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브리튼에는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에는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대 기근을 표현한 작품 에미위 몽텔 작 ' 기근 ' )

1887년 스코틀랜드에서 대 기근이 일어났다. 가뭄으로 인해 스코틀랜드의 주 수입인 

구황작물들과 양은 잡아먹히거나 굶어죽었고 스코틀랜드의 왕인 에드워드 2세는 이 대 기근에 대처하지않고 

에든버러 궁전에서 타국에서 들여온 음식들로 연회를 벌였다. 

이에 큰 불만을 품고있던 몇 귀족들과 

시민들은 1889년 스코틀랜드 북부 산맥 딩월 맥주집에서 스코틀랜드 공화국을 선포하고 5일 만에 에든버러로 

진격하여 왕을 체포하고 프랑스의 기요틴 박사가 만든 기요틴으로 왕의 머리를 자른다.

이것에 충격을 받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왕국은 ' 브리튼 왕정 연합 ' 이라는 군사적 세력을 만들기에 이르고

에든버러, 글래스고등의 대도시에서 귀족들을 회유해 복고 쿠테타를 일으킬려하지만 공화국의 명장

윌리엄 캐넌스에게 제압당한다. 

누가봐도 이 복고 쿠테타들은 브리튼 왕정 연합이 조종한 것 이였지만 마땅한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가까운 뉴캐슬어폰타인에서 잉글랜드의 왕 나츠 1세와 복고 쿠테타 세력의 편지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잉글랜드에게 피해보상금과 국경지대 비무장화를 요청하지만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는 이를

거절하고 1891년 브리튼 전쟁이 일어난다. 

( 전쟁으로 인해 소집된 사관생도들. 1891년 5월. 피트 리먼스 ) 

전쟁 초반에는 아일랜드-잉글랜드 곳곳에서 일어난 민주주의자들과 지식인들로 인해 전황이 브리튼에게 불리해보였지만

스코틀랜드 공화국군은 사실 대 기근으로 인해 대부분이 비쩍 마른 상태거나 영양실조였고, 몇몇은 총도 못 들 정도로

힘이 약했다. 겨우겨우 공화국군이 준비가 되지않은 아일랜드 군을 우회해 멘체스터 근교까지왔지만

멘체스터에서 잉글랜드군과 아일랜드군이 스코틀랜드군을 역포위하고 섬멸시키는 전공을 거두었다.

결국 스코틀랜드는 애버딘에서 항복문서에 사인을 하였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게 병합되어진다. 

( 항복 문서에 사인하는 스코틀랜드 외무성 장관. 1892년 ) 

( 아일랜드 대기근을 나타낸 그림. 1894년 작. )


스코틀랜드에 이어서 아일랜드에서도 아일랜드인의 주식인 감자에 감자 마름병이 퍼져서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굶게되었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의 그 당시 왕 조지스 패리턴도 영양실조로 사망하게되고 ( 몇 몇 사람들은 아일랜드의

공화주의자들이 죽였다고도 하고 잉글랜드의 니츠 1세가 죽였다고도 한다. )

결국 마땅한 아일랜드 왕위의 승계자를 찾지 못 했던 아일랜드 섭정 귀족 의회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의 왕인

나츠 1세에게 왕위를 넘겨주게 된다. 

1900년 나츠 1세의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왕위 대관식이 있었다. 나츠 1세는 그자리에서 바로 

브리튼-코스모스 연방을 선포하고 스페인 남부와 모로코 북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