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참 별 일도 다 있다.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 왔을때가 아마도 고등학교 수학 여행때였지. 흔히 한중관계라고 말하는 무언가가 아직 제대로된 형태로 존재 하긴 하던 시기의 끝물. 공항 검사는 일본 여행 갔을때보다 훨씬 더 깐깐했었더랬고, 공기는 더럽게 나빴더랬다.

 아주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분명히 좋은 경험도 있었다. 꽤 마음씨 좋은 음식점 주인에게서 만두를 한두개 더 받아먹은 적도 있었고, 유쾌하게 한국 피를 이어받았다 운운하며 지루한 중국 역사 투어를 덜 밋밋하게 만들었던 조선족 가이드도 있었고, 열거하기도 힘든 친구들의 장난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다시 이곳으로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들었다. 차라리 다른 나라를 갔으면 더 나았을것 같았거든. 뭐 이유라면 이런 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게 야외인지 삼교대 펌프질하는 공장인지 구분이 안가서, 였다. 그래서 수능을 끝내고 가족 여행을 갈때도, 입대 이전에 배낭여행을 갔을때도 중국만큼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이렇게 오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안보교육을 하며 배운, 적화통일이나 전쟁터가 된 우리 고향 - 나는 대전이었다. - 같은건 없었다. 세계 1위의 군대는 괜히 세계 1위의 군대가 아닌건지, 잘난 동맹군 덕에 전쟁 극 초반을 이후로는 줄곧 우리가 두들겨 패는 입장이었다.

 전쟁 극초반에는 남산타워에도 미사일을 꽂아넣을정도로 잘나간 중공 공군은 얼마 안가 도도새 신세가 되었고, 기세 좋게 출항한 중국의 항모전단은 남중국해 어디선가 격침되어 팔십년전의 선배들과 함께 누워있다.


 물론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는 사람들도 꽤 많이 죽었다. 그리고 울적할 틈새도 없이 고생을 많이했다. 그리고 많이 바뀌기도 했다.

 처음에는 사람을 죽인다는것 그 자체에 쫄았었고, 이상한 꿈도 많이 꿨다. 죽기 싫어서 죽인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시점부터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종국엔 무더기로 쌓아놓은 놈들의 시체를 보며, '저걸 연료로 비누로 쓰자'던 누군가의 질나쁜 농담에 웃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나은 편이었다. 원래는 후방에 있으면서 중공 공수부대의 잔당이나 청소했고, 그리고 몇달 있다가 미 해병 원정대와 우리 해병대에 후속해 곧바로 난퉁에 상륙했고 종국엔 여기에 오게 되었다.


 꽤 오래간은 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느꼈지만, 아까 만난 옛 고등학교 동창을 보니 그나마 상전이었다는걸 알게 되었고 이렇게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뭐라더라, 철원에 있다가 원산으로 가고, 가다보니 함흥 찍고 말로만 듣던 연변에 갔다가, 재수없게 중공군의 반격에 걸려 부대가 박살내고 재편되고 나서는 창춘으로, 선양으로, 그리고 심지어 베이징으로까지 갔다고 했다. 마오의 초상화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걸리는걸 직접 먼저 봤다나?

 그리고는 쭉 내려오다보니 우한까지 갔는데, 그 유명한 우한 전투 - 여기서 한미일 기타등등 연합군은 난창까지 노려보다가 난징 근처까지 오게되었다. 우리는 그냥 우한 전투라고 부르는데, 중공놈들은 그 전투를 2차 우한 전투라고 부른다. 1차는 중일 전쟁때 있었던 일본군에게 쓴맛을 안겨준 전투라고 했던가. 지잡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내 선임의 말로는 나름의 프로파간다라고 했다. - 에서 죽을뻔 하고 여기까지 후송되었다고 했다.


 뻥카가 섞여있기야 하겠지만, 대부분은 사실일 것이다. 그런 드라마틱한 부대가 한둘도 아니고, 가끔은 녀석의 부대보다 더한 한 이십년뒤에는 서프라이즈에 나올법한 부대도 진짜 있었으니까.


"여하간...."


"..? 뭐라고 하셨슴까?"


"아니,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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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이 턱 막힌다. 안그래도 더운데다가, 이리로 저리로 날아가고 깨지고 터지고 튀는 전투의 부산물들 덕에 먼지가 잔뜩 피어오르고 화약 냄새까지 짙어서, 수학여행 시절로 돌아간것 처럼 숨이 막혔다.

 웃긴건 그런 상황에서 담배가 피우고 싶다는 거였다. 디스고 말보로고, 아니 그냥 길가에 떨어진 장초라도 상관없으니 피우고 싶다. 드라마틱함은 남들이 겪는걸로 족한데, 왜 또 내가 지금 이시점에서 겪고 있어야 하나.


 저 너머, 콘크리트 덩어리와 가구들을 쌓아 만든 진지들 뒤에는 자칭 인민해방군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칭이다. 

  꼰대 영감들이 흔히 말하는,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밀려오는 인해전술의 중공군이나 몇년전까진 좀 보이던 소위 중뽕들이나 조선족이 묘사하곤 하던 미군은 금새 뛰어넘을 최신 장비로 무장하고 온갖 돈지랄을 써댈 그런 잘나신 중공군도 없고, 전쟁 초반의 현실적으로 어마무시했었던 중공군은 이제 없다.

 저기에 있는 놈들의 실상은 지휘체계고 뭐고 다 무너져버린 시점에서 발악하는 전직 군인으로 이루어진 한무리의 잔당에 불과하다. 한 두세달만 늦었으면 그냥 파르티잔이 될 것들이었다.


 씨발, 난징과 베이징이 함락된 시점에선 보통 살려만 줍쇼, 하고 무기 내려놓고 항복해야하는거 아닌가? 미친 놈들. 톈산 산맥 어딘가의 벙커에서 니나노 하고 있을 마오주의의 마지막 잔당 겸 급살맞을 늙은이들의 몇마디가 뭐가 좋다고 저렇게 유난을 떠는건지.


"우리네 헬기는 어디갔냐?"


"니미, 아까 내뺐잖아요!"


 아까 머리를 뚫리고 나자빠진 후임놈 대신 해병대 특유의 빨간 명찰을 단 아저씨가 대답해줬다. 그래, 맞지. 네대가 날아와서 갈겨대다가, 두대가 대공미사일을 맞고 어딘가로 쳐박혀버리자 플레어를 뿜으며 내뺐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도움이, 안되요! 도움이!"


 억지지만 그냥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저 뒷편에서는 우리네 박격포대에선 열심히 포탄을 날리고 있었고, 덕분에 가끔은 저편에서 육편이 튀기고 진지가 하나씩 침묵하지만 도무지 끝날 기미가 안보인다. 날아들 총알은 날아든다 이건가. 슬슬 열이 뻗친다.

 이러다가 뒈지긴 싫다. 전쟁 초반에 서울이 위협받던 시점이면 몰라도, 지금은 죽으면 정말로 억울한 시점이다. 거의 다 왔는데, 거하게 배상금 뜯어내고 연금 좀 탈 수 있는 시간이 머지 않은거 같은데 이 폐허더미에 몸을 쳐박으면 그것만큼 욕나오는 일은 없을거 같으니까.


 금새 탄창이 다 비어버렸는지, 방아쇠를 당길때 으레 나야할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몇마디 욕을 웅얼거리며, 너절하지만 일단은 꽉 찬 탄창을 박아넣고, 노리쇠를 당겼다.

 머리를 들어올려서, 저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들에게 나라를 위한 죽음을 안겨주고 싶었다. 빨리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이쪽으로 집중된 녀석들의 총알세례덕에 금방 머리를 숨겨야 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알보병이라고 할만한 애들은 다들 머리를 잔뜩 숙이거나 전차 뒤에 엄폐하고 있다. 무반동총이고 기관총이고 신경도 쓰지 않고 튕겨내며 꿋꿋하게 적의 진지들을 날려주는 케이투 전차들 덕에 천천히 밀고 나가고는 있어, 아주 처량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런 식으로 한 십분을 천천히 밀기만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999k가 신나게 울리면서, 뒤로 좀 빠지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포격인가? 아마 그렇겠지.

 

 내 추측은 곧 확신이 되었다. 소대장이 이제사 도착한 육자대 애들이 저쪽을 좀 두드려줄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래야지. 나는 여태까지 잘 버텨온 고마운 콘크리트 더미를 버리고, 아까 RPG를 맞고 전면 장갑이 잔뜩 찌그러진 케이투 전차 뒤에 숨어들어 뒷걸음을 쳤다.

 

 그 시점에서 웃긴건 저 멀리,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약간의 환호성이 울렸다는거다. 완스이?뭐지, 혹시 자기네 저항이 너무 대단해서 우리가 물러나는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착각도 저정도면 죄지.


 그 터무니 없는 착각을 깨는 순간이 다가왔다. 구멍이 잔뜩 나고 너덜너덜해진 오성홍기 주변으로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게 콘크리트 파편이 튀었다. 펑, 하는 소리에 아마 사람이었을 고기조각이 튀었고, 펑, 하는 소리에 전차포 사격에도 멀쩡히 서있던 오성홍기가 넘어갔다.


 그리고 더이상 펑, 펑 하는 소리 하나 하나를 짚어내기도 어려운 시점에 와서는,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이런 저런 탄약을 그러모아둔데에 포탄이 직격했는지 고개를 들어올려야 끝을 볼 수 있는 화염이 솟아났고, 어쨌건 나름 방비되는 진지라는 인상을 주던 곳은 차라리 지진 현장에 가까운 곳이 되었다.


 이상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기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저기 있던 놈들이, 꼭 상황을 다 파악하고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긴게 아니라, 파국이 잠깐 유예되었을 뿐임을 알고, 절망하면서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복수심이 넘실거렸다.


 "저정도면 야코가 팍 죽고 막 써렌다! 써렌다! 하면서 항복해야 하는거 아닌가?"


 "아저씨가 저 치면 그렇겠수?"


 "씨발 일단 살고 봐야지. 저거 맞고 살아있으면 그냥 항복하라는 계시 아니냐?"


 "웜멤메. 비국민 납셨네."


 동기 하나와 아까의 해병대 아저씨가 시덥잖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해병대는 강남 전역 초반부터 중반까진 미군과 함께 굴렀기에 저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때 중국군은 지금보다 덜 절박했고, 또 미군의 화력은 놈들의 기를 팍 죽이는데는 제격이었으니까. 


 포격이 대충 멎어갔다. 곧 이미 적 중화기 세력은 거의 저 포격에 나가떨어졌을거니, 먼지가 대충 걷히면 돌격할거라고 부소대장이 말했다.


 총검을 꽂았고, 반쯤 쓴 탄창도 갈아끼웠다.

 문득 어딘가서 주워들은 덤덤탄 이야기가 생각났다. 몸 속에 박히면 막 벌어져서 빼내기도 힘들고 더 아프다고 했었는데. 그게 지금 있으면 좋을거 같은데.


 "돌격!"


 적색 신호탄이 솟아올랐다. 모두가 고개를 쳐들고 자유 대한 만세 따위의 구호를 내뱉으며 힘차게 발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갔고, 찌그러진 케이투 전차들도 신나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르릉, 하는 엔진음이 왜인지 기분좋게 들린다.


 반격이 아예 없는건 아니었다. 기관총은 다 뒈져버린 모양이지만, 21세기인 이상 연발로 쭉쭉 나가는 소총탄은 없을수가 없으니까. 재수없는 몇몇이 악,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수류탄 몇개도 또르르 굴러왔다.


 하지만 또르르굴러온 수류탄은 다시 저편으로 배달되었고, 다친 몇은 의무병들이 후송해갔다.


"니넨 졌어, 씨발새끼들아."


 악에 받쳐 나온 말을 웅얼거리며, 바리케이드의 잔해를 넘어갔다. 이미 고기가 된 인간이었던 무언가가 수두룩했고, 팔다리가 날아가 신음만 하고 있는 새끼들도 몇 되었다.

 살짝 구역질이 나고, 동정심도 들 찰나, 어께가 선뜻해졌다.


 뒤돌아봄과 동시에, 아무렇게나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운이 좋은건지 뭔지, 개머리판은 놈의 턱에 직격했다.


 그래, 짱깨다. 짱깨. 적기를 잃어버리고 반격을 얻어맞은 놈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개머리판으로 한대 더 내려쳤다. 쓰러졌다.


 총검을 목에 꽂아보려고, 내리찍었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는지, 엉뚱한데에 꽂혔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내 눈앞의 짜장 하나를 사천 짜장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생각 외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또다른 적의 가능성? 상관없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그래서, 단단히 땅에 꽂힌 총은 버리고서 여전히 쓰러져있는 놈의 위에 올라탔다. 언젠가 왼손에 쥐게 된 짱돌 - 또는 콘크리트 조각. 기억이 잘 안난다. - 을 높이 들어올려, 내리찍었다.

 퍼적. 놈의 코가 반쯤 뭉개졌다.

 다시 한번 퍼적. 남은 코가 다 뭉개졌다. 이 와중에도 놈은 손을 들어올리며 내 목을 조르려 했다. 팔이 짧아 닿지 못했지만.

 퍼걱. 광대뼈가 내려앉았다. 녀석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지고 그 자리를 절박함이 채웠다.

 푸득. 입술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피가 내 콧잔등에 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가각. 놈의 얼굴은 조금만 손을 더 쓰면, 인간의 얼굴이라고 애매할 단계로 접어들었고, 허공을 휘젓고 멱살이나 잡아보던 팔은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짱돌을 쥐고 있던 왼손을 들여다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까의 찍기질로 만든 피떡이 하나인줄 알았는데, 둘이었던거다.


  너덜너덜해진 왼손과 비교적 멀쩡한 오른손으로 총을 잡고, 일어섰다. 

  살아남았고, 판세를 대충 알아챈 - 또는 이제사 정신을 차린 - 짜장 몇이 도망치는게 보였다. 대충 자세를 잡고 총알을 퍼부었다. 쓰러지긴 했는데, 내가 맞춘건지는 모르겠다.


 "야, 엎드려!"


 해병대 아저씨가 내 뒷목을 잡으며 말했다.

 아저씨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셌고, 나는 그대로 넘어져 콘크리트 무더기에 쳐박혔다.

 

 아까까지 지긋지긋하게 들어야 했던 중공 기관총의 총성이 다시한번 거칠게 울렸다. 궁지에 몰린 그들의 마지막 역습이었다.

 나는 같이 엎드리고 있는 해병대 아저씨와 함께, 알던 사람 몇과 모르는 사람 몇이 쓰러지는걸 봤다.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슬로 모션 같았다.

 토마호크에 두드려맞은 마트의 잔해에서 한때 이곳이 롯데 마트였음을 알려주는 흔적을 보며 낄낄대던 후임의 머리가 편지봉투 열리듯 톡 터졌고,

 생라면으로 장난스레 툭툭 때려대길 즐겨하던 부소대장이 피 안개를 피우며 아까의 포격이 만들어낸 구덩이에 고개를 쳐박았고,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비싸보이던 시가를 가지고 애지중지하던 소대장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저 씨발새끼들!"


 내가 콘크리트 더미에서 몸을 일으킨건, 우리쪽의 사격이 그쪽으로 집중되면서 기관총의 사격이 멎었을 즈음이었다.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나를 가까스로 살려낸 해병대 아저씨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건, 저 임시 기관총 진지 안에 뭐가 있건, 그냥 뭉개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전쟁 내내 어떻게든 살아나서 집에서 샤워를 하고 24시간쯤 푹 자는 꿈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이었고, 복수심에 불타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우연찮게도 나와 비슷했던 해병대 아저씨들, 그리고 부대원들과 함께 잠잠해진 진지로 달려들었다.


 안에 있는 사람과 사람이었던 것은 총 다섯.

 기관총의 방아쇠에 여전히 손이 간채로 죽은 사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살아있었다. 기관총을 제외한 총기는 모두 망가지거나 총알이 다 떨어진건지, 다들 몽둥이나 21세기식 항일대도를 들고 있었다.


"웨이트! 웨이트! 위 써렌다! 써렌다!"

 

 포위되고, 죽기 직전이었던 그들의 움직임은 꽤 희극적이었다. 갑자기 한국군 장병들에게 에워싸이자 갑자기 무기를 버리고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엉터리 영어로 우리에게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유 노우 제네바 트리티? 유 머스트 ... 어... 리브 어스! 포기브? 포기브 어스! 위아 프리즈너!"


 뻔뻔함과 용감함의 곤란한 이인삼각이었다.


"... 어쩌지?"


 해병대 아저씨가 그들을 슥 보며 물었다.


 사실 답은 정해져있었다.

 

 옳지 않다는걸 알지만, 뭐 어떤가. 국제법이고 뭐고 개나 주라고 그래라.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이성적이고 인간적인 판단을 기대하나? 똥통속에서 별을 잡아보려 한들 되겠나?


 그래, 따지고 보면 모든게 저놈들 잘못이다. 죽어버린 부소대장, 살아봐야 병신이 될 소대장, 아까 머리를 잃은 후임, 그제 쓰러진 선임들과 동기들, 수많은 아저씨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민간인들... 모두가.

 이건 단순히 자기위안적 행위이면서도, 깔끔한 복수이다. 저들이 원래 어떤 작자들이었는지는 상관없다. 어쨌거나 적이고, 어쨌거나 죽어야할 개새끼들이다.


 잠깐은 주춤했던 분위기가 결연한 분위기로 반전되었고 조져야죠, 라던가, 이미 죽었던 걸로 칩시다 - 하는 말이 여럿 나왔다. 


 남은건 누가 방아쇠를 당기냐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들의 항복 선언을 처음으로 들을때와 같이 모두가 주춤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통쾌하면서도 죄는 죄인 일을 해주길 바라는 눈치.


 이런 상황에서, 나 이외의 사람이 그 누군가가 되어주기를 바라는건 양심 불량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나는 총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용서합시다."


 그리고 총을 들어, 탄창을 비웠다.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졌던 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미 죽었으니까요."



 출처: https://m.dcinside.com/board/war/415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