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은 교도관이 한다. 이들은 전국에 1만여 명이 있다.


신참 교도관은 사형집행관이 되지 않는다. 연륜이 있는 교도관들이 ‘지옥의 사자’가 되는 셈이다.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재소자들의 교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어느 순간에 제도적 살인자들이 된다.


사형 절차에 가담한다는 것만으로 교도관들은 고뇌에 휩싸인다.


취재 중 만난 한 현직 교도관은 “사형을 구형한 검사나, 사형을 선고한 판사가 한번이라도 사형을 집행해 봤으면 한다. 그래야 그들은 사형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사형집행관으로 참여했던 교도관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17년째 교도관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이곳에서 죽어간 사형수 3명을 기억한다. 첫 번째 사형수들은 지존파였다. 맨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그들의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 복도에서 만나도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한달이 지난 뒤 그 살기는 사라졌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야근을 하면서 그들과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말이 가슴에 지금도 남아있다. 그는 수갑과 혁시갑을 찬 채 "교도소에 와서 인간적인 대접을 처음 받아봤다. 고맙다"라는 말을 했다. 며칠 뒤 이들의 사형이 집행됐다.”고 말했다.


지존파가 죽고 난 뒤 그는 많이 괴로워했다. “내가 그들의 극악한 행동에 동조하지 않았나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고뇌를 털어 놓았다. 그와 면담한 그 사람은 고아였다고 한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고아. 일을 해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배를 곯는 날이 많아졌다.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잘못된 방법으로 분출된 것이다.


“사형수가 제게 남겨놓은 유품을 받을 수 없었다”


재소자들의 교화를 위해 공무원 시험을 보고 교도관이 된 그는 두 번째 사형수에 대해 말했다. “재소자들은 대부분 교도소 내에서도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감방이 아닌 공기를 맞고 싶어서다.


한 사형수는 전혀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통상 재소자가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하면 교도관들은 유심히 관찰한다.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야근을 서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식구 통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 지금의 심정 등을 말이다.


사형수가 베지밀 한 개를 내밀면서 “내가 죽음으로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그의 사형이 집행됐다” 며 고개를 숙였다. 집행에 참여한 한 동료가 그에게 조그마한 목재 목걸이를 내밀었다. 사형수가 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받지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사형수와 교도관은 같은 환경 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죽이라는 것인가. 사형수도 인간을 죽였지만, 그것은 돈, 원한 등 그 나름의 동기가 있다. 그러나 교도관은 아무런 동기도 없이 사람을 죽여야 한다” 며 사형제도의 잔인성을 지적했다.


박병식 용인대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사형판결을 내리는 법관은 자신의 판결로 인해 죄악감에 빠져 고뇌해야 하는 교도관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집행명령을 내리는 법무장관도 직접 집행을 해야 하는 교도관들의 고뇌를 인식해야 한다. 흉악범도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흉악범에게 죄 값을 치루게 하기 위해 잔악한 형벌을 직접 집행하도록 명령 받는 교도관의 인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밝힌바 있다.


“술에 취해 집행한다”


사형집행관으로 참여했던 전직 교도관은 “사형 집행이 있는 날이면 술을 많이 마신다. 막걸리와 소주가 엄청 들어온다. 사람이라면 제정신으로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거부 할 교도관들은 없다. 부인이 임신했다 등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빠지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나 가능한 일이다. 교도관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첫 사형 집행을 하고 난 뒤에는 사형장으론 고개도 안 돌렸다”고 말한다.


사형 집행 당일은 교도소와 구치소에 정적이 감돈다.


어느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체구가 건장한 교도관 3명이 사형수를 독고 방에서 꺼낸다. 교도관 두 명이 수갑을 찬 사형수 팔짱을 낀다. 한명은 앞장서서 죽음의 형장으로 이끈다. 이미 재소자들이 전날 청소를 마친 뒤다.


그 사이 교도소 간부들은 사형 집행관을 선정하고 사형 집행 절차를 짠다. 누가 교수형 밧줄 로프를 점검 할 것인지, 누가 살인 버튼을 누를 것인지, 누가 관을 갖다놓을 것인지, 누가 사형이 집행된 뒤 시신을 밧줄에서 내릴 것인가... 등이다. 사형이 집행되고 난뒤 의사가 사망진단을 내린다. 사망진단서가 떨어지면 앰블런스가 와서 가족에게 인계된다. 가족이 없을 경우 교도관들이 이를 처리한다. 교도소장과 검사, 입회서기, 성직자도 그 현장을 목격한다.


박병식 교수가 발표한 ‘사형제도와 교도관의 인권’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사형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사형수가 의식은 상실해도 몸이 경련하여 심하게 움직이고 심장이 수분간 고통을 칠 때에는, 교도관이 줄에 매달린 사형수의 다리를 힘껏 잡아 당겨서 집행을 종료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밧줄 길이를 너무 길게 잡아 지하에 떨어진 사형수가 매달리지 않고 바닥에 부딪쳐 부랴부랴 끌어올려 집행한 경우도 있다. 밧줄이 벗겨져 지하실 바닥에 낙하하자 직원들이 지하에 뛰어 내려가 사형수의 목을 밧줄을 걸고는 밧줄을 잡아 올려 집행한 경우도 있다”


한 전직 교도관은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하는 것은 일종의 보복살인이자 죄악”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한번 생각을 해 보자. 그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 사형수가 됐다 할지라도 죽기 전에 그들은 깨끗한 사람이 된다. 이것은 내가 경험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밧줄에 걸려 숨이 끊어지는 시간은 불과 5분 정도이다. 종신형이든 무기징역이든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알고 진정으로 죄 값을 치르도록 하는 다른 처벌방법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마디로 사형제도는 미친 짓한 거지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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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만약에라도 사형 집행을 재개하게 된다면 법을 개정해서 사형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