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의 영역이므로 오류 제보와 정보 공유는 환영. 맹신은 언제나 금물입니다.)

(스압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말투는 짧게 줄였으니 양해바람)





원작에 등장하는 요정과 마법의 숲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선, 요정은 동방 프로젝트에서 가장 흔한 잡몹이자 서양풍 인외고,

마법의 숲은 마력(서양에서 온 힘)이 가장 충만한 곳으로 칭할 수 있음.(홍마관 제외)

과격하게 말하자면 관계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음.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물음은 어떨까.

 

요정과 마법의 숲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오늘은 이 부분을 최대한 깊이 고찰하되 실존한 작가부터 소개하고자 함. 



이 사람.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라고 하는데, 두 이미지와 무언 관련이 있을까?


우선 예이츠는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계 작가이자 후기 낭만주의 시인임. (노벨상은 1923년 수상)

또한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와 함께 요정 설화가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유명했음.

근대 아일랜드의 민족 정체성을 켈트 설화에서 찾으려 시도했고,

그 시도 중의 하나가 1893년작 <켈트의 여명>.


마이너하지만 다행히도 P클래식 덕에 국내에 정발되어 있고, 이 책의 82쪽을 펴면...



여기서부턴 일종의 확신을 가지고 파고들 수 있음. 설령 ZUN이 요정과 마법의 숲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동안 다른 2,3차 소스를 참고했다고 해도, 예이츠가 직접 채록한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원전이 곧 여기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밑으로는 인용이 다수가 될테니 재빨리 결론부터 짚고 부연하겠음. 마법의 숲은 아일랜드 북부의 로시스와 드럼클리프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아마도). 환상향의 요정 또한 예이츠가 정립한 아일랜드의 요정 설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마법의 숲에서 요정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또 있다. 한 일꾼이 앞에 샨왈라라는 숲이 있는, 어떤 오래된 마을 출신 친구 하나가 그 숲에서 본 광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 p84에서 인용



사실, <켈트의 여명> 자체의 60%정도는 요정 이야기임.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난쟁이라던가,


"장담하는데 저 숲에 돌을 던지면 돌이 그대로 머물러 있을 거야."

이 말은 숲이 너무 엉겨 있어서 던진 돌멩이가 숲을 통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자갈처럼 단단해진 소똥을 집어서 숲을 향해 던졌고, 곧바로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들은 도망쳤고, 이백 미터쯤 달려와서 뒤를 돌아보니 흰옷을 입은 한 여인이 숲을 걸어서 빙빙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 p85에서



'흰옷을 입은 한 여인'은 틀림없이 요정으로 묘사됨.


마법의 숲에는 담비와 오소리, 여우가 살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강한 동물들이 살고 있고, 호수에는 그물이나 낚싯대로 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 p88에서


마법의 동물들에 관한 묘사도 대개 일치하고.


이 떠들썩한 무리는... (중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드럼클립이나 드로마헤어 같이 일반적으로 '요정이 자주 나오는' 지역 이외의 곳에서는 '요정들'이 무슨 장난을 치는지 보려고 나이트캡을 쓴 마법사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곤 한다.

- p95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파츄리는 나이트캡을 쓰고 다니니까 관련이 있을지도. 

하지만 이제 우리는 마녀와 숲과 요정이란 세 가지 이미지가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발견하게 됨. 전혀 달라 보였던 대상을 고찰하던 중에 뜻밖의 관련점을 또 찾았으니 청신호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 요정의 장난, 특히 '요정이 아이를 바꿔치기한다' 에서 온 체인질링이란 악질적인 장난을 주로 해결하거나 눈치채는 건 마법사였으니까.



이번에는 요정의 불사성에 관해서:


우리가 만약 요정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증오한다면 그들처럼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른다.

-p103



기독교에서 말하는 최후 심판의 날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곤 하지만 영생이나 다름 없음. 다음 단락에서는 '클루 너 바'에 관해 묘사하고 있는데, 요정의 지긋지긋해진 생명을 끝낼 수 있을만큼 깊은 물을 찾아헤맸다고 하고. 권말에는 에반스 웰츠란 인류학자의 요정 신앙에 관한 견해가 소개되어 있음.


1. 요정은 자연 현상의 화신이다.

2. 요정은 피그미 종족의 변형된 기억이다. (비판받음)

3. 드루이드 풍습의 영향. (요정 여인의 높은 비중과 남성 드루이드를 잇기 힘들다)

4. 초기 켈트교 신들의 축소된 존재들이다.


동방 원작에서는 1번 견해를 공식 설정으로 차용하고 있음. 

이터니티 라바의 '토코요노가미와 관련이 있을지도'라는 묘사를 보면 4번도 없진 않은듯.

<반지의 제왕>이 고전이 되면서 극히 최근에 갈라진 엘프나 현대 판타지의 묘사와 비교해보자면,



20세기 초까지 '요정'이란 이름 아래 공존하던 엘프와 페어리가 반지의 제왕 이후로 모티브의 선택에 따라 분화된 것을 알 수 있음. 키 큰 귀쟁이 -> 엘프, 나비 날개 난쟁이 -> 페어리 같은 식으로. 하지만 동방 프로젝트에서는 두 용어가 병행됨(홍마향 2스테이지 배경음악 = Lunate Elf, 요정대전쟁 3스테이지 보스 테마 = Fairy Wars). 동방의 요정은 외견상으로도 특징으로도 페어리와 가깝지만, 이 둘이 분화되기 전도 염두에 두었단 간접 증거.


(머리가 멍해진다면 미리 축하드립니다)


결론:

물론 요정 설화는 게르만족의 광범위한 활동 범위에 따라 넓게 펼쳐져 있음. 하지만, 중요한 단서로써 마법의 숲과 요정의 강한 상관관계를 봤을 때, 동방 프로젝트의 요정이란 인외와 그 배경은 아일랜드 민족설화에서 많은 것을 따왔다고 할 수 있음. 아, 그리고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는데... 만약 ZUN이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만 이를 인용했다면?


오히려 그쪽이 더 가능성이 높음. 결국 작품의 탄생까지 이르게 된 이미지라는 건 여러 군데에서 축적되기 마련이니까. 예이츠 본인도 결국 원작자가 아닌 채록을 진행한 사람이고 연구자이자 2차 창작자였고, 오히려 그 때문에 20세기 초반의 아일랜드 문예부흥과 마법의 숲에 사는 장난스런 요정의 이미지에 빛을 쬐어준 업적이 더욱 부각되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