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과 그로인한 의사 파업에 관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안하고 있는 (안하는건지 무시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인을 한번 글로 정리하고 싶어서 적어본다.

쓰고나니 글이 너무 길어져서, 핵심만 읽고싶은 사람들은 빨간 글씨만 읽어도 대강 전달은 될듯?


1. 의사부족은 성형의사인가 필수과 의사인가?

  통계적으로도, 여론에서도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는 대상은 내과,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과 (이하 바이탈과로 지칭) 의사들이다. 요즘엔 조명받지 못하는것 같지만 이국종 선생님(원장님?)도 그런 바이탈과에서 의료를 하고계신 케이스. 그렇다면 왜 바이탈과 의사가 부족한가? 이건 과 선택 과정을 보면 좋을것같다.

  의대생들이 6년간 학업을 마치고 병원에 가면 1년간의 인턴을 거쳐서, 인턴성적+@를 갖고 자신이 원하는 과에 지원을 하면 과에선 병원에서 배정받은 TO에 맞춰 전공의(=레지던트)를 뽑는다. 여기서 인기가 많은 피부과, 성형외과 등은 TO가 적은 반면 지원자는 많기 때문에 경쟁이 심하고 로얄이 아니면 가기 힘들다고 하는 말도 나오는 것. 자 근데 이런 시스템이면, 결국 인턴성적 망한 사람들은 경쟁률 떨어지는 바이탈과를 가지 않느냐? 왜 바이탈과가 부족하냐? 라고 한다면...

  바이탈과를 수련하느니 전문의 없이 일반의(=GP)로 개원하고 말지라는 마인드가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서 보이는 ~정형외과, ~내과, ~소아과 등은 모두 레지던트 과정을 끝낸 해당 과 전문의만이 개원할 수 있다. 하지만, ~의원 이름으로 개원하고 옆에 진료과목: 내과 통증 소아과 이런식으로 적어두는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본인이 환자들을 잘 유치할 자신만 있으면 GP로 개원해도 문제는 없다. 그럼 바이탈과를 왜 레지던트 과정을 포기하고 개원하면서까지 수련하지 않으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를텐데, 과연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열정이 없어서 바이탈과를 안하는걸까? 현실은 그게 아니라 바이탈과의 처참한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2. 바이탈과의 현실

  의료행위에는 돈이 들어간다. 인건비를 떠나서도, 거즈 하나 핀셋 하나 다 환자에게 사용되는 만큼 멸균을 유지하고 수술에 사용되는 장비들은 억소리가 나고... 그럼 이 돈은 누가 낼까? 바이탈과 진료의 절대다수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인 이상 바이탈과로 재정을 분리해서 보면 환자가 내는 돈이 아니라, 건보공단에서 나오는 돈이 메인이다. 여러분이 진료를 보면 영수증에 '공단부담금'이라고 적혀있는 항목이 있을텐데, 이게 건보공단에서 나오는 돈이다.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대다수의 필수의료 포함)은 국가가 진료의 보상(금액)을 정한다. 이를 의료수가(환자부담금+공단부담금의 합)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수술을 하면 수술에 들어가는 비용이 의료수가보다 크다. 즉, 수술과 같은 바이탈과 진료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된다. 이렇게 의료수가를 투입된 비용으로 나눈 값을 원가보전율이라고 하는데, 원가보전율이 100%가 되지 않으면 결국 진료를 할수록 적자가 된다는 거다.

  근데 우리나라 바이탈과의 원가보전율은 조사 기관에 따라 60~80% 수준이다. 이건 워낙에 소스가 오래된게 많고 통계 내는 기관마다 자기 의도가 듬뿍 들어가서 해석을 하다보니 여기서 하나를 제시하기보단 다들 직접 찾아서 보는게 객관적일 것 같다. 여튼 현실이 이렇다 보니, 병원에서는 바이탈과를 이뻐할래야 이뻐할수가 없고 당연히 지원도 줄어들수밖에 없다.

  이는 펠로우/교수급 인력을 늘릴수가 없는 이유가 된다. 여기에 일부 과를 제외하면 개원이 굉장히 한정되는 문제로 인해 바이탈과 수련을 마쳐도 전문의로 취업도, 개원도 힘들어지는게 현실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흉부외과를 수련해서 흉부괴와 전문의가 되어도, 수술을 하게 해주는 병원을 구하는것 부터가 힘들다는 뜻이다. 물론 이러면 병원이 이기적이네! 라고 할수도 있지만, 바이탈과 진료로 인해 병원 전체가 적자가 나고, 장례식장과 주차장 수익으로 겨우 연명하는데 바이탈과 진료를 늘리라는건 현실을 보지 않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심심찮게 나오는 의료소송까지 고려하면 바이탈과의 현실은 더욱 비참해지는것.


3. 증세없는 복지는 없다

  그럼 의료수가를 늘리면 되겠네, 의대증원이랑 같이 필수의료 패키지고 수가 상승도 약속했으니 된거 아냐? 할수도 있지만, 건보공단 재정은 땅파면 나오나? 이미 건보공단은 지속적으로 적자고 기존에 모아둔 돈을 털어넣어서 의료수가를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미 있는 수가도 온갖 세세한 조항을 만들어서 삭감하고 지급 거부하는 마당에 의료수가가 늘어나면 그 재정을 어떻게 감당할건지 계획이 아예 없다.

  결국 의료수가를 늘려서 바이탈과 원가보전율을 높여주려고 해도 건보공단 재정이 발목을 잡는다. 건보공단 재정은 기본적으로 건강보험료 라는 항목으로 급여에서 공제되는 항목이 담당한다. 회사랑 근로자가 절반씩 내기는 하는데, 결국 이거도 국민연금과 같이 %단위로 급여에서 뗀다는 뜻이다. 근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 건강보험료율을 올릴 생각이 없다. 그 어떤 정치인도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인 만성적자 건보공단과 100%가 안되는 원가보전율을 해결하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는 건강보험료율 증가를 필수적으로 동반하고, 이런 세금과 같은 항목 증가에는 국민이 표를 던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4. 국민의 집단 이기주의

  결국 국민이 원하는건 이거다. 증세없이 필수의료를 개선하라. 근데 이건 불가능한 목표다. 아니, 단 한가지 방법은 있다. 필수과 의사들이 스스로의 급여와 원가보전율을 더욱 깎아서, 지금보다 더한 희생을 하면 된다. 나는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적인 정서가 딱 이정도가 아닌가 한다. 필수과 의료는 개선되었으면 좋겠어, 진료 기다리기도 싫고 수술도 제때 다 받고싶으니 의사는 늘어야지. 근데 거기에 돈을 지불하고 싶지는 않아, 그건 의사가 희생해야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괜히한게 아니잖아? 여기에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표를 위해서 이 주장의 문제를 지적하기는 커녕 동조하기만 하니, 개인적으로 문제가 개선될 희망은 없다고 보인다.


5. 마치며

  어슐러 K. 르 귄이 쓴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나무위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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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하게 번영하는 여러 모로 이상적인 도시 오멜라스, 그 도시의 행복은 불가사의하게도 지하에 갇혀서 나가지 못하고 고통받는 어떤 아이의 희생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이다. 즉, 오멜라스가 지상낙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가 계속 지하실에서 고통받고 있어야 하며 누구라도 그 아이를 조금이나마 도와줄 경우 오멜라스가 누리는 행복과 번영은 바로 그 순간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것이다.


  오멜라스 주민들은 8~12살 즈음에 그 사실을 듣게 되기 때문에 자신들이 누리는 행복, 주민들 사이의 정 등이 그 아이의 비참한 처지 덕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그 진실을 대면한 이후에도 여러 이유를 들어서 그 아이의 희생을 결국 받아들인다. 심지어 더 선하고, 더 열심히 살아가게 되지만 몇몇은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는 오멜라스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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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위 내용은 공리주의를 논하기 위해 사용되는 비유다. 그런데 요즘 전공의 파업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문득 오멜라스가 떠올랐다. 대한민국 의료는, 필수과 의사들을 쥐어짜서 만든 허상이 아닌가?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은, 필수의료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 증세를 부담할 의지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