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고급장교단 신조나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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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자기보다 계급이 낮으면 무조건 열등하다고 치부한다. 실제로 점점 병력의 질이 낮아지고 있으니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군은 하급자의 역량을 실제보다도 훨씬 과도하게 폄하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군은 전술 상황에서 유난히 지휘관이 모든 걸 관장하려는 경향이 심하다. 작전수행과정이 버젓이 존재하고, 장교 보수교육은 이를 핵심으로 가르치지만 야전에서는 아무도 쓰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가 퍼진 원인은 한국 사회 전반에 퍼진 기수 혹은 나이를 서열로 인식하는 문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어리거나 기수가 낮으면 당연스레 하대하고 얕잡아보는 고약한 문화가 위계서열이 엄격한 군대에서는 더욱 악화되었다고 본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지휘관과 참모 구성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예하부대 지휘관(자)의 계획수립을 방해하여 한국군의 지휘철학(이라고 수십 년 째 주장만 하는) 임무형 지휘마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다. 



새삼스럽지만 전술의 정의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투력을 조직하고 운용하는 과학과 술"(육군 군사용어)임. 전술의 기본단위부대인 대대부터는 부대를 '전술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참모부가 편성되어 있다. 참모부가 편성된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인원이 지휘관을 보좌하고 예하부대를 전술적으로 지휘통제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참모는 계획수립절차를 포함한 여러 절차와 규정, 군사지식을 바탕으로 예하부대를 지휘통제함. 이는 참모가 주무 분야에 대해서 일정 부분 지휘관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기 때문에 가능함. 이때 참모의 지휘통제는 통제에 더 가깝고, 정해진 절차와 규정을 따른다는 점에서 전술의 과학 영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참모는 지휘관의 권한을 위임받기 때문에, 대대장이 위임하고 지시한 분야에 대해서는 대대장과 동등한 수준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합동대 고급과정을 수료한 중령 대대장이 육대 갓 마치고 나온 소령 정작과장보다 군사지식을 더 많이 쌓았을테고, 판단력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참모의 역량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지휘관은 참모를 신뢰하고 어느 정도는 자신의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의 부담(지휘부담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동시에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부담)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중요한 국면에서 적시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야전에서 대부분의 대대급 부대는 그렇지 않다. 특히 전술 상황에서 한국군 부대는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지휘관의 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소 작전계획을 수립할 때는 정작과장이나 작전장교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대충 서명만 하면서, 훈련 때만 되면 자신이 인사 정보 작전 화력 군수 통신 의무까지 모든 분야의 모든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지휘관이 과연 그 모든 분야에 통달했을지도 의문이고 앞서 언급한 대로 지휘관이 모든 사건을 통제하려고 하다가 정말로 중요한 상황판단과 결심이 필요한 때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참모 입장에서도 지휘관이 다 해버리니 굳이 자신이 나서서 참모판단이나 참모조언을 할 필요가 없다. 괜히 조언했다가 욕만 들을지도 모르니까.  



예하부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하 중대의 위치를 끊임 없이 무선으로 확인하고(그런데 이건 솔직히 지휘소에 앉아 있으면 궁금하긴 하다.) 기동 속도가 느리면 느리다고, 빠르면 빠르다고 닦달하기 일쑤다. 군사보안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소대장을 찾아서 지시하고 따지는 경우도 있다. 심각한 경우에는 적과의 접촉을 보고받으면 그 때부터는 직접 무전기를 잡고 게임하듯 예하부대를 쥐락펴락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휘관이 과연 예하 지휘관(자)를 믿고 있을까? 의도가 어떠하든 예하 부대장은 자신이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예하 부대장을 신뢰한다면 작전계획 수립 시부터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그리고 실현 가능하게 제시한 뒤, 작전실시 간에는 명확한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할 것이다. 지휘관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면, 예하 부대원은 어떤 상황이 생겨도 지휘관의 지시만 기다리게 된다. 호기를 포착하여도 이를 확대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날려버리고 말 것이며, 반대로 적의 위협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부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독일연방군 임무형 지휘 교범에서는 "임무형 지휘는 상·하급 지휘(자)관 상호간의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또한 "임무형 지휘는 상·하급 지휘(자)관 상호간의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앞서 다룬 한국군의 행태와는 정반대이다. 원조 임무형 지휘 독일연방군의 시점에서는 한국군의 임무형 지휘 주장이 참으로 어설프게 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