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 개경 만월대.


"진정 강조가 패했단 말이더냐?"


"...그러하옵니다, 처음에는 적세를 잘 막아내었으나 장군께서 방심하시는 바람에 거란군이 삼수채를 돌파하고 가까이에 다다랐습니다, 그 후에는 속절없이 밀려 우리 군은 거의 궤멸되었나이다." 


"그럼, 지금 저들이 어디로 향하였느냐?"


"곽주를 함락시키고 서경(평양) 방향으로 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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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내의 분위기는 한층 더 내려갔다. 그도 그럴 것이, 삼한 곳곳에서 긁어모은 30만의 군대가 적을 저지하는데 실패하였고, 통주에서 개경까지는 서경을 제하면 별다른 길목조차 없으니 거란군이 이곳 개경까지 진군할 길이 열리게 된 것과 다름없었다. 


"....이제 어찌해야겠소?"


왕은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한 신하가 나아가 말하였다.


"신이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서경이 삼면이 물로 둘러쌓여있고 지세가 험하여 방비가 쉽다 하나, 지금 남아 있는 적이 만일 서경을 치지 않고 우회하여 바로 개경을 칠 때에는 사직이 위태로워질 것이 자명합니다. 멀지 않은 시기 옛 발해가 국력이 강해 거란과 몇 해를 맞서 싸웠으나, 거란이 장령부를 우회해 한순간에 도읍을 포위하자 보름 만에 사직이 망한 선례가 있습니다."


"지금 강조로 인해 30만의 대병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설령 서경에 병사를 보내도 저들이 서경을 우회하여 곧바로 개경으로 향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었을 것입니다. 하니 우선 동북면의 군사를 개경으로 이동케 하여 왕경의 방비를 강화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분위기가 점점 개경에 군사를 보내는 것으로 옳겨가고 있을 때, 강감찬이 나서며 말하였다.


"여러 제신들이 우려하였듯 거란이 서경을 우회하여 왕경으로 향한다면 더없이 위태로운 일이오나, 저들은 병참로를 확보해야 하니 서경을 우회할 수는 없습니다, 지채문에게 명하시어 휘하 군대를 이끌고 서경으로 합류케 하시어 서경의 방비에 보탬이 되도록 하시옵소서."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만월대 안의 모든 시선은 강감찬에게 향했고, 동시에 곳곳에서 반발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니, 강공께서는 저 전령의 보고를 듣지 못하신 겝니까? 강조 그치가 패해 30만이 날아갔습니다, 30만!"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군사가 서경의 주진군 1만과 지채문의 군사 몇몇, 개경 수비군 뿐입니다. 당장 서경 수비군을 모두 빼내어 개경을 지키게 해도 모자랄 판에 지채문을 왕경 대신에 서경으로 보내자니! 말이 되는 소립니까?!"


"그리고 대관절 무슨 논지로 저들이 서경을 우회하지 못하리라고 하시는 겝니까? 설명을 좀 해 보십시오!"


강감찬을 성토하는 대신들의 성화는 마치 강감찬에게 주먹을 날릴 듯이 크게 험악해졌다. 결국, 왕이 직접 나서며 그들을 정리하였다.


"모두 그만하시오! 지금 이 자리에 짐도 나와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오? 이제 짐은 안중에도 없다 이건가?"


"폐, 폐하, 그것이 아니옵고.."


"화, 황송하옵니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자, 강감찬은 그 틈을 타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비록 저들이 전초에 곽주를 함몰시켰으나 배후의 흥화진을 함락치는 못하였으니 단지 그 한 곳만을 의지해 수십만 군사의 보급로를 운용하기에는 그 위험이 매우 큽니다. 그렇기에 저들은 서경을 함락하여 병참의 거점으로 삼지 아니한다면 이 땅에 깊숙히 갇히게 되니, 결코 서경을 우회하여 왕경을 노릴 수 없습니다.


또한 서경 서쪽으로는 자비령이 있고, 동쪽으로는 영서(강원도 서부)의 험한 산지가 있으니 어느 곳으로 우회해도 서경의 군대가 뒤를 포위할 형국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사면으로 포위당한 군대는 설령 그 수가 1백만이라 할지라도 오합지졸과 하등 다를 자가 없어집니다.


그러니, 서경의 험한 지형에 의지하여 최대한 적의 발목을 서경에 붙잡아 두고, 그 틈을 타 최대한 군대를 수습하여 적의 기세가 꺾였을 때 반격의 적기를 잡아 적을 몰아내는 것이 옳다고 사료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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