한 김민현이 천천히 계단실 쪽으로 걸어갔다.


“당수님, 아드님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에 대해서는 저보다는 당수님이 잘 아실 줄로 압니다. 왜 저에게 이런 부탁을 하시는 겁니까?”


김경훈은 자신의 측근이자 황국민정당의 부당수 정겨열을 앞에 앉힌 채 대화하고 있었다.


“조만간 아들과 인사시켜 주겠네. 재차 부탁하지만, 유사시에는 자네가 민현이를 맡아서 지켜주게. 내가 단독으로 지켜줄 수 있는 임계점은 이미 지난 듯 하이.”


“어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영제국이 공산화됐으니까.”


김경훈이 긴장한 표정으로 깍지를 낀 채 인상을 썼다.


“조만간 소비에트는 대한제국에 관계 재정립을 요구해 올 것일세. 그동안은 대영제국과 소비에트 사이에서 우리가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가 나름 챙기는 게 있었으나, 이제 그 대립은 무너졌어. 소비에트는 더 이상 잠재적인 적수인 인접 패권국을 내버려두지 않을 걸세.”


“그게 당수님의 안전과 무슨 상관입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황국민정당은 이제까지 지속적으로 독자 노선을 주장해왔고, 홍지아의 대한정우회는 지속적으로 친소 노선을 주장해왔네. 우리 쪽은 명분을 잃었고 대한정우회는 명분이 생겼으니, 곧 홍지아의 공격이 시작되겠지.”


정겨열이 한숨을 쉬었다. 김경훈이 정겨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당부했다.


“정쟁이 시작되면 내가 모든 공격을 앞에서 받아내겠네. 누군가 외교 정책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면 내가 물러날 걸세. 그대는 중추원(中樞院. 대한제국의 국회)의 개헌저지선을 절대 잃지 말게.”


중추원은 모두 299석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서 3분의 2인 200석 이상을 장악한 정당은 대한제국의 헌법인 대한국 국제를 개헌할 권한을 가진다.


대한정우회는 163석, 황국민정당은 100석을 가지고 있었고, 몇 개의 군소정당들이나 식민지 총독부 계통 의원들이 27석을 갖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군소정당들이나 식민지 총독부들은 집권 여당인 대한정우회가 가자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으므로, 유사시 황국민정당이 단독으로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물량인 100석의 의석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사실 이제 숨기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착취와 횡령을 일삼으며 민심을 잃은 대한정우회와 그에 필사적으로 맞서는 황국민정당의 입장은, 철저하게 흑백논리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선악이 명확했다. 이 상태에서 총선을 치를 경우 대한정우회가 매우 높은 확률로 참패할 확률은 분명 높았다.


그러나 선거는 지난 수년째 치러지지 않았다. 지방의회도 마찬가지였고, 식민지 의회들도 그나마 구색을 갖추고 있는 남방제도 위임총회를 제외하면 모두 비슷한 실정이었다. 선거를 관리하는 예조의 민의청에 배정된 예산은 6년째 그곳 관리들에게 줄 최저임금보다도 적었다. 모조리 중간에서 홍지아가 빼먹은 탓이다.


“중추원의관들은 누구도 사직해서는 아니되네. 지금 상태에서는 중추원의 의석을 단 하나도 잃어서는 아니되네.”


김민현이 위에서 그 말을 듣다가, 이내 소리 없이 조용히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김경훈이 한 말 중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흘리듯이 내뱉은 한마디였다.


“저 애가 어머니도 없이 저렇게 잘 자라줘서 고마울 따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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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대한제국 육조거리(= 광화문광장).


대한제국의 육조거리는 광화문 앞, 의정부(국무회의)와 육조(이조, 예조, 호조, 형조, 병조, 공조: 각각 인사부, 국무부, 기재부, 법무부, 국방부, 과기부)건물들이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이 처음 세워졌을 때 정도전이 건설한 모습 그대로 유지되는 풍경이었다. 물론 건물들의 형태는 많이 달라졌다. 한옥 특유의 모양만 유지했을 뿐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2~4층짜리 대형 건물들이었다.


의정부 앞으로 천천히 방탄차 한 대와 트럭 네 대가 움직여왔다. 이어서 방탄차에서 붉은 단령 차림의 홍지아와 그 비서관인 강명수가 걸어 내렸다. 그리고 트럭 네 대에서는 고어택스 전투화에 방탄복과 방탄모로 무장하고, 소비에트제 돌격소총과 총검을 쥔 홍지아의 사병 40명이 내렸다.


제국의 치안이 붕괴한 지도 3년째, 한가닥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군대를 기르기 시작했다. 서원(사립대학교)들은 학생들을 교련시켜 사병으로 삼았으며, 대한제국 재벌치고 용병기업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재벌이 없었다.


황국민정당과 대한정우회에게도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거느린 병력이 있었고, 황국민정당 당수 김경훈도 3,000여 명의 경호대라는 이름의 사병을 거느렸다. 막강한 자금력과 권세를 등에 업은 홍지아의 사병은 그중에서도 최강이라, 무장 수준이 대한제국 정규군을 능가했고, 곳곳에 흩어진 병력을 모두 합하면 그 수가 5개 사단 5만 7천에 이르렀다.


물론 치안이 아무리 안 좋다 하나 굳이 대낮에 대궐 바로 앞에까지 사병을 끌고 올 필요까지는 없었다. 홍지아 특유의 과시욕일 게다. 그녀가 천천히 의정부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홍지아의 사병들이 일제히 의정부 건물 앞에 살벌하게 포진했다.


업무공간. 그녀가 가장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서는 집무실에 앉아서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건너편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영상 대감,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집무실에서 뵙는 건 3년 만이군요.”


“아, 병참. 오랜만이오.”


병조참판 공지형이었다. 부친 홍경민, 오라비 홍지철, 여동생 홍지아로 두 세대하고도 반 동안 이어져 온 경주 홍씨 세도 집권에 20년째 충성하는 대한정우회 최고의 브레인이다. 현재 사실상 대한제국의 숨통을 붙여놓는 관료집단인 소비에트 유학파, 이른바 소학파라 불리우는 이들의 수장이기도 하다.


“뉴스 보셨소?”


“아니, 대감께서도 뉴스를 보신 모양이군요.”


공지형이 짐짓 놀란 체하며 말하자 홍지아가 실소했다.


“거, 나도 뉴스 정도는 보고 삽니다.”


“그러시군요. 홈쇼핑이나 아침드라마만 보고 사시는 줄 알았더니만.”


홍지아에게 이 정도의 조롱이라도 할 수 있는 인간은 대한제국 관청들의 지붕 아래 공지형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이 이 정도 수위의 조롱을 입에 올렸다간 십중팔구 낙인찍혀서 한 달 안에 조정 밖으로 걷어차이고도 남을 것이다. 공지형이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소학파가 없으면 정말로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는 것을 홍지아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흠, 병참, 내 좀 곰곰하게 생각을 해 봤는데.”


“아니, 대감이 생각도 하십니까?”


“이게 죽을라고. 아무튼, 소비에트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좀 있어요. 소비에트는 이제 전 세계의 패권을 집어 삼켰는데, 과연 소비에트의 패권을 거부하고 이제껏 독자적 패권을 유지해 온 대한제국을 그냥 두려고 할까요?”


“그냥 두지 않을 게 뻔합니다. 그래서요. 원하시는 게 뭡니까. 본론만 말씀하십시오.”


“제일 앞에서 말했잖아요. 소비에트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홍지아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덧붙였다.


“좀 이따 의정부 회의를 소집하세요. 육조판서(각 부 장관)들과 고위 관리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좀 해야겠습니다.”


공지형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홍지아의 권세는 충분히 자기 거실에서 대신들을 모으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강대한데, 굳이 의정부 회의를 소집하겠다는 것이다. 저 여자가 영국 망하는 거 보고 갑자기 정신을 차렸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왜요, 나라 국정을 총괄하는 영의정이 의정부에서 회의를 소집하라는 게 뭐 문제될 일입니까?”


“늘 문제될 일만 하시던 분이 문제 안 될 일을 하시니 묻는 거 아닙니까?”


공지형은 대체 저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눈을 찌푸렸다. 홍지아가 까르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