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가끔씩 펨코 눈팅을 해왔는데, 오늘 첫글을 써봅니다. 




저는 여러 의사를 가족과 친한 친구로 둔 변호사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공의 집단행동을 더욱 유의깊게 보고 있습니다.


 


현재 인터넷에 부정확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법률 의견이 많아, 그간 주변 의사들와 상담한 내용을 위주로 차근차근 제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잘못된 부분은 자유롭게 비판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최근 임무영 변호사가 올린 “전공의 사직 금지명령에 대한 고찰” 및 “수술지연과 손배소 가능성”이라는 게시글이 가진 오류도 지적하겠습니다.




요약은 아래 VI.항을 보시면 됩니다.


 


 


II. 처벌가능성


 


1. 상황에 전제되는 의료법 규정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전공의를 비롯한 의사 처벌은 의료법 제59조 제2항에 따른 업무개시명령을 위반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위 업무개시명령이 적법했다면, 의료법 제59조 제3항에 따라 의료인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만약 거부한다면 의료법 제88조 제1호에 따라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즉, ➀ 업무개시명령이 적법했고, ➁ 명령 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처벌대상입니다.


(의료법 제59조 제2항과 제3항 모두 의료인이 진료하지 않는 데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를 묻기 때문에, 사실상 정당한 사유는 한번만 검토하면 됩니다. 따라서, 이는 후에 별도로 상술하겠습니다.)




의료법


제59조(지도와 명령)


①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ㆍ도지사는 보건의료정책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 <개정 2008. 2. 29., 2010. 1. 18.>


②보건복지부장관,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하여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 <개정 2008. 2. 29., 2010. 1. 18.>


③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제2항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제88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2019. 8. 27., 2020. 3. 4., 2021. 9. 24.>


 


1. 제19조, 제21조제2항(제40조의2제4항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제22조제3항, 제27조제3항ㆍ제4항, 제33조제4항, 제35조제1항 단서, 제38조제3항, 제47조제11항, 제59조제3항, 제64조제2항(제82조제3항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제69조제3항을 위반한 자. 다만, 제19조, 제21조제2항(제40조의2제4항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또는 제69조제3항을 위반한 자에 대한 공소는 고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전공의들은 업무개시명령에 반하여 환자를 돌보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 중인 건 매우 분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➀ 업무개시명령의 적법성, ➁ 위 명령을 거부할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2. 업무개시명령의 적법성


 


의료법 제59조 제2항에 따른 업무개시명령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다음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➀ 전공의가 업무개시명령 대상자일 것


➁ 진료 중단으로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 발생


➂ 진료 중단에 정당한 이유가 없을 것(다만, 이는 뒤에서 설명하겠습니다)


④ 해당 명령이 대상자에게 송달(도달)


 


그럼 업무개시명령이 적법했냐? 제 의견은 “그렇다”입니다.


 


➀ 우선 전공의가 업무개시 명령 대상자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의료법 제59조 제2항은 업무개시명령 대상자로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를 두고 있습니다. 이외 다른 제한 사항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공의는 의료법 제2조 제1항에 따른 ‘의사’기 때문에 의료인이 분명하고, 따라서 의료법에 따른 업무개시명령 대상자가 분명합니다.




제2조(의료인)


①이 법에서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한다. <개정 2008. 2. 29., 2010. 1. 18.>


 


그리고 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가 매우 촘촘하게 대비를 해왔다는 점을 살필 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아래 의료법 제59조 제2항에 주목해주십시오.


 


“보건복지부장관,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하여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


 


명시적이진 않지만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이라는 조항은, 진료를 계속하고 있던 의료인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이미 퇴직했거나 업을 하지 않고 있던 의료인에겐 해당 명령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단체행동 조짐이 있던 때에, 의료법 제59조 제1항에 따라 각 의료기관에는 ‘사직서수리금지명령’, 전공의에게는 ‘업무유지명령’을 내린 겁니다. 즉, 전공의가 업무개시 명령이 있기 전 병원을 적법하게 떠나는 걸 막고자 했던 조치입니다.


 


(위 글을 잘 읽어보시면 “전공의 사직 금지 명령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로 정부 조치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 방법이라고 일갈한 임무영 변호사의 주장이 얼마나 1차원적인 생각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https://blog.naver.com/swordman22/223358036613).)


 


 


➁ 두 번째는 진료 중단으로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했는지입니다.


이는 사실 제가 설명드릴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➂ 진료중단에 정당한 사유는 없다고 판단되는데, 구체적인 이유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④ 업무개시 명령이 적절하게 송달되었는지도 중요합니다. 이는 정부가 국민에게 내리는 각종 처분(면허취소, 철거명령, 과태료 등)이 적법한지 살펴볼 때, 매우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행정절차법을 살펴봐야 합니다.


 


행정절차법은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송달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즉,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문자메세지를 통한 송달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2024년에 살고있지만, 법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문 열어주지 말기’, ‘집에 없는 척 하기’ 등이 업무개시명령 대처법으로 돌아다녔습니다.


 


행정절차법


제14조(송달)


③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송달은 송달받을 자가 동의하는 경우에만 한다. 이 경우 송달받을 자는 송달받을 전자우편주소 등을 지정하여야 한다.


④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송달받을 자가 알기 쉽도록 관보, 공보, 게시판, 일간신문 중 하나 이상에 공고하고 인터넷에도 공고하여야 한다.


1. 송달받을 자의 주소등을 통상적인 방법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


2. 송달이 불가능한 경우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행정절차법에 새로운 조항이 신설됐습니다. 바로 제24조 제2항에 따른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한 긴급한 처분”입니다. 따라서, 우편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보내지 않더라도,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한 처분은 얼마든지 문자, 카톡, 팩스, 이메일을 통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제24조(처분의 방식)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하여 긴급히 처분을 할 필요가 있거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는 말, 전화,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 전송, 팩스 또는 전자우편 등 문서가 아닌 방법으로 처분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당사자가 요청하면 지체 없이 처분에 관한 문서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백번 양보하여 지금이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가 문제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송달을 받지 않으면 행정절차법 제14조 제2항에 따라 인터넷에 공고하는 방식으로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결론짓자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적법합니다. ① 업무개시 명령 대상자, ② 진료에 막대한 지장 발생, ③ 진료 중단에 대한 정당한 사유 부재, ④ 적법한 송달이라는 모든 관점에 비추어 봤을 때 그렇습니다.


 


3. 업무개시명령 거부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업무개시 명령 거부에 대해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 실무례는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업무개시 명령에 대한 불응이 정당하다고 인정될 여지는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가볍게만 살펴보겠습니다.


 


보통 이런 때에는 명령 불응에 ① 불가항력적인 사유가 있었는지(부상, 친족 사망 등), ② 업무개시명령이 보호하려는 이익보다 거부하여 추구하는 이익이 훨씬 더 중대한지를 따지게 됩니다.


 


그런데, ① 불가항력적인 사유는 인정되기 매우 어려울 겁니다. 우선, 의협 등 의사단체는 이번 정부 발표 전부터 의대증원 반대를 위한 회의를 계속해왔고, 현 전공의 단체행동 전에도 내부적인 토의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전공의들 내부적으로 사직서 제출이 가시화 된 이후부터 사직서가 쏟아지기 시작한 점까지 고려하면, 사직서에 어떤 사유를 적었든 불가항력이 인정되기 어려울 겁니다. ② 그리고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거부 사유로 의사들이 주장하는 부분은 ‘10년 뒤 증원된 의사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붕괴한다’, ‘필수의료 패키지가 통과되면, 의료 시장이 붕괴한다’ 등 상당히 먼 미래에 도래할지 모르는 추상적이며 불확실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당장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겪어야하는 위험은 ‘죽음’, ‘영구장애’ 등 구체적이고 중대하며 개연성 있는 위험입니다.


 


즉, 불가항력은 존재하지 않고, 전공의가 주장하는 이익에 비해 침해되는 이익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따라서, 업무개시 명령이 적법한 이상, 거부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될 여지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4. 의협 간부들, 전공의대표, 인터뷰에 응한 자들은 처벌 및 면허 취소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벌금형 또는 자격정지 처분을 받게될 확률이 높습니다.


 


가. 의협 간부, 전공의대표, 인터뷰에 응한 자들


 


의료법 제59조 제2항에 업무개시 명령이 적법한 이상, 이를 위반한 자들은 의료법 제88조 제1호에 따라 처벌 대상입니다.


 


물론, 이는 업무개시 명령을 받은 자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명령에 따르지 않았음이 증명됐을 때입니다. 그래서, 아무말 없이 결근만 했다면 오히려 처벌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어떤 사유로 업무개시명령에 따르지 않았는지 밝혀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저항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전공의들은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즉, 외부 시선에서 보았을 때, 이들이 단체 의사 결정을 통해 진료 거부를 시작했다고 보일만한 정황이 매우 명백합니다. 해외여행 간다고 출국 신청까지 한 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한편,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했음이 더욱 명백한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의협간부, 전공의대표들, 인터뷰에 응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공표’했고, 심지어 업무개시명령에 대응하기 위해 ‘대형로펌’과 접촉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으며, 법률 지원을 위한 모금까지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모두 그들이 고의로, 업무개시 명령을 거부했다고 자인한 셈입니다. 미디어에 나와 남긴 말들이 모두 형사처벌 및 이에 따른 면허 취소라는 칼날이 되어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과거 서울중앙지방법원 2002. 7. 24. 선고 20017816 등 업무개시 명령 위반 및 이에 따른 면허 취소 판결들을 살펴보면, ① 형식적으로 진료거부가 아님을 가장해도 실질적으로 진료거부라면 명령 위반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사직서 제출이기 때문에 진료거부가 아니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②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한 사실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고 의료법 위반에 따른 제제를 피하려 했던 정황으로 매우 강력히 추정될 겁니다. ③ 그리고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나 동료간 유대의식이 강한 의사 사회 특성상 불참할 경우 반역자로 몰리게 되는 심리적 압박을 가한 점(이는 판결문상 표현입니다)도 모두 고려가 됩니다.)


 


정부에서도 모든 전공의 면허를 박탈하려 질주하진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전공의들이 전원 파업하는 결과와 마찬가지니까요. 따라서, 우선 위에서 언급한 자들을 중심으로 강한 구형을 해서, 징역 또는 금고형이 선고되도록 유도할 겁니다. 그리고 유죄가 선고되면 의료법 제65조 제1항 제1호 및 제8조 제4호 이하에 따라 의사 면허가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를 불문합니다.


 


제65조(면허 취소와 재교부)


①보건복지부장관은 의료인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할 경우에는 그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다만, 제1호ㆍ제8호의 경우에는 면허를 취소하여야 한다.


1. 제8조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게 된 경우. 다만, 의료행위 중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하여 제8조제4호부터 제6호까지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게 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8조(결격사유 등)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다.


4.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5.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6.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


 


따라서, 이들은 이번 정부 정책 결론이 어떻게 나든 법정에 서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법원과 정부는 시스템이 흔들리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행정소송을 몇 번 경험한 분들은 몸소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정부와 법원은 의협이 의료문제를 빌미로 모든 정책을 뒤흔들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리가 보입니다. 따라서, 형사소송과 행정소송에서 이번 사안과 깊히 관련된 자들에게 최대한 고통을 주고, 적어도 몇 년간은 청진기를 들지 못하겠죠.


 


 


나. 기타 의사들


 


나머지 의사들에게는 자격정지 처분부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10호는 의료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하면 대한 형사처벌이 없어도, 면허를 정지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제66조(자격정지 등)


①보건복지부장관은 의료인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제65조제1항제2호의2에 해당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 이 경우 의료기술과 관련한 판단이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는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결정할 수 있다.


10. 그 밖에 이 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때


 


따라서, 단순히 사직서만 제출하고 출근하지 않은 자들은 가벼운 벌금형과 함께 몇 개월간 자격정지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이를 다투고자 행정소송을 할 수도 있겠지만, 행정소송 승소율은 20% 미만입니다. 그리고, 형사소송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고, 짜증납니다. 그리고 더 허무한 건,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때 쯤, 면허정지 기간이 끝날 겁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차례 이루어진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했다면, 면허정지가 풀린 뒤, 다시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행정청은 면허정지 정도는 무한대로 쏘아댈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주체입니다.




5. 생사가 오가는 응급실이나, 앞두었던 중대한 수술을 떠난 전공의들은 살인죄로 기소될 수도 있습니다.


 


형법에는 ‘부작위범’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범죄를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형법 제18조(부작위범)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


 


조문이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① 위험을 막기 위해 특정 행위를 해야할 의무가 있는 자, 또는 ② 위험을 만들어 놓고 이를 막지 않은 자가, 적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실제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과 같게 판단한다는 취지입니다.


 


①에 관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소방관은 법률상 위급상황에 있는 시민을 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그가 불길에 휩싸인 건물 안에 사람이 있음에도 소화 작업을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그 안에 시민이 죽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소방관은 칼로 찌르는 등 구체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즉 그의 부작위는 형법상 실제 사람을 죽인 행위와 마찬가지로 평가됩니다.


 


②는 누군가 사람을 납치하고 영양실조에 빠지게 한 뒤,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죽게 만든 경우를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물론 이건 그냥 살인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원래 부작위와 작위는 구분이 매우 어려운 개념이며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더욱 세분화된 개념이 있지만 여기서 소개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의사에겐 환자를 돌볼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이 유명무실한 다짐이 아닌, 의료법 제15조 제1항이 규정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를 현 전공의 사태에 대입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만약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날 당시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보호해야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했음에도, 진료를 보지 않았다면 이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환자에게 발생할 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


①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다음은 세월호 승무원들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확정한 대법원 판결 일부입니다.


 


“따라서 선박침몰 등과 같은 조난사고로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들이 스스로 생명에 대한 위협에 대처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선박의 운항을 지배하고 있는 선장이나 갑판 또는 선내에서 구체적인 구조행위를 지배하고 있는 선원들은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통해 보호능력이 없는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의 사망 결과를 방지하여야 할 작위의무가 있다 할 것이므로, 법익침해의 태양과 정도 등에 따라 요구되는 개별적․구체적인 구호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사망의 결과를 쉽게 방지할 수 있음에도 그에 이르는 사태의 핵심적 경과를 그대로 방관하여 사망의 결과를 초래하였다면, 그 부작위는 작위에 의한 살인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진다고 할 것이고, 이와 같이 작위의무를 이행하였다면 그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인정될 경우에는 그 작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와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III. 민사소송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임무영 변호사는 “수술 지연과 손배소 가능성” 이라는 글에서 “피해자가 전공의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청구가 기각될 겁니다”, “전공의가 일정 차질을 막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의생해 가면서 계속 근무해야할 의무는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swordman22/223360373107


 


그러나, 이는 민법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얕봤거나, 정치적인 법해석입니다(변호사가 이렇게 교과서나 실무례 한번 면밀히 탐구하지 않은 채 주장을 할 수 있는지 놀랐습니다). 오히려, 저는 전공의들이 이 민법상 책임을 훨씬 더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여, 형사처벌은 피해갈 수 있을지 몰라도, 피해를 입은 환자를 상대로는 대항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서 전공의 진료 거부가 정당하지 않다는 점은 이미 검토했으니, 이를 전제로 아래 논의를 이어갑니다(물론, 의료계약서 내용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선 이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전공의의 법적 지위를 살펴봐야 하는데, 대법원은 전공의가 피교육자적 지위와 근로자적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고 봅니다(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다39513 판결). 따라서, 환자 입장에선 다음과 같은 법률관계가 형성됩니다.


 


환자 -(의료계약체결)- 병원 -(수련계약체결(근로계약성질포함))- 전공의


 


그런데, 현재 상황은 전공의가 진료를 거부하는 탓에 병원은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환자에게 사망, 장애 등이 예상되는 때입니다.


 


이는 쟁의행위(‘파업’이라고 하겠습니다.)로 회사와 거래하는 제3자가 손해를 입은 상황과 매우 유사합니다. 전공의는 근로자로서의 지위도 갖기 때문입니다.


 


제3자 -(공급계약체결)- 사용자 -(근로계약체결)- 근로자


 


따라서, 파업으로 인해 사용자와 거래하는 제3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때, 대법원이 적용하는 법리와 실무례를 참고하면, 진료를 거부한 전공의가 환자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할지 미리 엿볼 수 있습니다.


 


실무례는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① 파업이 정당한 경우


이때는, 제3자는 사용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민법 제391조의 이행보조자 법리를 통해 사용자에게 과실이 있는지 유무는 사실상 거의 따지지 않습니다.


 


② 파업이 정당하지 않은 경우


만약 파업이 정당하지 않다면, 사용자는 물론, 제3자도 근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게, 명백한 대법원의 견해입니다(대법원 1997. 7. 11. 선고 97다1266 판결).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현 상황에 위 법리를 대입해 보겠습니다.


 


만약 전공의 진료 거부가 정당하다면, 환자들은 병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공의 진료거부가 정당하지 않다면, 병원은 물론 전공의에게도 손해배상 청구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는 병원 측 고의·과실과 무관합니다.




그러므로, 위 임무영 변호사가 “병원을 상대로 한 불법행위 소송은 고의와 과실이 전부 인정되지 않으므로 청구가 기각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라는 주장은 엉터리입니다. 게다가,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책임만 검토했습니다. 환자 입장에선 병원과 유효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법 제390조에 따른 채무불이행 책임도 따져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임무영 변호사가 임금, 노조 등 노동 사건을 수행해 봤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리고 위 대법원 판결이 아니더라도, 저는 환자가 제3자 채권침해라는 법리를 통해서도 전공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봅니다. 대법원은 ‘제3자-채무자-채권자’ 관계에서, 채권자와 제3자가 직접 관계가 없더라도 제3자가 위법한 행위로 채권 실현을 방해하면 책임을 져야한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6다10827 판결). 따라서, 만약 환자와 전공의 사이에 직접 연결된 관계가 없더라도, 전공의가 위법하게 진료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 환자가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을 때, 전공의는 환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합니다.


 


정말, 임무영 변호사의 법리전개를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전문가로서 말을 할 때는 자기가 뱉은 말이 불러올 결과를 항상 깊게 주의해야합니다. 임무영 변호사는 자기가 틱 던져놓은 무성의하고 부정확한 글을 읽고, 젊은 전공의들이 수억짜리 소송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IV. 기타 주저리


의협이 접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형로펌은 아마 ‘법무법인 대륜’으로 보입니다. 의협이 대형로펌 접촉 주장을 하자 마자, 곧바로 대륜 소속 익명의 C변호사가 한 아래 기사가 보도됐기 때문입니다.


 


https://www.dailymedi.com/news/news_view.php?wr_id=908314


 


물론 대륜은 매우 큰 로펌입니다. 매출로는 대한민국 10위 권에 드는 회사니까요. 그렇지만 변호사에게 “대륜이 김장(김앤장을 뜻합니다),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 바른, 지평, KCL, 로고스, 충정, 대륙아주, 동인과 같은 대형로펌과 같은 곳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그는 실소를 금치 못할 겁니다.


 


아마 저는 의협 차원에서 김앤장 등 누구나 알만한 대형로펌을 선임하진 못하리라 봅니다. 그들에게 의협 사건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큽니다. 대형로펌이 대기업으로부터 엄청난 수임료를 받는 프로젝트에는 공정위, 국세청, 국토부 등 정부기관이 언제나 끼어있습니다. 정부기관은 M&A, IPO, 재개발, 사업허가, 보조금, 등 사실상 모든 분야에 걸쳐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로펌들이 변호사 자격이 없더라도 정부기관에 오래 몸담은 분들을 모셔오는 겁니다.


 


이렇게, 대형로펌 입장에선 정부는 수백억이 걸린 프로젝트 목줄을 쥐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소송을 걸어 이긴다고 해도, 그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수년간 미친 듯 골머리를 썩어야 합니다. 또, 그 소송에서 이겨도 이미 프로젝트는 엉망징창 박살난 이후고, 기업은 로펌을 바꾸겠죠.


 


그래서 앞으로 꾸준히 몇백억씩 프로젝트를 던져주지도 않을 의협을 위해, 대형로펌이 정부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V. 마치며


 


이 글은 제가 변호사로서 생각하는 법리적 관점에서 작성했으며, 다른 훌륭한 견해를 가진 변호사님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잠시 한가한 날을 틈타 끄적인 내용으로, 미진한 부분 투성일 겁니다.


 


그러니, 제 견해가 정답은 아닙니다. 법학은 법원에서 결론이 나오기 전까진 답이 없는 학문이니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이 사태가 조속히 그리고 무탈히 지나가길 기도합니다.


 


VI. 요약


1. 정부는 매우 정교하게 전공의 단체행동에 대비해왔다.


2. 진료유지명령과 사직서수리금지명령으로, 전공의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준비를 해뒀다.


3. 업무개시명령에는 특별한 흠결이 없어보인다.


4. 의협, 전공의 대표 등 주동자들은 형사처벌과 의사면허 취소를 피하기 어려울 것.


5. 이외 단체행동에 가담한 전공의들은 정도에 따라서 선처-면허정지-면허취소를 받을 수 있음.


6. 계약에 따른 치료를 받지 못해 피해를 입은 환자들은 병원과 전공의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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