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인간이 별을 여행하게 된 시대는 나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빨리 다가왔다.


그게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있지, 우주를 항해할 때에는 지구하고 시간이 다르게 흐른데.'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녀석, 한나와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 봤던 것이 발단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국제연합 우주군 소속 군인이었던 한나는 내게 있어 유일하게 친구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국제연합 우주군 사령부가 바로 옆 동네에 있었던 만큼 우리의 만남은 별로 특별할 게 없었지만, 관계만큼은 특별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갑자기 특수 상대성 이론은 왜.'

'글쎄. 왜일까?'


다만 그날 녀석이 보였던 모습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서로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르테미스 계획 이후 진행된 세이건 미션에서 우주괴수의 사체와 그들의 모성을 발견한 것이 시발점이라면 시발점이었다.


이듬해 인류 최초의 유인 외우주 탐사대 '암스트롱 함대'가 창설되고, 탐사 도중 조우한 그들 우주괴수에 의해 전멸.


가까스로 귀환한 한 척의 탐사정에서 얻어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면전을 상정한 전투 함대인 '올드린 함대'가 창설되기에 이른다.


내가 두 살이 되던 해에 세이건 미션이 종료된 걸 생각하면 고작 15년 만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역시…, 가기로 했구나.'


제발 부정해줬으면 했던 나의 지레짐작에 한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말하기를, 녀석의 부모님은 각각 올드린 함대 수반함의 부장과 군수참모 직책을 맡게 됐다고 했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녀석은 아직 미성년자였고, 따로 전문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너한테는,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나 그런 기대는 한나의 그 말 한마디에 사형 선고를 받고, 확인 사살까지 당한 셈이었다.


'거기서 1년이 지나면 지구에서는 7년이 지나간다고 해.'


내가 무어라 대답할 틈도 없이 말을 이어나가는 녀석의 옆모습에선, 그 나이 또래에 맞지 않는 처연함이 비쳐 보였다.


그야 그렇겠지. 


왕복 7광년 거리의 여정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오면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지날 터였으니 말이다.


'우리 함대에 미성년자는 나 혼자래.'


그러니 거기까지 얘기를 들은 내가 한나에게 해줄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럼 나도 같이 갈게.'


그게 말도 안 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직…,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별을 떠나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한나를, 난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도 널-.'

'그건 안돼.'


하지만 그런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너까지 나와버리면 나중에 지구로 돌아왔을 때 누가 날 반겨주는데.'


장난스레 미소 지으며 했던 말이었지만,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건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서로 소속된 함선이 달라 어지간해선 하루아침에 홀몸이 될 일은 없다 쳐도, 가족이 모두 지구를 떠나게 됐으니 연고가 남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런 것들보단 녀석이 날 그 정도로 각별하게 생각해주고 있었다는 것이 기쁠 따름이었지만. 


'그리고 내가 살아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되어줬으면 하거든.'


그 말을 들은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불과 몇 초 전과 같이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도 없었고.


살아 돌아와야 할 이유.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러니 마냥 당신을 따라가겠다는 식으로 생떼를 부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았어.'


솔직한 심정으론 군적도 없이 무급으로 일을 하게 되는 일이 있어도 따라가고 싶었다.


'환영파티, 준비하고 있을게.'


하지만 그런 말까지 들었으니, 될 수 있는 한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꼭 살아서 돌아와.'


시큰거리는 콧잔등을 눌러가며 애써 의연한 척 그 말을 전할 때, 녀석은 그저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떨어진 눈물이 지면을 적시고, 두 뺨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에도 녀석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고민 끝에 전한 그 말이 조금은 기쁘게 들렸을까.


너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을까.


'……!'


나로선 알 길이 없는 것들로 고뇌할 즈음, 입술에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당황해서 앞을 보니, 두 눈을 꼭 감은 채 입을 맞추고 있는 한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몸으로 겪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약속, 꼭 지켜야 된다?'


그 영원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한 발짝 물러서 그리 말한 녀석은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집을 향해 내달렸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한나의 모습이었다.


그날부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나는 나대로 많은 일을 겪었다.


홀로 학교를 졸업하고 밥벌이를 위한 기술을 배웠으며, 그러는 동안에도 한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준비도 잊지 않았다.


한때는 나를 두고 떠나버린 녀석을 원망하기도 했고 이대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고도 생각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어린 날에 힘든 결정을 했던 한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부정적인 생각을 품었던 것을 후회했지만 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어쩌면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녀석을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감정을 당사자에게 전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겠지만 말이다.


첫 키스의 강렬한 추억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별빛을 따라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 터였다.


"오늘도 별 보니?"


그때의 추억을 곱씹으며, 마당에서 천체 망원경을 조립하던 나를 본 어머니는 그리 물어오셨다.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은 날이 날이었기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다시 망원경 조립에 정신을 집중했다.


적도의에 경통을 올리고 파인더와 천정미러를 결합한 뒤, 아이피스를 끼우는 것으로 대략적인 작업은 종료.


워낙 세상이 좋아져서 망원경과 연동된 휴대전화 어플로 밤하늘을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별의 흔적을 쫓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오늘은 한나가 저곳으로 떠난 지 딱 10년이 되는 날이었으니까.


"너도 참 별난 애네."

"옆에서 지켜주지도 못하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죠."

"그렇게 후회할 거면 그때 그냥 따라가지 그랬니."

"……"


어머니의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을 말한다 해도 아마 어머니는 이해하지 않으시겠지.


10년 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해온 일들을 말이다.


지금도 녀석이 계속하고 있을 여정을 지켜보기 위해 대형 망원경을 구입할 때에도.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라 한 글자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매겨 받던 스타 레터 서비스를 매월 이용할 때에도.


답장을 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10년 동안 메시지를 보냈던 옛 휴대전화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을 때에도.


나는 언제나 한나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그런 내 모습이 어머니에겐 답답하게 보였을 것이다.


"적당히 하다 들어와. 감기 들라."


순간 어두워진 내 표정이 못내 마음에 걸린 것인지, 어머니는 그 한마디를 덧붙이곤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은 그만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막 배율을 변경한 아이피스에 눈을 가져다 대자, 지금까지 봐온 것들과는 또 다른 세계가 동공에 비쳤다.


데네브, 알데마린, 카프. 


언제 빛났을지도 모를 과거의 수많은 별빛들이 망원경의 렌즈로 모여들었다.


그 중에서 내가 보고자 했던 건 세페우스 자리의 델타성 아래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작은 별 하나였고.


세이건 581. 


25년 전 있었던 세이건 미션 도중 발견된 G형 주계열성으로, 지구에서 3.5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그 별은 우리 인류를 위협하는 우주괴수의 모성이기도 했다.


그들 우주괴수는 이미 한 세대도 전에 카르다쇼프 척도에서 현대 인류 문명을 제친 존재였다.


문제는 그것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의 군집을 이룬 채, 태양계를 향해 접근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존재 때문에 나는 녀석을 우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젠장."


다시금 떠오른 아픈 기억에 말아쥔 주먹의 손톱 밑으로 핏자국이 배어 나왔다.


대충 소매로 닦아내고 다시 들여다본 망원경의 아이피스 너머에는 여전히 세이건 581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다만 기분 탓인지, 순간적으로 망원경 한구석에서 작은 빛 한줄기가 스쳐 지나간 것만 같았다.


"괜히 더 보고 싶네."


그걸 보고 문득 든 생각은 나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자괴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런 한심한 모습으로 한나를 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10년 전 그날부터 수없이 다짐했던 것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며, 나는 그날의 천체관측을 마쳤다.




1.


"아들, 빨리 일어나서 뉴스 좀 봐!"


다음 날 아침, 좀처럼 듣기 어려운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올드린 함대, 1년 5개월 전 세이건 361 행성계 부근에서 적 조우.'

'전투 승리했으나 피해 막심. 현재 사상자 집계 중.'


긴급 속보로 흘러나오고 있는 그 내용에 나는 졸음이 싹 가시는 것과 함께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TV에 얼굴을 비춘 앵커들의 말투는 다급했고, 자료 화면에서는 작은 점들의 집합으로 보이는 올드린 함대의 1년 5개월 전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항상 이랬다. 


저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나면 이쪽은 항상 뒤늦게 그 소식을 듣게 된다.


3개월 전 있었다던 소행성 지대 통과 때가 그랬고, 1년 전의 항성 폭풍 직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선 각각 8년, 3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녀석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면 갈수록 상황 파악에 걸리는 시간도 같이 늘어났다.


우주 공간에서 열화되지 않고 빛의 속도로 메시지를 전송해 준다는 스타 레터 서비스를 이용해도 말이다.


물리법칙 상 그걸 뒤엎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분한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들."


지구에서 세이건 361까지의 거리는 1.4광년. 


뉴스의 자막이 말해주듯 이쪽에선 1년 5개월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들."


당연히 그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저곳에서의 시간은 계속 흘러갈 테고, 어쩌면 이미 상황을 수습하고 목적지를 향한 항해를 재개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이것도 지나치게 희망적인 관측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재원!'


어깨가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어머니의 고함이 귓전을 때렸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시선을 맞추니, 어머니는 걱정 어린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답도 안 나오는 문제를 가지고 나 혼자 과몰입 했었던 모양이다.


"괜찮아요. 잠깐 생각 좀 했던 것뿐이에요."

"미리 말하지만, 절대 안 된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생각이라는 단어에서 무얼 읽어낸 건지, 어머니는 얼굴을 싹 굳히면서 그리 답하셨다.


뭐 내가 이 나이 먹고 우주함대 모집병 지원이라도 한다고 생각하신 건가.


"어제하고 말씀이 다르시네요?"

"넌 이 애미가 하나밖에 없는 새끼 기다리다 혼자 늙어 죽는 꼴 보고 싶니?"

"농담이에요, 농담."


그래, 농담이다.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으니까.


다른 곳도 아닌 이곳 지구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녀석, 한나와 지켜야 할 약속을 말이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지금은 그저 녀석이 무사하길 빌며 나의 과업을 이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 출근하러 나가볼게요."

"아침밥 먹고 가. 미역국 끓여놨어."

"밥 생각 없어요."


출근 시간까진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았었지만, 아침부터 저런 뉴스를 본 마당에 입맛이 돌 리가 없었다.


대충 츄리닝에 깔깔이를 챙겨입고 대문 밖을 나서니, 초겨울의 쌀쌀한 아침 공기가 온몸을 에워쌌다.


내 직장이라고 해봐야 집 근처 우주군 사령부 예하 방공부대에서 화기 운용을 지원하는 계약직이었다.


그전에는 통합군에서 비슷한 일을 3년 정도 했었고.


혹시라도 상황이 닥치면 녀석을 마중 나가기 위함이었다.


"이 주임님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어, 그럴 게 있어."


위병소 정문에서 말을 걸어오는 초병에게 신분증을 건네고 들어선 부대 안의 풍경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이곳 301 방공대대의 상위부대가 국제연합 우주군 아시아·태평양 사령부이긴 해도, 통신을 중계하는 제대가 아닌 이상 달리 할 일이 없는 게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부대 자체가 올드린 함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최우선으로 취합하고 공포하는 곳인 만큼 정보의 접근성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것이 내가 더 나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면서까지 이곳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고.


"이 주임 어서 와요."

"아, 1포대장님."


담당구역인 1포대의 포상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교전통제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포대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주임.


위병소에서도 들었던 말이었지만, 말이 좋아 주임이지 그냥 계약직 나부랭이에게 듣기 좋으라고 붙은 직책명이었다.


"얼굴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요?"

"별일 아닙니다. 어제 늦잠을 자서…."

"그럼 다행이고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그 말과 함께 손수 교전통제소의 문까지 열어준 1포대장은 지휘관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마 최근 시작했다던 모바일 게임을 하는 것이겠지.


나와 같은 통합군 출신에 GTG 임관 7년 차인 그는 행동거지가 좀 미덥지 못하긴 해도 근본은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주임도 그냥 쉬어요.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장비 점검하고 BCU 체크는요?"

"방금 막 끝났다고 소대장들한테서 연락 왔어요."

"그럼, 진짜 쉬어도 되겠네요."


나의 대답에 1포대장은 손을 내저으며 그러라 말했고, 혹시나 해서 넘겨본 캘린더에도 특별한 일정은 적혀있지 않았다.


지금쯤 사령부 본부근무대하고 통신여단에는 비상이 걸렸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여유시간이 생기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전화를 꺼내 집에서 보다만 뉴스를 마저 보는 것이었다.


'UN 우주군, 이번 전투 사상자 최소 960명으로 전망.'

'올드린 함대 보고서 계속 도착 중이나 전파 열화 심해 정확한 상황 파악 어려워.'

'정부, 내년 상반기 출진하는 4차 외우주 원정함대 지원자 모집 앞당기기로 해.'


역시 뉴스에선 좋지 않은 소식들만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올드린 함대 총인원이 1만 명을 조금 넘었던 걸 생각하면 첫 전투에서 1천 명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목적지까진 아직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미지수고, 가장 가까운 지원전력인 가가린 함대와의 거리는 0.5광년이나 차이가 났다.


그러니 정부에서 다음 원정함대 지원자를 조기 모집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류에게 있어 이 전쟁은 종족의 명운을 건 싸움이었고, 그런 만큼 다수의 보험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UN 우주군, 전사상자 명단 발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씻어내기 위해 이런저런 분석을 하는 것도 잠시, 뉴스 영상의 하단 전체를 가리는 큼지막한 긴급 속보 자막이 띄워졌다.


곧바로 UN 우주군 웹사이트에 접속해 공지란에 막 업로드된 PDF 파일을 다운받아 열었다.


목차에서 찾기 버튼을 누르고 한나의 이름을 한 글자씩 입력해 나가는 동안,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댔고 호흡은 가빠져 갔다.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Cdt. Hannah Lovell - Missing in Action'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레 치켜뜬 눈앞에는 사실상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결과가 적혀져 있었다.


Missing in Action, 작전 중 실종. 


빛도 물도 산소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실종이라니, 말장난에도 정도가 있다.


실종은 어떤 경우를 실종으로 분류하는 건지, 실종자에 대해선 어떠한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PDF 파일은 물론 웹사이트, 뉴스에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당장 사령부 작전통제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따지고 싶었다.


내가 지금 따뜻한 트레일러 안에서 뉴스나 보고 있는 동안, 한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별 보기를 좋아하고 적당히 비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으며, 철 지난 별자리 운세를 진지하게 믿던 열일곱 소녀가.


곧잘 시답잖은 얘기에 열을 올리고 나이도 같은 주제에 조금이라도 더 어른스러운 체하려던 그 소녀가.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기약 없는 구조를 기다리며 천천히 식어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씨발……."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집어삼키기 위해 깨문 입술에서 피가 맺혀 흘러내렸다.


대체 무엇을 추억하고 무슨 약속을 지킨단 말인가.


그 약속의 당사자는 이미 우주의 먼지가 되어 흩어졌을지도 모를 일인데.


설령 살아있다 해도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받으며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그저 약속을 지킨다는 핑계로 고향에서 안락한 삶을 영위해온 피보호자일 뿐이고.


‘♬♪𝅘𝅥𝅯♫’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현실에 절망하여 자괴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의 알림음이 귓전을 때렸다.


하지만 손에 쥐고 있던 것의 화면을 켜봐도 도착한 메시지는 0건.


"설마……!"


말도 안 될 일이겠지만, 정말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깔깔이 안주머니에 넣어뒀던 다른 한 대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구입한 지 10년도 더 된 그 낡은 휴대전화의 화면에는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팝업창이 띄워져 있었다.


이 전화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터였다.


아니, 정확히는 한 명이 남아있었지만, 그 사람에게 연락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나는 팝업창의 확인 버튼을 눌렀다.


'UNSS Edwin Aldrin'


발신자 란에는 올드린 함대의 기함인 에드윈 올드린 함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숨이 확 밀려들어오며 동공이 확장되는 게 느껴졌다.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이 경련하듯 떨려왔다.


심장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모순된 감정이 뒤섞인 채 미친듯이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버린 재원이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한나가 보내온 메시지였다.


믿겨 지지 않았다.


스타 레터 같은 전 우주적 통신체계는 주력 함급이 아니면 탑재되지 않을 텐데.


더군다나 주력 함급에 탑재되는 그 시스템의 용도도 군사용이라 함대 사령관 정도가 아닌 이상 사적으로 그걸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나는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것도 다른 것이 아닌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그동안 내게 있어 생일 따윈 그저 녀석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체감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었다.


녀석은 그런 나의 생일에 의미를 부여해준 것이었다.


비록 몇 글자 되지 않는 짧은 글이긴 했지만, 그거로 충분했다.


그 몇 글자만으로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10년간의 고독을 날려버리고도 남았으니까.


절망 따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녀석이 날 잊지 않고 이렇게 마음을 전해온 마당에,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기적을 바라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기적은 이미 일어났지 않은가.


이젠, 내가 한나의 마음에 대답해줄 차례다.


"포대장님, 저 잠시 대대본부 좀 다녀오겠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간신히 입을 열자, 1포대장은 대답 대신 손짓으로 그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다행히도 그를 포함한 트레일러 안의 인원들에겐 내가 감정을 드러냈던 모습을 들키지 않은 듯했다.


지금만큼은 트레일러의 요란한 전자기기 구동음과 구석진 자리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트레일러 밖으로 나서며, 나는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약속을 어기러 가는 것이 아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는 것이다. 


10년이나 기다려 줬으면 마중 정도는 나가도 괜찮지 않은가.


그리고 내겐 녀석에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


그 말을 전하기 전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시간의 강을 건너게 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