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Combat Studies Institute) 보고서

 

NO.13

 

집중 포병에 대한 전술적 대응

 

Combat Studies Institute

USACGSC

Fort Leavenworth, Kansas 66027-6900

 

 

 

 


 CSI 보고서는 공식 조사에 대한 대응으로 작성된 단기 연구 보고서입니다 보고서들은 주로 2 자료를 기반으로 하며고려 대상 주제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합니다. CSI 보고서에 표현된 견해는 작성자의 것이며군부나 국방부의 입장을 반드시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Combat Studies Institute

Missions


 전투 연구소 임무 전투 연구소는 미국 육군 지휘부  장군 직무 교육원인 포트 리븐워스의 부서  활동으로 1979 6 18일에 설립되었습니다. CSI 다음과 같은 임무를 수행합니다.

  1. 육군의 교리적 관심사에 관련된 역사 주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결과를 다양한 형식으로  육군과 예비 부대들을 위해 발표합니다.
  2. 군사 역사를 교육하기 위해  육군 지휘부  장군 직무 교육원에 지도를 제공하고 다른 부서들이 교육에 군사 역사를 통합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3.  육군 교육  교리 지휘부(TRADOC) 대리기관으로서 통합적이고 점진적인 군사 역사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조정을 위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임무는 TRADOC 학교 체계에서 군사 역사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조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차

Chapter

  1. Soviet Artillery In Battle: A Historical Perspective

By Lieutenant Colonel James R. Holbrook

전투에서의 소련 포병역사적인 시각

제임스 R. 홀브록 중령 

  1. World War I: Elastic Defense and the U.S. 3d Division at the Marne River

By Lieutenant Colonel Michael E. Dunn

             1 세계 대전탄력적 방어와 마른 강에서의 미국 사단

                           마이클 E.  중령

  1. The Impact of Massive Artillery Fires on Command, Control, and Communications in the European and North African Theaters During World War II

By Lieutenant Colonel Roy R. Stephenson

2 세계 대전의 대규모 포격의 지휘통제  통신이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에 미친 영향

              로이 R. 스테픈슨 중령

  1. German Counterartillery Measures on the Eastern Front in 1944-45: Operation Bagration

By Dr. Samuel J. Lewis

             1944-45 동부 전선바그라티온 작전에서의 독일 대포병 전략

                           세뮤얼 J. 루이스 박사

  1. Japanese Counterartillery methods on Okinawa, April-June 1945

By Dr. Thomas M. Huber

                     오키나와 전선, 1945 4-5월의 일본 대포병 전략

                                   토마스 M. 후버 박사

  1. The Korean War: The United Nation’s Response to Heavy Bombardment

By Dr. William Glenn Robertson

                     한국전쟁에서의 집중포격에 대한 UN군의 대응

                                   윌리엄 글렌 로버츠슨 박사

  1. The Korean War: Chinese Forces’ Response to Heavy Bombardment

by Dr. Gary J. Bjorge

             한국전쟁에서의 집중포격에 대한 중국군의 대응

                           개리 J. 비요르지 박사

  1. Israeli Defensive Measures Against Arab Artillery

By Dr. George W. Gawrych

                     중동 포병에 대한 이스라엘 방어 전략

                                   조지 W. 가르치 박사

 

 

 

 

 

서문

 연구의 초점은 다양한 국가의 군대가 대규모 집중 포병 또는 다른 유형의 준비 사격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아보는데 있습니다모든 연구가 성공적이지만은 않았으며 군대의 성공 또는 실패의 이유는 현시대 군사 지휘관에게 "전임자들"로부터 배울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그들이 얻은 귀중한 교훈을 활용할  있게 합니다.

 

 

 

 

서론

       제1차 세계 대전의 서부 전선은 집중된 포병 사격에 대해 군대를 방어함으로써 대응하는 전형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이것은 최근의 이란-이라크 전쟁만큼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분쟁들까지도 비교되는 기준이다. 요새화, 장갑, 분산, 지속적인 이동, 속임수, 반격, 총선에서의 지상 공격 등 집중포격에 대응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대전쟁에 존재하였다. 그러나 대전쟁은 포병전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였다. 처음에는 서부 전선에서 전투에 참여하던 군대들은 포병을 보병과 기병 사이의 전투를 보조하는 역활로만 보았다. 초기 전투에서 사용된 포병의 규모는 참여한 포병의 수가 보병의 에서 10할에 근접할 정도로 강대했던 이후 전투들에서의 규모에 비해 작았다. 전쟁 이전의 교리는 개활지에서 전투하는 부대를 지원하거나 측면을 개방시키거나 방어할 수 있으며 기동군의 전진을 유지시킬 수 있는 속사가 가능한 경량 야포에 중점을 두었다. 벨기에의 국경 요새들을 극복해야했던 독일만이 중포에 많은 투자를 했다. 전술 교리는 공격적이였으며 경쟁 국가들을 상대하는데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물론 당연하게도 양측이 1차 세계대전에서 발견한 전투 조건에서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전투를 벌이는 군대들은 처음에는 탄창형 소총과 기관총들의 사격에 의해 저지되었다. 1914년 말에는, 군대들은 상대적으로 얕은 참호 시스템에 앉아 알프스부터 영국 해협까지 이르는 무인지대를 중앙에 놓고 마주보고 있었다. 이때가 바로 포병, 특히 중형 밑 대형 구경의 곡사화력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때였다. 포병은 적의 참호를 관통시킴으로써 새로운 측면을 개방시키는 방법이 되었다. 방어자에게는, 포병은 측면을 보호하거나 엄호하는 수단이 되었다. 공자의 포병은 방자의 직사화기 시스템을 제압하고 그들의 참호로써의 접근을 저지하던 철조망을 자르고 방어자의 진지를 파괴하며 그들의 포병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방어자의 화기들을 무력화시키는것은 그들이 공격자의 포병을 타격하는것을 막을 수 있고 공격자의 지휘 및 통제 체계는 물론이고 공격하는 보병과 공격이 시작되었을때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공격자측의 무인지대에 집중될 예비대에 대한 공격도 저지할 수 있었다. 1916년 7월 1일, 영국군은 개시점으로 이동 도중 굉장한 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16년에 이르러서는, “포병이 정복하고 보병이 점령한다”라는 말에 의미가 부여될정도로 충분한 수의 포, 화기, 그리고 탄약이 보충되었다.

 

적 참호로써의 길을 뚫어낼 수 있는 포병의 엄청난 집중은 방어 전략의 변화를 강요했다. 양측은 모두 더 깊어진 방어 시스템으로 이동하였으며 특히 독일군의 프리츠 본 로스버그 대령은 탄력 방어의 기본 개념이 되는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이것은 항상 적에 의해 파괴될 가능성이 있는 전방 방어체계의 약화를 불러일으켰다. 로스버그는 포병이 최대사거리까지 보병을 위해 방어체계에 길을 뚫어낼 수 있음을 알아챘다. 하지만 이 최대사거리가 도달되었을때 보병들은 중화기 화력 지원에 관해서 굉장한 열세에 처하게 된다. 만약 공격군의 기동군이 공격군의 사각 밖에서 저지되게 된다면 공격군이 “승리후의 무질서 효과”, 즉 그 어떤 진격에도 동반되는 무질서적이고 혼란스러운 피해로 앓고있을동안 반격에 처할 수 있게된다. 그들의 후퇴는 정적 포격에 의해 저지될수도 있으며 그들의 지원화력의 사거리 밖에서 격멸될 수 있다.

 

개념적으로는, 방어체계는 고지대에서 보안 구역에 대해 시야를 확보하도록 요구되었었다. 독일이 그들의 초기 진격때 프랑스의 1/3에 가깝게 점령했기에 그들은 좋은 방어선을 선택하고 그곳으로 철수 할수 있었으며 전쟁동안 최소 두번에 걸쳐 이를 대규모로 실행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철수는 연합군에게는 더욱 어려웠다. 방어자는 관측 사격과 직사에서로부터 벗어난 역경사 지형에 전방 방어선을 형성하곤 했다. 이 방어선조차 대대적인 공세가 아닌 국지적인 공격만을 받아내도록 설계되었다. 이 방어선 뒤에는 전방 방어선을 지원하고 전방 방어선을 돌파할만큼 강한 공격의 적들을 분리시키기 위한 기관총 진지들과 연속적인 참호로 이루어진 지역이 있었다.이 구역은 공격자를 그들의 포병 지원 거리로부터 끌어낼 수 있을정도로 깊었으며 칼 본 클라우슈비츠 (Cael Von Clausewitz) 가 방어적인 형태에서 방어 구역 전체를 다시 수복할 수 있을 방어 형태의 더 강한 힘의 원천인, “빛나는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반격 부대가 대기하고 있는 최후 저항선으로 이어졌다. 탄력 방어에서 반격을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제 2차 세계 대전 내내 독일 방어 전투의 특징이였다. 흥미롭게도 반격을 위해 지정된 예비부대는 반격부대 사령관과 방어구역 사령관의 지휘권 순위에도 불과하고 방어구역 사령관의 지휘 하에 투입되었다. 이것은 공격자가 공세를 멈춘 후 그들의 방어체계를 구축하기 이전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방어구역에 대응하기 위해 군대들은 그들의 기동군을 더 효과적인 보조 화기들로 무장시켰으며 그들의 전술 실행을 분산화시켰다. 잠입 전술과 제한된 목표물 공격의 조합은 탄력 방어의 효과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으며 방어자의 피해를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전쟁을 끝낼 수 있을정도의 전술적이거나 작전적 성공을 성취할수는 없었다. 항상 결정적인 전투를 승리할 능력의 부재나 협상의 바탕을 마련할 능력의 부재의 결과물이였던 총력전은 지속되었다. 이것은 솜 전투는 물론 오키나와와 한국에서도 다를것이 없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의 문제들중 일부가 수정되었다 작전상 전술 항공지원은 공격군의 포병의 부재에 대한 보상으로 작용하였다. 소화기 사격과 기관총 사격으로부터 보호받으며 무전기로 통제되는 침입작전을 실행하는 기계화부대들은 적의 방어구역을 돌파하고 방어군이 기계화 전투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예비대를 무전을 사용하여 통제하며 방어 구역을 더 깊게 변경하여 기계화 투입, 혹은 항공으로의 투입에 의한 기동성의 기하학적 증가에 대응하기 전에 전체 방어에 대한 일관성을 방해할 수 있었다. 그러한 점을 제외하면 전술적인 문제들은 거의 동일하게 남아있었다; 적의 예비사격을 흡수하고, 공세를 막아내며 공자의 부대를 파괴하기 위해 반격을 하며 방어체계를 복구한다. 결정적인 방어전투가 전구의 흥망성쇠가 달린 전술 예비대에 의해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이것은 2차 방어 구역에서의 수비 전투가1차 세계 대전때와 거의 같았기 떄문이다. 현대의 군대는 그들의 후방에서 뻗어지는 생명줄에 의존하므로 제한된 시간동안만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Immobile Mass” 혹은 고정군은 적 지상군의 개입에 의한 전투 지속력의 위협을 상대로 방어한다. 그것의 존재만으로도 제한된 자원으로의 돌파를 위한 집중을 요구한다.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적 보병 사단들은 동적 전투에서의 틀을 제공했으며 이것은 현대 방어전에서 어느정도 동일하게 요구되는점이며 미래에도 동일할것이다.

 

기동군에게 가용가능한 대포병 전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포병을 통합군의 맥락에 놓고 그것의 약적과 강점을 이해해야한다. 포병은 파괴적인 효과를 일으킬수 있으며 직사화기 시스템들보다 더 강력하며 멀리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포병 시스템은 그들의 사거리 이내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그들의 사격의 효과를 변화시킬 수 있기 떄문에 유연하다. 그들은 주로 그들의 사거리와 효과의 직접적인 결과인 무겁고 부피가 큰 탄약에 의해 제한받는다.

 

포병 사격은 지역 사격과 정밀 사격으로 구분될 수 있다. 지역사격의 목적은 주로 무력화이다. 이러한 수단으로의 파괴는 주로 시간과 비용의 측면에서 보았을떄 매우 값비싸다. 나름의 단점이 있는 핵무기의 경우를 제외하고 넓은 지역을 제압하기 위한 화력의 농도를 달성하는것은 매우 많은 양의 화기와 많은 탄약을 요구한다. 이것은 보통 많은 수의 탄약 운반수를 필요로 하거나 일종의 보관장소를 필요로 하는데, 이는 목적에 대한 증거와 함께 도로의 병목을 불러일으킨다. 표적들이 위치가 정확하게 파악될때 예측된 사격은 요구되는 탄약량을 상당히 줄여주지만 여전히 적지않은 양이 요구된다. 오늘날 스마트 탄약과 정확한 표적 획득 시스템을 이용하여 요구되는 탄약의 양 (가격과 간계없이) 를 제한단다. 1차 세계 대전에서 가스는 지근탄에도 제압을 위한 좋은 수단으로 쓰였으나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사격이 요구됐다.

 

방어자의 위치에 상당한 포병 화기들을 집중시키는 공격자들 상대로, 세가지 기본적인 방어가 있다. 첫 번째는 보호를 이용하는것이며 파고 들어가거나, 야전 방어시설의 공사, 혹은 장갑을 통한 방어이다. 공사를 통한 방어는 기동력을 제한시키며 부대를 정밀사격에 취약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공병 활동은 시간에 따른 부대의 약화를 피하기 위해 어느정도의 기동군의 활동과 협동되어야한다. 두번째 방법은 로스버그처럼 부대를 분산시키고 남아있는 인원들을 보호하는것이다. 이것은 돌파하는 적의 임무를 더 쉽게 만들수도 있지만 착탄지점 밖에 있는 부대들은 반격을 실행할 수 있도록 잔존하며 공격하는 적과 붙게 되면 포병 사격을 가하기 어려워진다. 로스버그의 대응은 지형이 지형이 방어의 일부가 아닌 방어의 수단에 불과한 부대 중심적인 방어를 의미한다. 이것의 단점은 이러한 경우 적의 부대의 위치를 그들이 사격을 위해 드러내기 전까지 확보하기 어려울수도 있으며 이를 파악하기 위해 아군의 부대를 적의 사격, 즉 일종의 구원을 위한 경주에 빠트릴 수 있다는것이다.

 

정밀 포격에 대응하는 몇가지 추가 대응방법이 있다. 속임수는 가장 흔한 방법이다. 적이 표적 위치를 확보할 수 없다면 정밀사격은 불가능하다. 신호 방출기, 사격을 유도하기 위한 가짜 진지, 야간 진지점령, 그리고 위장 등의 다양한 방법들이 쓰인다. 추가적으로 시설의 주기적인 이동은 주기적인 관찰이 없는 상태에서의 적의 조준을 어렵게 만든다. 적의 표적 식별의 거부시킬 수 있다면 적은 지역적 사격을 가할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따른 군수적 부담과 짐을 감당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 주의사항은 명령에 있다. 간접사격의 많은 양은 조우 교전이 아니라 돌파 작전의 특징이다. 현대의 포격 사거리는 부대의 약 30km 전방으로 연장된다. 이러한 포병의 사거리 안에서 기동군은 집중된 간접사격을 버티며 기동하며 전투하여야한다. 소련군은 접촉에 대한 대응으로 동행하는 포병이 있지만 이들은 30km의 사거리의 포병 구역을 확립하고 전방 기동군의 움직임이 느려질때까지 제대로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포병의 기동은 여전히 시간이 오래 걸리며 조율된 사격 계획을 확립하는것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지역 표적을 대상으로 쓰이는 MLRS와 고정익 CAS는 저고도 및 중고도 대공을 피할 수 있다면 포병 사거리 너머로 중화력을 투사할 수 있다. 두가지 모두 화력의 지속성이라는 점에서의 단점이 있지만 하인즈 구데리안 장군의 1940년 5월의 뮤즈 작전에서의 집중된 항공 포병의 영향력은 알맞은 시간과 때의 전술적 집중의 작전 효과에 대한 증빙이다. 만약 적의 항공지원과 로켓 포병을 위한 표적획득을 거부할 수 있다면 적은 불가피하게 포병의 성향에 의해 제한되게 될것이다. 소련 포병의 지속의 의미는 우리의 것과 같이 도로 기반이며 거부 작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전쟁의 붉은 신” 은 뒤섞인 부대들과 잦은 거부 작전으로 인해 전장에서 움직이는데 상당한 움직임의 제한을 겪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