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0일, 광주의 평범한 버스 기사였던 배용주씨는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버스에 오르게 된다.


광주의 택시 기사와 버스 기사들이 시민들을 도와준다는 이유로 계엄군에게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하고 총에 맞아 사살당하자 분노한 그도 버스를 몰고 시위대를 엄호하며 항의 시위에 나서게 된것이다.


하지만, 다시금 진압병력의 무차별 최루탄 사격이 시작되었고, 일부는 버스 내부까지 최루탄을 발사한다.


밀폐된 실내에 최루탄 가스가 가득 차면 그 안에서 방독면이 없는 인원은 어떻게 될지 말을 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운전도 할 수 없다.


결국, 조종 능력을 잃어버린 버스는 그대로 진압병력을 들이받게 된다.


사고의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당연히 시민들에게 잔혹한 태도로 일관하고, 최루탄 사용 수칙을 지키지 않은 진압병력에 있었으나 그들은 다른 곳에 책임을 전가했다. 


살인의 고의를 입증할 수 없음에도 당시 군법회의는 배용주씨에게 소요살인죄를 뒤집어씌워 사형을 선고했으나 결국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게 된다.


또한, 당시 배용주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군 판사 중 한명이었던 김이수 헌법재판관 또한 배용주씨에게 당시 사형을 선고했던것은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이게 바로 극우들이 그렇게 선동하는 버스 충돌 사건의 진실이다. 


하지만, 배용주씨 또한 2022년에 사망한 경찰관들의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화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화해이며, 역사적인 화해는 진실이 먼저 바로잡힌 뒤에 이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