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감응유전 얘기하면서 아 예전 섹파가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애 낳았는데 귀 모양이 나랑 좀 닮았니 어쨌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일반생물학 수준에서 이게 왜 극도로 확률이 낮은 주장인지 생각해 보자


결국 애한테 형질이 나타나려면, 난자의 염색체에 유전자가 끼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일단 유전자가 끼어 들어가는 과정부터 난관이다

어떻게 유전자가 자궁 내에 몇 년씩 보존되어 있다가 난자로 쏙 들어갈 것인가?


질 속으로 시원하게 사정된 정자는 대부분 4-5일 안에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정자는 생존이 불가능하고, 운동성 없는 DNA가 어떻게든 버티다가 난자 안으로 쏙 들어갔다는 얘기인데, 그러려면 DNA는 나팔관에서 딱 들어앉아 버티고 있어야 한다


우리 몸에는 immune privilege라는 게 있다

뇌, 고환, 난소와 같이 중요한 기관에 면역반응으로 인해 염증이 발생한다면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는 자기 혼자서 염증이 발생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문제는 난소난관염 (oophoritis) 라는 병이 있다는 거다. 왜 있을까?

나팔관은 immune privilege zone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 우리의 DNA는 나팔관에 운 좋게 들어앉아 염증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에서 몇 년간 버티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적 중의 기적에 가깝고, 이게 된다면 몇 년 전에 헤어진 섹파가 자살했을 때 형사가 찾아와서 '거짓말 마! 이 여자 난관에서 니 DNA가 검출됐어!' 하면서 체포해도 순순히 따라가야 한다

암튼 계속 가 보자


이 DNA는 이제 난자를 뚫어야 한다

난자는 젤리층인 투명대와 세포층인 방사관을 가지고 있어 매우매우 뚫기가 어렵고, 수정되는 순간 수정막이 생겨 아예 뚫기가 불가능해진다. 이걸 뚫으려고 정자에는 첨체라는 게 있는데

우리의 DNA는 난자 막마저 뚫어냈다고 치자


우리의 DNA가 이제 형질로 나타나려면 정확한 위치에 끼어들어야 한다

예컨대 귀 모양을 만드는 DNA는 '귀 모양을 만드는 DNA가 있어야 하는 위치' 에 정확하게 끼어들어가야 한다. 전체 DNA 중에서 발현되는 DNA가 매우 적다는 것은 고등학생도 알고 있다


참고로 이게 유전자 치료에 관한 얘기다

비정상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시켜 유전병을 고치겠다는 아이디어인데, 선부의 DNA가, 정확하게 제 위치를 찾아 들어간다는 것은 유전자 치료해보겠다고 인생을 갈아넣은 연구자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막말로 그게 되면 탈모약도 간단하다

풍성충의 정액을 받아와서 탈모 부위에 쓱쓱 바르면 머리카락을 만드는 DNA가 정확히 그 위치에 찾아 끼어들어가며 머리카락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여기까지 와도 대체되는 것은 난자의 DNA지 정자의 DNA가 아니다

감응유전이 걱정이라면 안심하고 연애 결혼 바란다






여담으로 독남충 쇼펜하우어는 원시주갤러답게 감응유전을 지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