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늘에서 온 자들이 러시아 중부에 착륙하여, 하인리히 힘러라는 자를 필두로 SS기계화기사단국을 세웠다.

완벽한 기계인자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신체의 일부분이 기계일 뿐이었다.

그들은 거의 동시대에 세워진 달토끼들과 협약을 맺고, 교류를 시작한다.


( ? 20인의 기사단은 무엇일까요? : 20인의 기사단은 하인리히 힘러를 도와 보좌했던 슈페어, 히틀러, 괴링, 되니츠, 괴벨스 등의 

SS기계화기사단의 주요인물 20인을 말합니다. SS의 역사에는 이들의 영향력이 크게 미쳐있으며 

그들의 영향력이 없는 사건 같아보여도 잘 파헤쳐보면 거의 이들이 영향력을 발휘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하인리히 집권 기사단 후반에는 실권자들이였고 히틀러가 집권하자 거의 대부분이 숙청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오직 4인 ( 슈페어, 괴벨스, 페르디난트 쇠르너, 발터 모델(? 모델은 정치적 성향이 거의 전무해 20인의 기사단에 

포함이 되지않고 오히려 아돌프 히틀러가 20인의 기사단에 더 적합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힘러를 거의 만나지도 않았고, 

일각에서는 아예 만나본적도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따라서 힘러 시절에 더 활약한 발터 모델이 20인의 기사단에 포함된다.)

만이 20인의 기사단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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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으니, 바로 게르만족의 땅으로 가 완벽한 게르만인의 나라를 건국하는것이었다.

좌표와 인공위성의 오류로 게르만 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독일 땅에는 이미 나라가 세워진것으로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않았다. 이 사실을 러시아에 정착하고나서 2년 후 알게된 기사단국은 베를린에 선두로 공수부대를 보내

위험을 확인하고 위험이 없자 황량한 러시아 땅을 버리고 ' 대이주 ' 를 하게 된다. 

( 대이주를 하고 있는 러시아 토착민들. 이 대이주에서 많은 러시아 토착민들도 독일 영토로 이주하였다. )

확인된 바로는 이 대이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야만인들의 습격을 받아 다쳤으며, 기사단국의 이후 국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래서, 기사단국은 대이주 이후 별다른 성장과 행보를 보이지않았으며, 

그저 근처의 땅을 먹는 것 뿐이었다. 


기사단국의 내정은 밖으로는 멀쩡해보였지만 실상은 부패했었다. 정치계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부상하고

해군에서는 되니츠가 공군에서는 괴링이 권력다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것인지 힘러는 

4월 23일 해군-공군 통합안을 허가하였고 4월 25일 부터 통합되기시작하였다. 하지만 되니츠와 괴링의 불만은 엄청났고

결국 되니츠가 보헤미아의 시민들의 위로 함선을 착륙시키고, 이가 내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보헤미아 봉기 뿐이 아닌 게르마니아의 무리한 증축, 함대 증강, 자잘한 전쟁 개입 등의 여러가지 사유가 있었다.


( 보헤미아 봉기는 쾨르츠 리히텐슈타인의 작 ' 보헤미아 시위 ' 참고 ) 


따라서 히틀러 VS 괴링 VS 되니츠 VS 힘러 구도가 되었고

( 게르마니아는 게르마니아 수도 사령부의 총권자인 발터모델이 나서 게르마니아 임시 보호구를 만들고 게르마니아를 

보호했다. )


병력수와 정치적기반이 탄탄한 히틀러가 결국 내전에서 승리하고 SS를 지배하게되었다. 



정부 부재기간


몇년 동안 SS의 정부가 부재상황이었고 유고슬라비아가 외스터라이히와 보헤미아, 동프로이센을 점령하였습니다.

이를 뒤 늦게 안 SS 정부는 유고슬라비아에 전쟁을 선포하고 외스터라이히 일부, 보헤미아, 동프로이센을 수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기념하겠다고 지반이 약한 게르마니아에 무리한 증축을 하고 다른 국가의 내전에도 개입하는등

이 시대는 국가의 외교가 망했었던 시대라고 평가되기도한다. 



라인강혁명

라인강에서 계속된 전쟁 개입과 세계적 혼란, 그리고 이민자들의 선동으로 인해 민주혁명군이 등장하였고

대서양으로 도망친줄만 알았던 되니츠가 다시 돌아와 시민군을 지원하였습니다. 

무력한 SS군은 계속해서 패전하고 패전했습니다. 따라서 혁명군이 결국 승리하였고

SS기계화기사단국에서 독일로 국명을 변경하고 민주 국가를 선포하였습니다.



이후 독일의 행보

첫번째로 치루어진 독일 대선에서 국가구국당의 되니츠가 40%대로 당선되었습니다. 

독일은 계속해서 학원도시와 대립관계를 맺었고, 

독일은 내부 경제 성장에만 집중하고 다른 국가의 일에 별로 간섭하지않았습니다.


하지만 학원도시와 대립관계를 맺는중에도 자르보호령과 주데텐란트 북부를 교환하는 등의 

협상을 하기도 했고, 학원도시는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만큼 경제영향력도 엄청난 국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