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1군단과 6군단,5군단, 2군단, 3군단 병력은 전력의 96%가 소실된 상태고, 8군단은 현재 3개 사단 중 1개 사단이 모두 전멸하고 1개 사단은 현재 적과 교전 중입니다, 그리고 현재 적군 1만여명 정도가 파주를 점령하고, 서울 쪽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전황을 보고하는 기어들어가고 있는 참모의 목소리와 비례하여, 회의실 내부의 분위기도 덩달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휴전선에 대부분의 국군 병력을 모아놓은 상태였는데 그 병력들의 9할 이상이 군사학적 전멸인 20퍼의 손실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싸그리 전멸당한 상황이다.


그것도 단 8시간 만에, 수십만 대군 20개 사단, 5개 군단이 고작 3개 사단 6만 명에게 그 꼴이 났다.


42개 사단 중 20개 사단이 전멸한 상황이니, 초장부터 전력이 반토막난 돌아버릴 상황이었다.


이쯤되면, 각 장성들은 미군이 참전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 드는 지경에까지 왔다.


"전방부대가 거의 다 전멸당한 와중에 수방사와 수도군단만으로 서울을 모두 지킬 수는 없습니다. 우선 한강 이남에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적의 진격을 늦추는 게 상책입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수도를 보호해야 하는 수방사령관조차 한강 이북을 포기하는 것을 건의할 지경이었다. 


본래라면 이런 발언은 수방사령관로써 부적절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경질될 수준의 언사였으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것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전방 부대들 중에 멀쩡히 살아남은 병력들이 거의 없는 마당에, 서울을 무리하게 사수하려 했다간 현재 남은 병력들까지 전멸당할 겁니다, 적은 우리보다 화력과 장비에서 월등하게 앞서고, 현재까지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고 수월하게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적의 진군을 저지하려면 우선 폭이 큰 한강에서 적을 막으며 최대한 지연전을 펼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수도를 보호해야 하는 수도군단장도, 수방사령관의 말을 거들어주며 한강 이북을 포기하고 한강 이남에 방어선을 차리며 적의 진격을 저지할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마침 수도군단 부대들이 막 한강 이남에 집결해 있고, 간신히 후퇴한 7군단 휘하 2개 사단이 한강 상류쪽 이남으로 퇴각했으니 충분히 한강에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여의도만큼은 절대 빼았겨선 안됩니다, 여긴 특히 적에게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요지 중 요지이고, 적 전차들이 넘어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기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내야만 합니다."


"우선 방어 문제는 그렇다 치고, 그러면 한강 이북 국민들은 어떻게 합니까? 모두 피난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난 6.25 때처럼 한강 다리를 폭파시켰다간 당장 여론부터 좆창날 겁니다."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거의 한 수백만을 다 피난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안 피난시킬 수도 없으니..."


"우선 최대한 대피시켰다고 할수는 있을 정도로 대피시키고, 교통 통제하는 정도까지는 해야지요. 그 후에는 무조건 폭파해야 합니다. 지금은 사단 하나하나가 중요한 상황이에요. 이런 말하기가 참 뭐하지만...진짜로 시민들 피난시키는 시간 벌겠다고 싸우게 해 봐야 시체만 늘고 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파주 전투에서, 적군은 장애물에 숨어 공격하는 국군에게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은 채 도시를 점령했고, 잔당 토벌을 맡은 일부 부대를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의 부대들은 그대로 서울을 향해 진군했으니 서울을 무리하게 사수하려 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하..."


"후..."


물론, 상황이 그렇다 한들 이것이 떳떳한 행위는 아니었기에, 회의장의 장성들과 군 고위 관료들은 하나 둘 한숨을 내쉬었다.


6.25의 비극을 다시는 겪지 말자고 이렇게 증강시킨 전력이었는데, 이젠 말 그대로 모두 전멸되었으니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그나마 6.25 전쟁은 병력의 대부분이 휴가를 가고 장비와 무장도 열세여서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병력의 9할 이상이 경계보초를 서고 있었고, 장비도 그때와는 다르게 전차는 물론 전투기 등까지 보유하며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전력 증강을 이룬 상태였다.


그러나, 정작 상대는 더 적은 수로도 더 많은 군대를 일제히 섬멸시킨 자들이었다.


그렇게 된 결과, 다시 6.25 때의 그 일을 다시 재현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왔다.


"이번에도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같은 걸 틀게 생겼습니다 그려."


"하...어쩔 수 없는 거라는건 압니다만, 기분이 좋지 않은건 어쩔 수가 없군요."


"어쩌겠습니까, 상황이 이런데...그냥, 언젠가 승리로 다시 되갚아주길 바랄 수밖에요."


이번에도, 국민들을 속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