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망했다 위기다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음. 근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걸 확언하는 건 불가능함.




1. 애플은 이제까지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같은 기업이면 문제가 된다. 이 기업들은 신제품을 아무 때나 발표하니까. 만약에 이 기업들이 지금까지 뭘 발표한게 없다면 진짜로 아무 것도 없는 거고 위기가 맞다. 근데 문제는 우린 지금 애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거다.




애플은 원래 그냥 제품 나오기 전까지는 정보가 없다. 


얘네들 이제까지 아무 것도 안 내놨쥬? 하는데 작년 하반기는 개인용 디바이스용 AI 신제품 내놓을 만한 시기가 아니었고 금년 신제품은 아직 발표할 때가 안 됐다는거다. 당연히 신제품이나 관련 소식도 아무 것도 없을 수 밖에. 왜 주총에서 팀 쿡은 '우리 뭔가 하고 있음' 하고는 주둥아리를 다물었을까. 그게 원래 애플이니까. 언제는 애플이 안 그랬나?


삼성이 AI 탑재 전화기를 내놨는데 애플은 늦어졌다고? 아니 그것도 당연하지. 지금은 아이폰 신제품 나오는 시즌이 아니니까. 없는게 당연한거고 아무리 애플이 만약에 지금 스카이넷 수준의 인공지능을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애플 제품 공개 방식의 특성상 지금은 아무 것도 못 보여줄 수 밖에 없음. 보여주고 싶어도 못 보여준다니까 지금은 ㅋㅋㅋㅋ 



2. 애플은 AI 준비를 정말 안 했나?




근데 그런 것 치곤 할 건 다 했다. 생성인공지능의 바로 직전까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양 쪽 모두에서 애플 만큼 진도가 나간 회사가 있긴 했나?




3. 정말 아무 것도 안 나왔나?

그렇지 않다. 연구 논문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LLM에 집중하는 마소, 아마존, 메타와 달리 애플의 논문은 주로 멀티모달 계열이다. 난 아마 신형 아이폰에서 클라우드 없이 디바이스나 아이클라우드 내의 미디어나 문서를 관리하는 로컬 AI 개발이 진행 중이라고 예상하고 있음. AI를 작동시키는 인터페이스도 채팅이나 프롬프팅보다는 좀 색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함. 


반세기 경력의 인터페이스 장인들이니 일단 개발 가능한 최상의 LLM 부터 만들고 그 수준에 맞는 제품을 뽑는 타사에 비해 인터페이스 사용 시나리오가 이미 결정 된 상태에서 거기에 특화된 AI를 개발하는 전형적인 애플식 제품 개발이 진행되는게 아닌가 싶음.




4. 비전프로는 애플의 방향결정 실패의 증거인가?

이건 단언할 수 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애플이 애플워치를 내놨을 때에도 애플이 기술기업이 되기를 포기하고 럭셔리로 가겠다는 LG전자 같은 짓거리를 한다는 분석들이 좀 있었던 것 혹시 기억하는 챈넘 있음? 어차피 똑같은 소리임. 그리고 그 당시의 애플 워치도 그렇게 간단한 물건이 아니었음. 자꾸 스마트워치의 용도를 전화기랑 페어링해서 화면에 간단한 정보 보여주는 기기로만 생각을 고정하니깐 애플워치가 그렇게 보이는거임. 


그리고 사실 애플워치와 비전프로는 꽤 연장선 상에 있는 제품임. 애플은 애플워치에서부터 최대한 많은 센서를 집어넣으면서도 전력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손목으로 전달되는 제한된 정보 위에서 사용자의 상태(건강상태, 현재 하고 있는 일, 포즈 등)를 최대한 유추하는 방식의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시작했었음. 그리고 그 오랜 연구 위에서 나온 결실이 바로 비전프로임.


비전프로는 헤드셋일 뿐이지만 엄청난 숫자의 센서가 사용자를 모니터링하고 이를 통해서 사용자가 추가 디바이스 없이도 굉장히 복잡한 입력을 해낼 수 있도록 해 주는 기계임. 그리고 이 모든 분석을 해내는데 바로 다들 애플이 못한다고 놀리는 그 인공지능 기술이 엄청난 수준으로 들어간다는 거임. 심지어 입출력이나 처리되는 연산의 수준을 생각하면 굉장한 저전력으로.


컴퓨터의 사용자 경험은 화면을 보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님. 모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은 PC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모바일로 확산되어 왔음. AI도 화면 바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사용자를 돕는 것이 '데스크톱 모니터 속의 인공지능' 이후의의 패러다임일 수 밖에 없음. 여기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기업이 준비되어 있음? 애플 이외에?


비전프로 그 자체의 가능성도 현재의 상품성 만으로 판단할만한 일이 아님. 비전프로가 증명한 것 중 하나는 이 기계로 데스크톱 디스플레이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었음. VR 엔터테인먼트용 기기라면 소비자 가격을 미친 듯이 올려가면서 이 정도의 해상도와 이 해상도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연산칩을 제공할 이유가 없었음. 비전프로는 업무용 기기라고 봐야 된다는 이야기임.


일단 이 영상을 보자.



https://youtu.be/uVEALvpoiMQ?si=mCqJ6oXlNzZ8aMFY



이건 메타가 2년 전에 만든 메타버스 기술을 이용해 미래에 무엇을 달성할 수 있을지를 모여주는 영상임. 여기서 뭘 확인할 수 있을까? 메타는 뭘 하고 싶은걸까?


이 영상은 노동의 미래를 그리고 있음. 메타버스 기술이 충분히 좋다면 원격 노동을 오프라인 대면 노동과의 격차를 거의 없는 수준으로 줄일 수 있고 원격 노동의 편안함과 대면 노동의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거임. 



HMD를 착용한 상태로 데스크톱 모니터에서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업무를 함


서로 HMD를 착용하고 있지만 서로가 마치 HMD를 착용하지 않은 것 같은 현실의 모습과 거의 똑같은 아바타를 상대방의 HMD에 출력할 수 있음. 그리고 이러한 아바타는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실제 공간 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배치 됨. 이러한 기술을 통해 대화하는 사람은 마치 대면 대화를 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책상 위에 있는 설계도와 같은) 가상의 객체를 함께 보는 것도 가능함.


그리고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두 사람의 대화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회의실 수준에서도 가능함. 그리고 이러한 가상 회의실은 굉장히 여러 유형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동시에 합쳐질 수 있음. 방금 봤던 실제와 거의 똑같은 아바타, 3D 애니프사, 줌 같은 2D 화상대화 같은 모든 대화 옵션이 존재하고 이 모든 것들이 한 회의실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 


즉 메타가 보기에 이 정도의 기능이 제공될 수 있으면 기업들이 원격근로를 선호하지 않는 마지막 허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거임.



애플은 비전프로로 어디 까지 해냈을까. 


1. 모니터 대체 - 해냄

2. 가상-실제 아바타 대화 - '페르소나' 기능으로 첫 문턱은 넘음

3. 다수 사용자를 위한 회의 환경 - 2번이 해결되면 기술적으로 가능해지겠지만 아마 매끄러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사용자 경험이나 인터페이스 설계 역시 쉬운 일은 아닐 듯.


이미 메타버스 희망편의 목표를 비전프로의 첫 제품이 상당한 수준으로 이뤄냈다는 말임.


저 사용 시나리오도 데모를 만든건 메타고 이러한 종류의 수요에 대한 인식이 이미 있었다는 소리임. 그럼 메타가 지금 당장 개발해야 할 것은 게임용 퀘스트 같은게 아니라 바로 그 비전프로라는 말이 되는거임. 근데 비전프로는 정작 애플이 만들었고. 메타가 항상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일 벌여놓는건 잘 해도 진짜 '제품'으로 다듬어 끝 마무리를 제대로 하는게 어설픈 병이 메타버스에서도 도진 거라고 봐야지 이건.


마소 홀로렌즈? 물론 이것도 좋은 제품이긴 한데 아직 본격적인 소비자 시장 진입 각을 보는 과감함은 없는게 좀 아쉬운 수준이고. 하지만 홀로렌즈는 마소도 이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임. 이 바닥에서 애플 혼자 갑자기 비전프로 같은 이상한 물건을 만들어 헛짓거리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선을 살짝만 돌려보면 이미 만들 만한 놈들은 이걸 목표로 죄다 숨어서 열심히 개발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임.


비전 프로의 시야각이 좁다? 머리를 급격하게 움직이면 어지러움이 유발된다? 당연히 이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비전프로는 저 미친 목표에 도전하는 업무용 제품이고 이 문제들은 업무용 제품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다른 급한 기능들에 비해 후순위로 다뤄질 수 밖에 없음. (물론 언젠가 이 것도 해결이 되겠지만)


아무튼 비전프로가 저 영상에서 말하는 기능을 모두 갖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비전프로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도 됨. 그래도 사람들은 비전프로를 살거임. 왜냐하면 그 때가 되면 비전프로의 경쟁자는 메타 퀘스트 같은게 아니라 강남 아파트가 될거니깐. 강남에 있는 기업에 출근하기 위해서 강남 아파트나 서울 역세권 아파트의 전세를 살거냐 아니면 집값 싼 동네에 살면서 비전프로 출근을 할거냐 둘 중 하나 택하라면 비전프로가 말도 안되게 싼 옵션이 되어버린다는 거임. 그리고 전 세계 부동산 시장엔 애플워치로 인해 스위스 시계 시장이 겪었던 바로 그 재앙이 일어날거임.




5. 구글 제미니는 아이폰의 메인 AI가 될까?

이건 가능성 거의 없음.


애플은 (암호화 되는 아이클라우드 이외에) OS의 기능을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담당하게 한다던가, 사용자 정보가 클라우드에서 처리되는게 필수가 되는 방식으로 서비스 설계를 하는 기업이 아님. 사용자의 모든 정보를 바닥까지 긁어가는 방식으로 작동할게 뻔한 클라우드AI를, 그것도 타사의 AI를 iOS의 메인 AI로 넣을 가능성을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됨.


아이폰 사용자는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아이폰 사용자 정보를 줘버리면 구글은 AI 사용료 수입 이외에도 애플의 영업비밀을 다 퍼갈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차라리 애플이 올 한해 인공지능 기능을 안 넣고 욕 쳐먹고 주가 좀 떨구고 말지 급하다고 메인 AI를 구글에 위탁하는 일은 아마 절대로 안 할거임. 특히 애플은 아이폰 초창기에 구글에다 시스템 기본 지도 앱 위탁 외주 줬다가 구글이 무슨 진상 짓을 했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봄.


제미니는 사파리 웹 브라우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웹 검색 어시스트로 제공되거나 앱 개발시 개발자가 손쉽게 집어넣을 수 있는 API로 제공되는 AI의 선택지 중 하나로 제공된다던가 하는 수준이 맞을거고 이런 수준으로 구글 AI가 적용된다면 웹 브라우저나 개별 어플리케이션이 작동하는 수준을 넘는 구글 AI의 시스템 제어는 불가능하다고 보면 될 것 같음.



6. 그럼 애플의 흥망은 뭘 보면 되나


6월의 WWDC에서 애플이 그간 뭘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들을 대부분 알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음.

 

홍보 이미지에서부터 벌써 Siri 업그레이드에 대한 떡밥을 잔뜩 뿌리고 있으니 아마 애플도 AI 관련으로 제대로 각 잡고 나올건 틀림 없음. 애플이 또 개 쩌는걸 들고 나올지 똥을 들고 나올지는 바로 그 날 판가름이 날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