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러시아 대사 초치 항의…북러 밀착 행보로 한러관계 악화 수순


러시아 외무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북핵 관련 발언을 비난한 것을 두고 외교부는 '혐오스러운 궤변'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북러 간 밀착 행보가 한러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양새다.


3일 외교부는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발언은 일국의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으로는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며 편향되어 있다"며 전례 없이 강하고 직접적인 어조로 외교 상대국 대변인을 비난하는 입장을 내놨다.


외교부는 "이러한 발언은 북한의 위협적인 수사와 지속적인 무력 도발이 한반도와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현실을 도외시한 것으로서, 국제사회의 규범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국가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혐오스러운 궤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의 지도자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지칭하는 것이야말로 국제사회를 호도하려는 억지에 불과하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정병원 외교부 차관보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엄중한 항의 입장을 전했다. 외교부는 "정 차관보는 러측이 진실을 외면한 채 무조건적으로 북한을 감싸면서 일국 정상의 발언을 심히 무례한 언어로 비난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우며 한러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원색적인 비난 입장을 발표한 이유는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지난 1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노골적으로 편향돼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1월 31일 윤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북한 정권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인 집단"이라며 북한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였는데, 자하로바 대변인은 이에 대한 입장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위와 같은 답을 내놨다.


그러면서 자하로바 대변인은 "북한에 대한 공격 계획을 모호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며 "한반도와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배경을 보면 (이 발언은) 더 끔찍하다. 지역의 긴장과 갈등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주로 미국과 미국의 동맹인 한국, 일본의 후안무치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은 워싱턴에서 적이라고 규정한 국가들에 대해 '방어적인' 무장해제와 참수작전 공격을 정당화한다"라며 "주목할 점은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폭탄을 투하한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이라고 말해 북한이 아닌 미국의 핵 선제 공격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이어 "한국은 미국의 핵을 탑재한 항공모함을 포함해 미국 전략 무기의 전개를 도와주고 있고 점점 더 강도가 강해지는 군사 연습 및 다른 훈련들에 참가하고 있다"며 "더욱이 한국은 이미 핵무기 사용 공동 계획을 제공하고 있는 '확장된 핵 억제'라는 불안정한 계획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해 한국 역시 미국의 핵 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러한 근시안적인 접근은 도발적인 정치적 수사에 반영돼 있다. 이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한국의 지도자들이 '한미가 이미 핵 동맹 수준에 도달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 정부는 실제 현실 속에서 봤을 때 한국이 미국의 지정학적 게임에서 작은 협상 카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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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1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무부 고위 관리가 공식 석상에서 제3국 정상의 발언에 대해 이처럼 직접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자하로바 대변인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과 북핵 문제에 대해 입장을 쏟아낸 것을 두고 최근 강화되고 있는 북러 간 밀착 행보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의 대응이 한러 관계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하로바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는 있지만, 과도한 대응이 한러관계 악화 및 북러 관계 밀착을 유발할 수 있고, 이럴 경우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4일 외교부는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서울을 방문한 안드레이 루덴코(Andrey Rudenko)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차관과 2일(금) 한러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가졌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김 본부장은 한반도와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러북 군사협력에 대한 우리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고, 러시아가 이를 즉각 중단하는 등 안보리 결의상 제반 의무를 철저히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이재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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