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킷은 활보다 조준하고 맞추기가 편하다. 총알의 탄도가 수평이기에 곡선으로 날아가는 화살보다 조준이 쉽고,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탄을 날리기에 시위를 당기면서 조준까지 해야하는 활보다 더 안정적인 상태에서 조준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가늠쇠와 가늠자가 있는 머스킷은 말할 것도 없고, 없는 머스킷(18세기 유럽에서 제조된 대부분의 머스킷은 가늠자가 없었다)조차도 총열의 양끝을 일치시키는 조준선 정렬을 통해 표적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한 조준이 가능하다. 하지만 활은 탄도를 가늠할 수 있는 조준기나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요소 자체가 없어, 겨누는 것 자체가 사수가 감으로 각도를 설정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활은 '정확한 조준'이 힘들었다. 게다가 화살의 탄속이 50~60m/s수준에 불과하고 비거리가 길 수록 속도가 느려지는 점을 감안하면, 움직이는 사람은 맞추기 힘들었고 심지어 날라오는 것을 보고서 방패로 막거나 피하는 경우도 많았다.

활은 상기한 문제로 인해 저격용 무기로 부적합한 무기이다. 백년 전쟁 당시 영국군은 장궁수를 밀집시킨 다음 45도 곡사로 일제사격하여 특정 지점의 기사와 보병들을 광역 제압하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물론 잭 처칠이나 이성계같은 예외 또한 있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100m 내외에서 표적을 활로 맞추는 유튜버들 또한 있다.[8] 하지만 이런 명궁들은 소수이며, 활을 접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수십미터거리의 표적도 맞추기 어려운 표적이다. 실제로 조선은 임진왜란 전부터 숙련된 궁수의 부족으로 인한 육군 전투력의 공백으로 고민하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각궁에서 조총으로 주력무기를 변경한 이유도 숙련된 궁수는 얼마 없고, 미성숙한 궁수는 명중률이 조악해서 일인분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에 조총수는 어느 정도만 숙달이 되어도 꽤 괜찮은 명중률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머스킷 또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탄의 형상이 공기역학적이지 못해서 일정 사거리를 넘어가게 되면 탄도가 제멋대로였고, 강선 등의 탄도 안정기술도 없었기에 명중률이 현대 기준에서 보면 지독하게 나쁜 것은 사실이다. 사람 크기의 표적을 기준으로 하면, 머스킷이 확실한 명중을 기대할 수 있는 거리는 50m의 거리였다. 사람 크기의 표적을 맞출 수 있는 거리는 100야드(91미터) 정도였지만, 탄착 오차가 커서 100% 맞출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려웠다. 롱랜드 패턴 브라운 베스를 기준으로, 명중률은 30MOA정도였다. M4 카빈이 4MOA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 기준에서 봤을 때 매우 안좋다. 오스트리아에서 한 실험에 의하면, 16세기~18세기의 머스킷들은 100m 떨어진 사람크기 표적에 대해 평균 50퍼센트 내외의 명중률을 보여줬다. 즉, 머스킷을 어느 정도 쏠 줄 아는 병사들은 짧게는 50m에서 길게는 100m 정도의 거리에서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었다. 활로 이 정도 수준의 명중률을 기대하려면 적어도 몇 년 이상 수련해야 한다.

심지어 저격병이나 명사수의 경우 활강 머스킷으로 150m까지도 커버하는 경우도 있었다.[9] 머스킷은 장전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일부러 헐렁한 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쏠 수 있는 민간인 사냥꾼들은 가죽이나 천으로 된 와드로 꽉 들어맞는 탄을 장전했고 100야드 너머의 사냥감도 곧잘 노렸다.16세기 사격 클럽의 기록에 따르면, 133명의 사수가 약 180미터 거리에 있는 1미터 정도의 표적에 24발을 쐈는데 40명 이상의 사수가 20발 이상을 표적에 맞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활강 총신 머스킷으로 세운 기록으로, 총의 성능을 고려하면 이는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강선총은 너무 잘 맞는다는 이유로 사격 대회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한다.[10] 활강식 머스킷이 최대 퍼포먼스를 보여준 사례는 영국 내전 당시에 왕당파 소속의 병사 존 도잇이 의회파 군 지휘관 브룩 경을 300야드(270미터)에서 저격한 사례이다.[11]

전근대시대 궁수가 사람 크기의 표적을 맞출 수 있는 사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활은 사람의 실력을 많이 타기 때문에, 결과값이 너무 들쭉날쭉해서 신뢰성 있는 자료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군 역사전문가 Kennedy Hickman에 따르면 백년전쟁 당시 영국 장궁의 경우 75~80야드(67~72m) 이상의 표적에는 명중률을 장담하기 힘들다고 한다. [12] 추측하건데 조준기가 없는 전근대 활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활 잘 쏘는 명궁이 사람에 대해 실질적인 명중률을 보이는 사거리는 일반적으로 100m내외였고, 200m 밖의 사람을 맞추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13] [14] 애초에 그 당시에 사격 통제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감으로 각도와 장력을 어림잡고 쏘는 이상 100m 너머의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쏘기는 매우 힘들다고 생각되는 바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활이 머스킷에 비해 잘맞는 무기라고 하기는 힘들다. 몇몇 엄청난 명궁의 희귀한 케이스를 일반화시키기 어렵다. 머스킷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명중률이 과장된 형태로 널리 퍼져있고 반대로 활의 다루기 힘든 점이 잘 안 알려져 있기에 머스킷이 활보다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오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많이 퍼져 있다. 사실 활의 명중률 또한 고도의 난이도 및 곡사 탄도 때문에 실질적, 그리고 평균적인 퍼포먼스는 총보다 대단하지 않다. 다만 화살의 곡사 탄도가 머스킷 총탄의 직사탄도보다 안정적이기에 그러한 장점을 극대화한 소수의 명궁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한 소수의 명궁들은 10년 이상 연습한 베테랑들이었고,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10년 이상 총을 다룬 사냥꾼들도 명중률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인 면에서 보면, 머스킷이 활보다 명중률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수 능력치의 표준 편차를 고려하면 머스킷이 활보다 우수한 명중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5 6 1 7 8 

 

 

맞추면 10만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