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는 민주정을 전제로 하는가?


다음의 인용으로 반론을 대신함: 


무엇을 할 것인가 by 블라디미르 레닌 (영역본을 DeepL로 번역함)


"자유"는 거창한 단어이지만, 산업 자유의 기치 아래 가장 약탈적인 전쟁이 벌어졌고, 노동의 자유의 기치 아래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강탈당했습니다. "비판의 자유"라는 용어 의 현대적 사용은 동일한 내재적 거짓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학에서 진보를 이뤘다고 진정으로 확신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견해가 낡은 견해와 나란히 계속될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견해가 낡은 견해를 대체할 자유를 요구할 것입니다. 오늘날 들리는 " 비판의 자유 만세"라는 외침은 빈 통의 우화를 너무 강하게 연상시킵니다.



민주주의자. 이 동맹 덕분에 나로디즘에 대한 놀랍도록 빠른 승리를 거두었고 마르크스 주의 사상은 (비록 저속한 형태이기는하지만) 매우 널리 퍼졌습니다. 더욱이 동맹은 "조건"없이 완전히 체결 된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1895 년 검열관이 러시아의 경제 발전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자료집을 불태운 것입니다. 법적 마르크스 주의자들과의 문학적 합의를 정치적 동맹과 비교할 수 있다면 그 책은 정치적 조약과 비교할 수 있습니 다.


물론 '동맹'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자임을 증명했기 때문에 파열이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후자의 경향의 대표자들은 러시아의 지배적 인 좌파에 의해 전면에 제기 된 민주 적 과제에 관한 한 사회 민주주의의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동맹국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동맹의 필수 조건은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에게 그들의 이해관계가 부르주아지의 이 해관계와 정반대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합법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귀의한 베른슈타인주의와 '비판적' 경향은 마르크 스주의를 저속화하고, 사회 모순의 둔화 이론을 옹호하고, 사회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 재에 대한 생각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선언하고, 노동계급 운동과 계급 투쟁을 좁은 노동조 합주의와 사소한 점진적 개혁을 위한 '현실적' 투쟁으로 축소함으로써 사회주의자들의 의 식을 약화시킴으로써 이 기회를 박탈하고 사기를 꺾었습니다. 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사회 주의의 독립권과 결과적으로 생존권을 부정하는 것과 동의어였으며, 실제로는 초기 노동 계급 운동을 자유주의의 부속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의미했습니다.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도 있을 수 없습니다. 기회주의에 대한 유행적 설교가 가장 협소한 형태의 실천 활동에 대한 열광과 함께 진행되는 시기에 이 생각을 너무 강하 게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이론의 중요성은 종종 잊혀지는 세 가지 다른 상황에 의해 강화됩니다: 첫째, 우리 당은 단지 형성 과정에 있고, 그 특징이 이제 막 정의되고 있으며, 운동을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위협하는 혁명적 사상의 다른 경향들과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의해, 오히려 아주 최근의 과거는 비사회민주주의 혁명적 경향의 부활로 특징지어졌습니다(액설로드가 오래 전에 경제학자들에게 경고했던 사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뜻보기에 "중요하지 않은"오류로 보이는 것은 가장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근시안적인 사람들 만이 파벌 분쟁과 의 견의 음영 사이의 엄격한 차별화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두 번째 속성인 선거의 원칙에 대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에서는 이 조건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독일 사회민주당 당규 제1조는 "당원의 자격은 당 프로그램의 원칙을 수락하고 당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는 당원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체 정치 영역이 관객에게 연극 무대처럼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수용 또는 비수용, 지지 또는 반대는 언론과 공개 회의를 통 해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특정 정치인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시작하여 이런저런 진화를 거쳤고, 이런저런 순간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행동했으며, 이런저런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당원은 모든 사실을 알고이 사람을 특 정 당직에 선출하거나 선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치 분야에서 당원의 모든 행위에 대 해 행사되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일반적인 통제는 생물학에서 "적자생존"이라고 불 리는 것을 생성하는 자동 작동 메커니즘을 존재하게 합니다. 완전한 홍보, 선거 및 일반적 인 통제에 의한 "자연 선택"은 마지막 분석에서 모든 정치인이 "적절한 위치에"있고, 자신의 힘과 능력에 가장 적합한 거짓말을하고, 자신의 실수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느끼고, 실수를 인식하고 피할 수있는 능력을 온 세상 앞에서 증명할 것이라는 확신을 제공합 니다.


이 그림을 우리 독재의 틀에 맞춰보세요! 러시아에서 "당 프로그램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당이 혁명가의 모든 행동을 비밀리에 통제하기 위해  제공되는 가능한 모든 지원을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습니까? 혁명가가 사업의 이익을 위해 이 '모두'의 열 명 중 아홉 명 으로부터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할 때, 모든 사람이 이 혁명가 중 한 명을 특정 직책에 선출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당 조직에서 '광범위한 민주주의'는 쓸모없고 해로운 장 난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쓸모없는 장난감인 이유는, 사실 그 어 떤 혁명 조직도 폭넓은 민주주의를 실천한 적이 없고, 실천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광 범위한 민주주의 원칙"을 실천하려는 시도는 대규모 급습을 수행하는 경찰의 작업을 용이 하게 할 뿐이고, 만연한 원시성을 영속화 할 것이며, 실제 노동자들의 생각을 친 전문 혁명 가가되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는 진지하고 긴급한 작업에서 선거 시스템에 대한 세부적인 "종이"규칙을 작성하는 것으로 전환 할 수 있기 때문에 해로운 장난감입니다. 정말 활동적 인 일을 할 기회가없는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해외에서만 이러한 "민주주의 놀이"가 여기 저기서, 특히 소규모 그룹에서 발전 할 수 있습니다.





일당제는 필수사항이 아닌가?


이것은 우리의 아마추어리즘을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혁명적 조 직이 운동의 자발적 성장에 뒤처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지 않습니까? 만약 흩어져 있는 지역 단체가 아닌 단일 조직에서 같은 수의 호를 발행했다면 엄청난 노력을 절약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활동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훨씬 더 크게 확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분열과 아마추어주의는 전 러시아 노동조합에 지도력을 부여할 수 있는 전 러시아를 아우르는 단일 혁명적 기구의 존재를 요구하는 이 조직화 작업에 명백한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모든 반대 계층이 투쟁과 우리 당에 최대한의 지지를 보낼 수 있도록 우리 당의 지도력 아래 전방위적인 정치투쟁을 조직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민주주의 실천가들이 정치적 지도자가 되어 이 전방위적 투쟁의 모든 사람들을 지도 하고, 흥분한 학생들, 불만을 품은 젬스트보 사람들, 분노한 종교적 종파들, 불쾌한 초등학 교 교사 등을 위해 적절한 시기에 "긍정적인 행동 프로그램을 지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전쟁 중에는 자기 군대에 힘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이 가 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적과 모든 중립적 요소들에게도 이러한 힘을 확신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우호적 중립이 때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확고한 이론적 토대 위에 세워 지고 사회민주주의적 조직을 갖춘 그런 조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조직에 끌린 수많 은 '외부' 요소들에 의해 운동이 경로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아마추어리즘이 만연한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많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강령에 기대어 자신들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상상만 하는 것을 봅니다). 한마디로 전문화는 필연적으로 중앙집권화를 전제로 하고, 중앙집권 화는 필연적으로 전문화를 요구합니다.




출처: 

2차 출처: 북한의 후계자론 by 이교덕 (통일연구원 출판)

1차 출처: 주체사상의 사회력사원리 by 박일범(위대한 주체사상 총서)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체이라는 것은 그들이 어떤 조건에서나 스스로 력사 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다.…력사의 주체로서의 인민대중은 개별적 성원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다.


력사의 주체로서의 인민대중은 조직되고 단결된 집단이다. 인민대중은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전일성과 조직성을 가질 때에만 력사의 주체로서의 지 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인민대중은 현실적으로 개별적 성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처지와 리해관 계, 지향과 요구를 달리하는 여러 계급과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 문에 그에 속하는 계급과 계층들, 개별적 성원들을 하나의 집단에 묶어세우 는 옳바른 지도를 떠나서 인민대중은 집단으로서의 전일성과 조직성을 가질 수 없다.


인민대중은 옳은 지도를 받을 때에만 그 개별적 성원들과 계층들의 요구와 리해관계에서의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의 지향과 요구를 가지고 통일적으로 활동하는 공고한 집단으로 될 수 있으며 조직되고 단결된 전일적인 대오 로 될 수 있다. 옳바른 지도는 결국 인민대중에게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조직성과 전일성을 부여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력사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 하고 역할을 다하게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주체사상과 공산주의가 다르다고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대중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은 이렇게 레닌과 주체사상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걸 알 수 있다. 







공산주의는 평등이 주요한 목표가 아닌건가?


공산주의가 불평등의 억제를 진지하게 추구하지 않는다면 권력 찬탈을 위한 방법론 이외에 무엇이 남는가.




공산주의는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를 철폐할 수 있는가?


공산주의적 유물론을 맞다고 전제하면 인류의 부적절한 갈등을 유발하는 모든 원인은 사유재산의 축적과 이를 기반으로 한 고도화 된 정치지배 시스템 때문에 나타났다고 가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인류의 주요 갈등 요인인 종교의 문제를 보자. 종교는 사유재산의 축적으로 문명이 발생한 후 지배계급의 통치 정당성을 위해 '발명' 되었는가? 하지만 현재의 고고학적 데이터는 이와 모순되는 증거를 제시한다.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문명의 물적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농업의 발명 이전에 고도로 복잡한 종교를 상당한 기술적 방식을 통해 표현했으며 이것은 아마도 문명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를 중심으로 한 괴베클리 테페 '문명'의 '유적'이 존재했으며 농업은 그 이후에 발명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증거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종교는 문명 이전의 호모 사피엔스 유적에서도 그 흔적을 흔히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문명 이전에 종교가 있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지식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이 매장지를 꽃으로 장식하는 방식으로 장례식을 했다는 증거도 발견되었다. 이는 현생 인류가 아닌 종도 종교행위로 볼만한 무언가를 했다는 단서가 된다. 종교가 인류 만의 독특한 특징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종교의 역사는 우리 종의 역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아마도 그 기원은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공통 조상이었을 선대 원시인류에게서 찾아야 할테니 말이다.


이 쯤 되면 종교는 후천적 학습으로 발명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DNA 수준에서 수준에서 정의된 생물학적 본능이라고 간주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종교를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고 한 번의 재교육으로 일소하면 다시 재발하지 않을거라 믿는 것이야말로 순진한 주장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여러분이 사랑니를 아무리 치과에서 뽑는다고 해도 여러분의 후손들이 계속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가정하는 '원시공산사회' 단계에서도 착취자의 조작에 기반한 불화로 간주되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사유재산이 없기 때문에 그런 갈등도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아프리카 유목민들은 야만인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조상처럼 소떼를 몰고 다니긴 하지만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처럼 소박한 창을 들고 다니는게 아니라 라이플을 들고 다닌다. 라이플은 나쁜 문명. 이들은 이제 굉장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문명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원시 공산주의의 예시가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히틀러의 사진사이자 럭키 나치였던 레니 리펜슈탈이 70년대에 아프리카 사진집을 내놓을 때만 해도 이들은 아직 원시적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에도 그리고 이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도 이들은 사냥이 아닌 인간과 전쟁을 하기 위한 도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부족 내부에서 통용되던 평화적인 갈등 해결 프로토콜이 부족 바깥에서는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전쟁은 계급착취의 산물이 아니라 이미 문명이 없던 시절에도 존재하던 타자화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집단 간의 타자화의 문제도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다. 



출처: 세계의 문화와 조직 by 헤이르트 홉스테더


사회과학자들은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이라는 용어를 쓴다. 내집단은 우 리가 직관에 의하여 ‘우리’라고 느낄 수 있는 집단, 외집단은 우리가 직관에 의하여 ‘그들’ 이라고 느낄 수 있는 집단을 말한다. 우리는 타인을 어느 한 집단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생리적 욕구를 지니며, 인간은 이 단순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어떤 사회에서 내집단에 대한 정의는 매우 가변적일 수 있지만 항상 분명하다. 우리는 인척 대 친척, 적수 대 우리 팀, 다른 인종 대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쓴다. 한 실험에서, 미국 연구자들 은 상대 인종 집단 구성원 또는 자신의 인종 집단 구성원이 있는 그림을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과 유럽 출신 미국인 피험자들에게 보여 주고 그들의 정서적 반응을 보았다.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과 유럽 출신 미국인 피험자들은 다른 인종보다 자신과 같은 인종의 사람들의 그림에 대해 더 큰 정서 생리 반응을 보였다. 이런 식으로 피험자들은 내집단 구성원에게 정서적으로 더 밀착되어 있었다. 그 실험에서 내집단에 대한 공감(in-group empathy) 가설은 지지를 받았지만, 외집단에 대한 반감(out-group antipathy) 가설은 지지 되지 않았다.


한 종에서 남녀 역할이 집단 범주와 무관하게 역사적으로 매우 다르게 여겨지는 것처럼, 남녀 역시 내집단-외집단 가르기 역학에 한 역할을 수행한다. 여자들은 보통 성인기 초반에 새로운 집단의 정식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 다른 집단으로 온다. 남자들은 싸우거 나 지배하기 위해 새 집단에 온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친숙해 보이지 않는 여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법은 쉽게 배우지만, 외집단 남성의 얼굴에 대해서는 여전히 겁을 먹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당연히 외집단으로 생각되는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점이 있 고, 이는 곧 유년 시대에 접했던 얼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내집단-외집단 구분 실험에서 공포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설문지와 함께 생리적 측정 치를 쓸 수 있다. 사람들의 신체는 정신이 보여 주지 않는 정보를 준다. 그 결과, 가족은 인간 사회 생태와 광의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인종 특성이 누가 내집단 소속인지를 결정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사람들은 ‘우리’ 대 ‘그들’ 의 산물이다. 유년기에 그들은 누구든지 혹은 어떤 얼굴 유형이든 ‘우리’로 여기도록 학습할 수 있지만, 몇 달 후에 그들의 인식은 고정된다. 사람들이 인종적 특성에 대해 직관적인 내집단-외집 단 반응을 바꾸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진다. 우리-그들 상황에 대한 생리적 반 응은 기타 어떤 집단 구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각기 다른 단과대학 소속의 학생들 간에서조차 그렇다.


이 역시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내재된 원시시대의 훌륭한 생존수단이자 문명사회의 악한 본성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으로 모두가 다 같이 경계없는 친교와 우애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그저 완화할 수 있을 뿐이고 근본적으로 근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두가 노동자가 되어버린 다음에는 노동자 정체성이란 것은 그저 공산당의 강요에 의해 강박적으로 가지게 되는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다. 모두가 노동자라면 사람들은 서로를 구분할 새로운 정체성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진정한 사회주의가 도래한 세상에서도 서울과 수원의 축구 팬들은 서로에게 쌍욕을 날리는걸 주저하지 않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