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온 것인가?


연개소문이 마지막 다섯 번째 칼을 허리에 차고, 백마의 등에 올랐다. 고작 서른에 살수에서 수 30만 대군을 장사 지낸 을지문덕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예순이었다. 이 동방의 대국을 자기 손바닥에 넣고 주무른 지도 25년. 연개소문이 성문을 노려보면서 외쳤다.


"문을 열어라!"


이어서 고려의 수도 평양성이 그 성문을 열어젖혔다. 과거 살수에 수나라군을 밟아넣을 당시, 을지문덕이 평양성의 문을 열고 개마기병들을 내보냈을 때와 완벽히 동일한 것이었다.


"발포하라!"


평양성 안에 토산을 쌓고 기다리고 있던 포거들이 일제히 돌을 성 밖으로 던졌다. 성벽을 넘어 날아간 포석은 무려 400보 이상을 날아갔다. 지난날 안시성에 당 태종이 가져왔던 바로 그 포거와 동일한 것이었다.


네놈들이 버리고 갔던 그 포거가, 이제 네놈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연개소문이 소리쳤다.


"전 개마기병은 지금부터 당군의 지휘부가 보이는 그 순간까지 멈추지 말고 진격하라! 경기병대와 중기병대는 적들의 후미와 양익을 타격하라! 전군, 진격하라!"


그대로 날아간 포석들은 얼어붙은 사수를 도강하고 있던 임아상의 패강도행군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어서 사수를 덮고 있던 두터운 얼음 바닥은 박살이 나고 곧바로 그 위를 걷던 당군 병정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기습이다! 고려군의 기습이다!"


임아상이 다급히 소리쳤다.


"전군 신속히 강을 도강하라! 돌이 더 쏟아지기 전에 그대로 나아가야 한다! 움직여라! 어서 움직여라!"


그러나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한 뒤쪽의 옥저도행군은 판단이 달랐다. 방효태가 외쳤다.


"물러나라! 얼음이 모두 깨졌다! 지금 도강을 시도하다가는 몰살할 것이다! 물러나라! 어서 물러나라!"


순식간에 당군 주력부대가 사수 한가운데에 빠져 죽었고 양 도행군은 아비규환에 빠졌다. 그리고 그러던 중에, 평양성 문을 열고 박차 나온 고려 개마기병이 패강도행군을 덮쳤다.


"고려 개마기병이다!"


그 비명만으로도 이미 패강도행군은 전투 의지를 잃었다. 지옥 문을 열고 올라온 기병대라는 개마기병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고려를 대적하는 모든 국가의 일반론이었고, 일선에 서 있던 장병들은 자기 창칼로 제 목을 찌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지축을 울리며 5,000기의 개마기병들이 당 패강도행군 전면에 격돌했다. 개마기병답게 군사학을 무시했고 병법을 무시했으며 물리법칙마저 무시했다. 당 병정이 개마기병을 향해 철퇴를 휘두르면 철퇴가 부러져 나갔고, 도끼로 내려찍으면 도끼 머리가 날아갔으며, 갈퀴 달린 밧줄로 잡아 묶으면 밧줄 잡은 병사가 되려 끌려나갔다.


당 도탕병들이 다급히 개마기병에 맞아 싸웠지만 어림도 없었다. 최선두의 개마기병과 최선두의 도탕병이 격돌하는 순간, 도탕병 기수 본인은 물론이고 안장과 말까지 단 일합에 세로로 반으로 갈라졌다. 도탕병들 전체가 그 모습을 보는 즉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개마기병들은 당군의 방패 전열과 장창열을 회피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우직하게, 평야에서 질주하는 그 속도 그대로 들이받아 뚫고 지나갔다. 장창들이 부러져 하늘로 튕겨나갔다.


당군은 사수 방향으로 내몰리면서, 필사적으로 열심히 고려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상대는 개마기병이었다. 당군 병사들이 그들의 칼을 피하기 위해 사수 연안의 진창길로 들어갔다. 그들의 상식에서 기병은 절대 진창길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개마기병은 마치 비 온 뒤의 웅덩이를 밟듯이 진흙을 마구 밟으며, 지나온 길에 진흙을 사정없이 흩뿌리면서 그것들이 평야에서 달리는 그 속도 그대로 진창길을 관통해 들어왔고, 당군을 사정없이 밟아 죽였다. 급기야 패강도행군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수의 얼어붙은 물 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쳐 달아나기에 이르렀다.


완연한 철갑을 두른 개마기병들이 어찌 사람도 헤엄쳐 건너기 힘든 강에 뛰어들겠는가? 그것이 달아나던 당군의 생각이었고 곧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개마기병들은 물을 피하지 않았다. 그대로 사수에 뛰어들어, 웬만한 물고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그 중장갑을 두른 채로 헤엄쳐서 다가오더니 하나씩 하나씩 창으로 쳐 죽였다.


개마기병들이 말도 안 되는 능력으로 패강도행군을 와해시키다시피 하자, 연개소문이 직접 창을 쥐고 경기병대를 이끌며 그 뒤로 치고 들어왔다. 임아상과 당군 장교진이 그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한편 강 건너편에 있던 옥저도행군과 방효태는 패강도행군이 눈 깜짝할 새에 산산조각나는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 그러나 이미 강의 얼음이 모두 깨졌고 그들은 고립되었다.


마침내 3만에 이르던 옥저도행군이 완전히 와해되자, 사방으로 고려군의 창날이 에워쌌고 그 가운데에는 임아상이 홀로 말을 타고 서 있었다. 연개소문이 말했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소, 임아상. 단지 고려를 지켜야 했을 뿐."


"나 역시 그대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소."


임아상이 칼자루를 쥐고 마지막까지 굳건하게 말했다.


"허나 우리 당은 고려를 살려둘 수 없었소."


"이해하오."


연개소문이 임아상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 역시 당을 살려둘 수 없는 입장이니까."


곧 임아상의 비명이 창날 사이로 스러져갔다. 연개소문이 고개를 돌리고 강 건너편에서 덜덜 떨고 있는 옥저도행군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