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7311.html


보통 이런 이슈 관련해서 나오는 반응은 3가지로 나뉘는데


1. '이렇게 사람이 줄어드니 지금 어린애들이나 태어나는 애들은 최소한 취업 걱정은 없겠네. 솔직히 좀 부럽다.'


2. '경제가 쪼그라드는데 기업들이 지금만큼 채용을 할 리가 없다. 채용이 극적으로 줄어들어버려 취업 걱정은 여전할 것이다.'


3. '사람이 줄어들어 살기 편한 시대는 오겠지만, 인구 피라미드가 정상화되는 최소 100년 후의 먼 미래의 이야기일 것이다'


의 3개 정도로 나뉘는데, 이 사람은 1번이라고 생각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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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얼마 전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합계출산율 0.7명대의 초저출산 국가 한국에서,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이라니. 출산 소식을 접한 주변의 거의 모든 지인이 이렇게 말해줬다. "아이고, 애국자네."


(중략)


개인적인 여건에 더해, 아이를 낳기로 한 배경에는 앞으로 아이에게 더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들 힘들어서 아이를 안 낳는다는 시절에 무슨 한가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경제사 박사'인지라라 시계를 백년 단위로 넓혀 보는 습관이 든 나에겐 조금 다른 그림이 보인다.


지금의 초저출산이 인구 과밀로 인한 경쟁 과열과 후생 감소의 결과라면, 반대로 인구 과소는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14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이다.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흑사병이 끝난 후 살아남은 이들은 도리어 임금 증가와 근로 여건 개선, 그리고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었다.


유행 이후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단순 노동자의 임금이 적게는 1.5배, 많게는 5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영주-농민 간 비대칭적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해 봉건제가 무너졌다. 인구론의 저자 맬서스의 표현을 빌리면, 사망률의 증가를 의미하는 ‘적극적 억제’(※)가 생존자들의 삶을 개선한 것이다.


이후 몇번의 기근과 전염병 유행, 전쟁을 통해 굳어진 만성적 노동력 부족은 여성의 노동참여를 늘려 가족 구성에도 변화를 줬다. 중세시대에 20세 이하였던 여성의 초혼연령은 16~17세기에는 25세로 높아졌으며, 비혼 여성의 비율 역시 12% 가량으로 1% 내외였던 아시아 국가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후 농업 생산성 증가와 상업 발달로 노동수요가 증가했지만, 출산율 감소라는 ‘예방적 억제’(※)가 작동하면서 인구 증가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형성된 고임금 경제구조는 기계화에 대한 요구를 늘렸으며, 이는 방적기, 증기기관, 제철 기술 등의 발명을 촉진해 산업혁명이 유럽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한국전쟁 뒤 출산율이 급증하며 등장한 베이비붐 세대는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의 중핵이 됐다. 그러나 자원의 증대는 이내 한계점에 달했고 오히려 인구 과밀이 여러 부작용을 가져왔다. 베이비붐 세대의 구매력에 맞춰 물가, 집값, 교육비가 치솟았는데 청년세대는 그만한 여력이 없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 격차가 커지고,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겐 희망도 사치가 됐다. 이렇게 자원이 부족한 세대는 결국 예방적 억제라는 수단을 쓰게 되었으며,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시작으로 촉발된 생산가능인구의 급감은 임금 증가와 근로여건 개선을 가져올 것이다. 또한 노동력 부족은 기술집약적 산업의 발전을 추동할 것이고, 생산성의 비약적 증대로 자녀들에게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시대'를 가져다 줄 것이다.


물론 이 일이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아니다. 연구개발과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로 기술 발전과 직업 전환을 지원해야 하고, 변화하는 경제구조에 발맞춰 노동 관행도 바꿔 가야 하며, 생산성 향상의 열매를 분배하는 새로운 복지제도도 고안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급증할 부양 부담을 해소할 방안과 아이를 낳고 싶어도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지원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


그래도 나는 낙관적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인류는 답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전히 부담이다. 아이가 한 사람 몫을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잠을 설쳐야 할지, 얼마나 병원을 쫓아다녀야 할지, 얼마나 소리를 높여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가 맞을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며, 나는 기꺼이 그 일을 감당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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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맬서스의 저서 '인구론'에서는 인구의 증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방적 억제'와 '적극적 억제'의 2가지를 꺼내왔는데, 예방적 억제는 산아제한, 만혼, 독신을 통한 저출산으로 이루어지는 인구감소, 적극적 억제는 기근, 질병, 전쟁 등을 통한 사망자의 증가로 이루어지는 인구감소를 의미함.


※ 맬서스 트랩은 다들 알듯이 화학비료의 발명으로 혁파되었지만, 최근에는 식량이 아닌 환경파괴와 자원고갈 등을 지적하는 지속가능발전을 맬서스 트랩의 현대판 재해석으로 보는 의견도 일부 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