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도시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태어나기도 하고, 청춘을 누리기도 하며, 새끼도 치고, 늙어 죽기도 함.


그래서 도시가 태어난 이후 청춘을 더 오랜 시간 동안 영위하고 수명을 더 늘리기 위해 우리가 하는 것이 바로 도시계획임.


근데 도시를 계획하다 보면 가장 크게 범하는 실수가 크게 3가지 있음.


첫째는 도시 내부의 도로를 넓게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도시의 구조를 바둑판형으로 만드는 것이며, 셋째는 역세권에 오피스 건물을 세우는 것임.




1. 도시는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며 병들고 늙고 죽는가?


도시의 탄생은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문명과 그 흥망성쇠를 같이 하는 자연도시고, 둘째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행정적인 목적을 가지고 조성하는 계획도시임.


자연도시는 대개 대규모의 하천을 끼고 형성되며, 농경사회, 상업사회, 공업사회, 정보사회를 거치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바뀌고 성장해 왔다는 특징을 가짐. 대표적인 자연도시는 로마가 있음.


21세기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자연도시는 서울, 그중에서도 한강 이북 지역임. 많이들 착각하는데 한강 남쪽은 원래 자연도시가 아님. 한국이 1960~80년대에 급격히 공업화될 당시 강제적으로 다 밀고 계획적으로 조직한 계획도시임.


반면 계획도시는 하천을 끼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음. 정확히 말하면, 도시를 계획할 때 애초 하천을 끼고 계획하면 하천이 있는 거고, 안 끼고 계획하면 없는 거임. 다만 수자원 공급을 목적으로 담수원 근처에 계획하는 경우가 많긴 함.


계획도시는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근대적인 형태의 계획도시,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학적으로 계획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의 신도시는 맨해튼을 그 원조로 봄.


21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계획도시, 그중에서도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례는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임. 특히 대표적인 경우가 현재의 강남(별다른 수식 없을 경우, 이하에서 하술하는 "강남"은 "강남구"를 가리키고, "강북"은 "서울 한강 이북 지역"을 가리킴. 혼동 없기 바람)임.


근대 이후 이래 도시의 성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성으로 잡히는데, 첫째는 상업 및 무역을 통한 성장, 둘째는 공업을 통한 인구 밀집으로 성장, 셋째는 국가의 조직적인 성장 추진을 통한 성장임.


3번은 전근대에는 직간접적 사민정책(백제의 익산: 백제 무왕 시절에 미륵사라는 사찰을 건립하여 노동자를 끌어모으고 종교적인 상징성을 부여해 인구를 집중시킴)이나 감세정책(조선의 수원: 정조는 10년간 무명잡세를 감면하는 대가로 수원에 인구를 모음)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현대에는 대개 3을 직접 쓰지 않고 1과 2를 겸병해서 간접적으로 성장을 추진시키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듯.


대개 상업과 무역을 통해 성장하는 도시는 큰 도로, 철도, 혹은 무역항을 끼고 있고, 공업을 통해 성장하는 도시는 광대한 산업단지를 가지고 있음.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공업도시로서 성장한 도시는 포항이 있고, 상업도시로서 성장한 도시는 부산이 있음.


상업도시 중 대표적으로 계획도시에 성공한 경우가 바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처음 도달했을 당시 글자 그대로 늪지대에 불과했는데, 표트르는 늪지대를 개간하고 항구를 짓고 도시를 조성하여 유럽과의 교역을 위한 무역항으로 만들고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 오랑캐에 불과했던 러시아를 당대 유럽 최대의 세력 중 하나로 부상시키는 데 성공함.


공업도시 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는 미국의 시카고임. 시카고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도시화되었을 당시에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의 거대한 공업도시였음.


도시가 병들고 죽는 과정은 크게 3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도심 공동화, 둘째는 교통 단절, 셋째는 물리적 파멸임. 도심 공동화는 한국에서는 아주 흔한 현상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대단히 흔함.


도심 공동화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땅값이 싼 외곽이 새로 개발되고 더 발전된 형태의 거주지역과 경제지구가 도시 외곽으로 점점 밀려나면서 도심은 슬럼화되는 현상임. 한국은 산이 심심하면 튀어나와 있어서 강제로 도시의 면적을 옭아매어 상대적으로 도심의 재개발이 강요되는 편이지만, 평지가 끝도 없이 늘어선 미국 같은 경우에는 갈수록 도시 외곽으로 다 밀려나고 도심 한가운데는 점점 인구밀도가 낮아져 깜둥이들이 몰려사는 슬럼으로 변하곤 함.


도심 공동화는 도심 내부 재개발과 함께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여 치료되기도 하지만, 재개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공동화의 상황이 심각하거나(하술) 국가의 재정상황이 좋지 못하면 그대로 교통이 편한 도심이 버려지며 도시의 교통이 마비되고 외곽 주민들은 더 가까운 이웃도시로 생활권을 옮기며 도시의 죽음으로 이어짐.


교통 단절은 도심 공동화와 약간 다른 맥락인데, 한국에서 교통 단절로 폭망한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안성임. 조선시대에 안성은 조선에서 손꼽히게 거대한 상업도시였으며, 공업까지 겸병하여 조선 최대의 물류 도시로 성장했음. 사통팔달이라는 단어는 조선시대에 사실상 안성을 가리키는 단어였고, 안성에서 만든 유기그릇은 사실상 조선의 표준으로 자리잡아 "안성맞춤"이라는 단어가 안성의 유기그릇에서 나왔을 정도임.


그러나 고속도로와 철도가 안성을 통과하지 않고 그 외곽으로 지나가게 되면서 안성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통 편의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20세기 중후반을 넘기면서 몰락하여 21세기 현재에는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려고 발버둥치는 판국임. 도시 경영적인 관점에서 안성은 "죽은 도시"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만성질환자"에 가까운 상황이 되었고, 아마 앞으로도 다시는 조선 시대와 같은 물류도시로서의 거대한 입지는 가지지 못할 것임.


물리적 파괴는 현대에는 좀 보기 힘들어졌는데 전쟁, 기근, 전염병 등의 이유로 인해 글자 그대로 도시가 물리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말함.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카르타고로 현재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유적에서는 카르타고 유물이 나오지 않음. 로마가 돌조각 하나 안 남기고 다 때려 부숴버려서 지금 카르타고에 있는 유적은 다 로마 유물임.


현대 도시 중에서 가장 이 물리적 파괴를 당할 가능성이 높은 도시는 태평양의 저지대 섬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들인데 야구코난화로 인해서 특별잠수작전을 당하기 직전임. 이석배 박사의 초전도체가 상용화되기만 바랄 뿐.




2. 자동차 중심의 도시는 반드시 죽는다


상술한 "도시계획에서 가장 크게 실수하는 것" 세 가지 중 앞선 두 가지, "바둑판 모양의 도시"와 "넓은 도심 도로"는 한 가지 잘못된 인식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은 도시를 자동차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임. 도시 내에서 움직이는 방도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걸어다니는 거고 둘째는 자동차를 타는 거고 셋째는 지하철을 타는 거임.


이 중 가장 바람직한 도시는 보행자 중심의 도시임. 근데 또 이러면 병신같이 도로를 들어내려는 새끼들이 있는데 보행자 "중심"이랬지 조선시대 도시라고 한 적 없다.


보행자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보행자는 이 세 가지 이동수단 가운데 유일하게 "충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임. 내가 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데 갑자기 핫도그 집이 보여서 시계 보고 "핫도그 하나 사가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핫도그 집이 있는 상가 지하주차장으로 차를 타고 들어가서, 주차를 하고 주차료를 내고 핫도그를 구입한 뒤, 다시 차에 시동을 걸어서 나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움. 열차는 주차의 불편함은 없지만 대신 역세권으로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음.


반면 보행자는 군사학의 보병과 같이, "느리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개체이고, 출근하다가 옆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서 핫도그를 들고 나올 수 있음. 다시 말해서 운전자, 승객, 보행자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이 셋 중 경제적으로 "소비활동"이 가능한 개체는 오직 보행자밖에 없다는 얘기임.


드라이브 스루라는 개념은 이와 같은 운전자의 불편함을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노력이지만 어쨌든 보행자가 마음대로 걷다가 드나들 수 있는 소규모 매장에게는 보행자 외에 고객은 없다고 봐야 함.


따라서 보행자가 많은 도시는 상대적으로 상가와 식당이 많고 노점상이나 푸드트럭도 많으며, 맛집도 많고 바가지도 많음. 다시 말해, 도시의 소상공인들이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시민들이 활발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행자 중심의 도시가 되어야 함.


홍대거리 가봤냐? 거긴 씨발 때려죽여도 차로 못 다님. 이태원도 마찬가지고. 근데 그런 거리가 서울에서 맛집이 가장 많고 소상공인 식당들의 비중도 높으며, 서로 밀어 죽일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림. 이런 곳은 더러워지고 시끄러워질지언정 절대 죽지 않음.


반면 철저하게 자동차 중심의 도시인 강남은 뒷골목에 좁아터진 담배 냄새 나는 거리에 식당이나 매점이 더 많고, 화려해 보이는 도시의 중앙 거리에는 상대적으로 그런 게 적음. 이렇게 되면 이 중앙거리는 어떤 곳이 되느냐면, 사람이 "생활"을 할 수 없고 딱 "업무"만 보는 곳이 됨.


이렇게 되면 이곳은 사람들에게 있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일하는 업무의 공간"으로 인식됨. 다시 말해서 원시인의 사고방식으로 본다면 "동굴"이 되는 게 아니라 "사냥터"가 된다는 뜻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가는 장소가 됨.


상주인구가 줄어들고 업무만 보는 인구가 늘어나면 점점 이곳 땅값과 집값이 오르는 것에 맞춰 사람들은 점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갈수록 도시 외곽에 생활을 위한 인프라가 확대됨. 위에서 말한 도심 공동화가 일어나는 거임.


미국 자동차 중심도시의 대표격인 휴스턴은 얼핏 보기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많으니 경제권이 클 것 같지만, 휴스턴과 대등한 규모의 도시들을 놓고 비교했을 때 휴스턴의 도심부 사무실 공실률은 미국에서 가장 높음.


그러니까 원래 이곳에 대규모로 기업체들이 들어왔다가, 갈수록 부동산 가격은 오르는데 생활을 위한 매점, 휴게시설, 공원 등은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니 거주민들도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이에 덩달아 사무실들이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며 가운데가 비어가는 거임.


그렇다고 해서 저 마천루들을 때려 부수고 재개발할 수도 없으니 휴스턴은 다방면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통편을 확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휴스턴의 공실률은 지난 10년간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출퇴근이 없는 정오경에 휴스턴 도심을 걷거나 드라이브하다 보면 흡사 유령도시처럼 조용한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함.


대표적인 보행자 중심의 도시는 파리인데, 파리는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시의 척추인 샹젤리제 거리조차 보행자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이에 따라 상권이 대규모로 형성됨.


이 어마어마한 수의 보행자 때문에 파리는 거리가 지저분해지는 부작용도 심각하게 겪고 있지만, 대신 재개발 이래 이제까지 도시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의 도심 공동화를 겪지 않았고 앞으로도 겪지 않을 거임.


바둑판형 도시는 자동차의 통행에 편하지만 수시로 등장하는 횡단보도와 지하도로 인해 보행자들의 생활권을 가두게 되고,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넓은 도로는 역시 보행자의 권역을 압박하여 상권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분리하며 도심 공동화를 촉진하게 됨. 피해야 할 대상임.


3. 역세권은 상업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역세권은 위 그림과 같이 정의되지만 사실 그렇게 중요하진 않음.


역세권 주변에 대기업의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얼핏 보면 매우 시간을 절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음. 대중교통을 통해 출퇴근하는 근로자들이 신속하게 출근하고 신속하게 퇴근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임.


하지만 역세권 주변에는 절대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면 안 됨.


이건 수원 영통의 망포역 위에 있는 골든스퀘어라는 상가 건물임. 내가 직접 몇 번 가봤는데 2~3층까진 소규모 매점과 각종 상점으로 빼곡하게 차 있고, 그 위부터는 큰 규모의 병원과 작은 병원이 섞여 자리잡고 있음.


역세권에는 이렇게 상권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야기했듯이 "열차 승객은 운전자보다 자유도가 높기" 때문임. 열차 승객은 일단 열차에서 내리고 나면 거기서부터 목적지까지는 보행자로 변신함. 그래서 가는 길에 보행자와 똑같이 기능할 수 있음.


이 때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1차 역세권에 자리잡고 있는 상권임. 따라서 이곳에 있는 상권은 큰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짐.


또한 한국은 역세권 주변에 고밀집으로 아파트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어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음.


대개 역이 자리잡는 곳은 해당 지역의 중심지이고, 중심지에 생활을 위한 공간, 그러니까 소규모 상점들이 다량 입주해 있는 상가와 거주지역이 뒤섞여 있는 지역이 있다는 것은 이 도시의 도심 공동화를 원천봉쇄하는 의미를 가짐.


반면 역세권에 상권이 없거나 미비하고 거주지역만 댑따 늘려놓으면 사람 살 곳이 아니기 때문에 집값은 오르는데 입주자는 없어지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근본적인 경제 원칙이 무너지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고, 이건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져 경제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


따라서 아파트와 상권을 형성하기에도 모자란 역세권에 오피스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피해야 하며, 역사에서 오피스 단지로 직행하는 대중교통(버스, 트램 등)의 양을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임.



4. 결론


도시계획에서 인프라의 배치와 형성은 이 도시에서 누가 살 거냐는 근본적인 고찰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문제임. 도시계획을 짤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건, 그 도시에서 살 것은 자동차나 지하철이 아니고 사람임.


따라서 도시의 중심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갈 것이냐에 그 중심을 둬야 하고, 사람이 생존할 수 있을 뿐 생활할 수 없는 도시는 도심 공동화와 인구 유출로 인해 병들고 무너지며 결국 죽게 됨.


성공한 신도시들의 사례를 잘 보고 도시의 재개발과 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한 명이라도 더 알기를 바라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