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2월 16일, 타이완과 하이난 등을 제외하고 중국 전토를 얼추 평정한 마오쩌둥은 당시 공산주의의 대빵인 소련과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열차편으로 모스크바로 향합니다. 명목상으론 스탈린의 칠순 축하였지만 전임자(?) 장제스가 맺은 중소우호동맹조약이 약간 불평등조약의 소지가 있어 이를 개정하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이미 1949년 중반에 류사오치가 모스크바에 방문함으로써 조약 개정의 필요성은 역설했지만 마오는 자신의 손으로 이를 바꾸려 했던 거죠.


하지만 스탈린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자체는 축하하면서도 원래 있던 조약의 개정에 대해선 애매한 논지로 미루기를 시도합니다. 중소우호동맹조약은 얄타회담의 일환으로 체결된 건데 이를 어기면 얄타회담 체제가 깨진다니,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는 뤼순항에 대한 조항을 건드리려면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니 등등의 이유를 내세워 새 조약의 체결 자체를 막으려 했습니다. 명목상 이유는 앞과 같지만 실제로는 소련에게 실제적인 이익을 주는 이 조약을 포기하는 게 너무 아까웠던 겁니다. 장제스가 쫓겨나서 만주가 반소기지가 되는 걸 막은건 좋았지만 조약까지 개정하는 건 싫었던 거죠.

이런 스탈린의 모르쇠적인 태도에 마오쩌둥은 거의 땡깡 수준으로 대항합니다. 중국에 유리한 신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모스크바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했고 숙소에 찾아온 스탈린의 각료들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스탈린이 자기 방에 도청기를 설치한걸 눈치챈 마오쩌둥은 이를 역이용해 대놓고 방안에서 큰 소리로 "내일 베이징으로 돌아갈거다. 여기서 할게 뭐가 있냐?"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한거라곤 날마다 여기(숙소)서 먹고, 싸고, 잠만 잤을 뿐이다!" 라며 혼잣말을 해대며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마오쩌둥이 떼를 쓰자 완강한 스탈린도 결국 포기했고, 1950년 새해가 되자마자 신(新)중소동맹조약을 체결해 주겠다고 알려줬습니다. 이후 저우언라이 등이 동참한 장장 한달여의 중소간 협의 끝에 1950년 2월 14일에 체결된 신 중소동맹조약은 1950년부터 5년에 걸쳐 중국이 소련으로부터 기계 설비와 무기를 구입하는 데 쓸 돈 3억 달러를 소련이 연리 1%의 저리 차관으로 제공하고, 기존에 소련의 이익으로 보장되었던 창춘 철도와 뤼순, 다롄항의 지위도 새로 규정하며, 소련은 156건에 달하는 기술, 인프라 지원을 중국에 해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국으로써는 최고의 새해 선물이나 다름없었죠.

또한 이로써 소련은 만주 지역의 이권과 안보 거점(뤼순, 다롄) 상당수를 포기할수밖에 없었고, 이 이권을 다른 곳, 즉 한반도에서 보충하려 1950년에 들어 김일성의 남침을 적극 지원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실제로 1950년 초부터 스탈린이 본격적으로 남침을 지원해준 걸 보면 설득력이 없는 주장은 아닌 것 같네요.

 출처: 네이버 블로그 무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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