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0월 이름만 멋있는 미사일사령부로 전입온 나는 훈련소에서도 몇 보지 못했던 병장 선임들에 둘러싸여 위축된 겁많은 이등병이었다.

말년병장과 함께 불침번 말번을 새웠던 날이었다. 대충 강원도 가까이 어딘가 자리잡은 10월 말의 부대는 새벽이 워낙 추웠다. 

당직사관이 오면 옆에서 자는 말년을 즉시 깨워야 했기에 졸음 속에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긴장감, 온몸이 오들오들 떨리는 추위, 그리고 지독한 배고픔으로 인해, 수많은 불침번을 섰지만 그 때 그날만큼 길었던 밤이 없었다.

말번이 국기조를 해야 하는 것도 잊어버린 나는 허겁지겁 준비하고 국기를 올리러 갔는데, 끝난 후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생활관으로 돌아가 혼자 쓸쓸히 대기하고 있다가 밥 먹을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국기조가 끝난 사람은 바로 밥 먹으러 가면 된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지적당한 것도 서러워 밥도 못 먹다니.

점심도 못 먹었는데, 작전병은 상황병과 교대하기 전에 자리를 비우지 못해 밥시간이 늦기 때문이다. 밥 시간 10분 만에 장구류 총 다 챙기고 버스로 출발하라니, 눈치 보여서 밥이 넘어가겠다.

이날은 영점사격이 있는 날이었다. 다행히도 사격장에는 나같은 근무자들을 위한 것인지 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격장은 찬바람 속에 모래먼지가 지저분하게 휘날리는 곳이었다. 간부들, 앞 중대가 먼저 사격하느라고 우리 중대는 잠시 대기하고 있었기에 밥 먹을 짬이 났다. 나 빼고 모두가 다 먹었기에 선임들 사이 둘러싸여 밥 먹는 걸 구경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비닐을 씌워 놓은 차가운 식판에 받은 것은, 따끈하고 하얀 밥에, 간이 좀 셌던 소고기 미역국, 그리고 나를 알아본 간부님이 듬뿍 얹어주신 빨간 제육이었다. 

한 손엔 식판을 들고 한 손엔 등에 멘 총을 땅에 조심히 내려놓으면서 앉느라고 밥을 다 쏟을 뻔했다. 배고파서 휘청인 것도 있었을 것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로 계속해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밥은 금방 식어버렸다. 그러나, 겉이 차게 식어서 더 고슬고슬하고 달게 느껴진 잘 된 밥에 짭짤한 미역국을 적셔 먹은 뒤, 먹음직스럽게 빨갛고 큼직한 제육을 한 입 넣자 어질어질했던 그날 하루는 뇌에 주사기로 설탕을 주입한 것마냥 달게 느껴졌다. 

다 알지만 국에 찬밥을 말아 먹는 게 뜨거운 밥의 경우보다 훨씬 맛있다. 소고기 다시다 팍팍 넣고 짜게 식은 미역국은 찬밥과 어우러지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짭짤 달달한 고기가 이 감칠맛을 배가시켰다.


왜인지 원으로 둘러 앉았던 선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