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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외우주 진출 이후, 격동을 예상했던 우리의 삶은 의외로 큰 변화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성공과 화성 개척, 이어지는 세이건 미션에서의 유인 외우주 탐사는 몇몇 기업들이 이익을 독식하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우주괴수의 사체는 나름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지만, 결국은 피상적인 위협으로 그쳤고.


아직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온 먼 재앙.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당장의 삶에 급급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그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삶을 이어갔다.


적당히 지잡대에 진학하여 군대를 갔다오고, 졸업한 뒤에는 일용직을 전전하는.


그런 비루한 삶을 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내게도 한때는 국제연합 우주군 장교라는 원대한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적잖이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가졌던 그 꿈이 과연 실현 가능한 미래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허상이었는지 지금의 나로선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꿈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었고, 별 볼일 없는 내 삶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해 줬었다.


그리고 그 꿈의 중심에는 한 사람.


단 한 사람의 젊은 장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국제연합 우주군 대위 이찬우'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때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떠오르곤 한다.


어린 시절 내가 아버지를 잃고 방황할 때, 그 사람은 내게 꿈을 선물해 주었다.


내 주제에 무슨 그런 높은 꿈을 꾸냐며 하나 남은 가족마저 등을 돌릴 때, 그 사람은 내가 그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응원해 주었다.


내가 하나씩 꿈을 향한 작은 목표들을 달성해 나갈 때, 그 사람은 이미 나와 함께 설 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함께 끝없는 별의 바다를 항해하는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끝에 내가 선택했던 것은 다시 익숙한 무기력함에 취해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게 정답인줄 알았으니까.


'전 그냥 지잡대 나와서 해외취업 하기로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고 도망치듯 선택한 목표를, 진정으로 이룰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사관학교 출신들이 다 해먹는데 뭐하러 거기서 인생을 낭비해요.'


그러나 그 때의 나는 그저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해서는 안될 말까지 입에 담고 말았다. 


'애초에 바깥에서 할일 없는 것들끼리 남은 밥그릇 갖고 싸움질 하는 직업이잖아요.'


나보다도 훨씬 열악했던 환경에서 끝끝내 그 꿈을 이루어낸 사람의 인생을 폄하했던 것이다.


'자신의 미래는 자기 손으로 직접 선택하는 거야.'


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것이 네 결정이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렴.'


아니, 오히려 그런 나의 거짓된 앞날마저 응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 때 나를 욕했더라면 그나마 마음이 편했을 텐데.


자신의 초라한 자아를 숨길 일말의 여지조차 없는 상황에서 마주해야 됐던 현실은 한없이 냉혹하기만 했다.


턱걸이로 입학했던 지잡대는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억지로 끌려갔던 군대에서도 시간낭비 이상의 의미를 얻지는 못했다.


졸업 이후에는 지방 중소도시 원룸촌에 기거하며 택배 상하차 따위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을 이어갔고.


그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을 억지로 연명하던 도중, 이변은 찾아왔다.


'올드린 함대, 1년 전 오르트 구름 외곽 항행 도중 항성 플레어 직격.'

'구축함 존 폴 존스 대파. 현재 사상자 집계 중.'


그것은 7년 전, 태양계로 접근 중인 우주괴수 군집을 격퇴하기 위해 지구를 떠났던 올드린 함대의 소식이었다.


1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온 그 충격적인 소식에 전 세계의 언론에선 연일 보도를 이어나갔다.


불과 5년 전에 무사히 힐스 구름을 벗어난 최초의 유인 외우주 전투 함대라고 대서특필 했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을 것이다.


뭐, 그들에겐 불행한 사고였겠지만, 솔직히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세간에서 인류의 명운을 건 전쟁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어봤자, 당장의 삶을 걱정해야 되는 내 입장에선 아무래도 좋을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Cpt. ChanWoo Lee - Killing in Action'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을 비웃듯, 현실은 일말의 여지 없이 비극을 고했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그저 무미건조한 텍스트로 나열되었을 뿐인 죽음.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제 나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사람의 죽음이었다.


오히려 이제와서 자신이 배신했던 사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 자체가 변명의 여지 없는 위선일 터였다.


순직 당시 그 사람의 직책은 구축함 존 폴 존스의 갑판사관이었다.


내가 어릴 적 꿈을 져버리고 무의미한 삶을 연명하는 동안, 그 사람은 보다 높은 뜻을 품고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영달을 위한 길이 아닌, 우리들 인류의 미래를 생각했기에 내릴 수 있었던 선택이기도 했다.


결국, 그 때 도망치듯 선택했던 거짓된 꿈도 그 사람의 비호와 희생이 있었기에 좇을 수 있었던 셈이었다.


하지만 그 거짓된 꿈조차 이루지 못한 내가 진실된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겠지.


그래서 그 때 두 뺨을 타고 흘렀던 눈물은 마치 변명과도 같아서, 나는 그것을 감추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최악의 방식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후린 변절자.


그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에 나는 그렇게 기억될 것이 뻔했으니까.


'제 27기 국제연합 우주군 사관후보생 모집요강.'


그렇게 변명이나 다름없는 눈물을 흘린 끝에 문득 든 생각은 속죄였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이제 남은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 뿐이라는 강박이 들었으니 말이다.


"나이가 좀 있으신데……, 지원 동기를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옛적에 버렸던 그 꿈을 다시 좇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당장 한 사람이 아쉬웠던 상황에서도 날 상대하던 면접관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으니 말 다했지.


"존경하는 사람이 올드린 함대 소속입니다."


그래도 이젠 더 이상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 제 나이가 그 사람과 같아지는데, 저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포기와 소극적인 선택은 절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면 그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제가 뒤늦게라도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기회를 주십시오."


그것이 내가 그 사람에게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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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끊김 없는 문단 하나로 다듬어져서 재업함


저번에 올렸던 글에 소중한 댓글 달아줬던건 잘 캡쳐해서 보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