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비가미의 서플리먼트 중에는 6대 유파별로

역사, 설정, 전용 인법 및 배경 등의 자료가 실려 있는 "유파북"이란 게 있음.


이 유파북 첫머리에는 각 유파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1페이지 분량의 단편소설이 있는데, 읽을거리로서 괜찮기에 번역.







◎산중귀살진

  강가에 쓰러진 괴물의 거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강물을 붉게 물들여간다.

  인간의 수 배 크기에 달하는, 귀면와를 닮은 얼굴이 원한 가득한 표정으로 하늘을 노려보고 있다. 잘 여문 무화과마냥 툭 튀어나온 배는 무수히 많은 칼자국에 덮인 채 피에 젖은 강모가 질척하게 달라붙어 있다. 강가의 돌을 사방으로 흐트러뜨린 채 가로세로로 뚫린 도랑은, 옹이가 많은 통나무처럼 굵고 거친 거미다리가 지면을 긁은 흔적이다. 괴물이 사투 끝에 내지른 처절한 단말마가 어질러진 강가 곳곳에 메아리를 남기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중에서 펼쳐진 사투에 소리를 죽이고 있던 새와 짐승들도, 결착이 났음을 느낀 것인지 다시 지저귀기 시작했다. 강이 흘러가는 소리조차 멈춘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더니 그림자 몇 개가 물가에 내려섰다. 피가 잔뜩 튄 장속과 손에 든 무기가 그들의 정체를 나타내고 있다. 시노비들이다.

「이 정도인가」

  한 명이 두건을 젖히며 말했다.


「오니의 무덤을 지키는 츠치구모의 우두머리. 어느 정도 실력인지 궁금했다만... 싱겁군」

「결국 조정에 패해 도망친 야만족의 후예일 뿐이오. 처음부터 우리들 내대신 측 시노비의 상대가 될 리 없지」


  비웃으며 말하는 두 번째 닌자를 힐끗 쏘아보며 세 명째가 말한다.

「그 야만족 따위에게 2명이 당했다고.」

「미숙한 자가 실수를 했을 뿐이오」


  말다툼이 시작될 것 같은 때 4명째가 말을 가로막았다.

「쓸데없는 말은 관두시오.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 말에 시노비들은 츠치구모의 거체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강물은 깊은 숲으로 둘러쌓인 동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는 거칠게 돌이 늘어서있는데, 그 표면에 파인 것은 문자인지 문양인지, 긴 세월 비바람에 마모되어 판독이 쉽지 않다.


「이것이 바로 오니의 무덤인가. 꽤나 오래된 물건이군」

「방심해선 안돼. 이런 류의 오래된 무덤에는 시노비를 죽이기 위한 함정이나 괴물이 있기 마련이니.」

「상관없다. 가로막는 것은 조복할 뿐」

(※역주: 조복, 부처의 힘으로 원수나 악마를 굴복시킴)


  호언장담한 시노비 한 명이 양주먹을 부딪힌다. 그 손에는 부적을 꼬아 만든 끈이 빈틈없이 둘러져 있다.

  다른 자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부터 동굴의 어둠에 겁먹을 만한 자는 없다. 각자의 무기를 고쳐들고 시노비들이 발을 내딛으려 한 그 때.


「──기다려. 누군가 있다」


  최후미의 시노비가 말했다. 손에 든 것은 놋쇠와 나무로 만들어진 기계장치. 정교하게 세공된 문자판 위의 붉게 칠해진 바늘이 움직이고 있다. 두건 아래, 면갑이라기보단 얼굴 전체를 덮는 가면에 가까운 물건을 뒤집어 쓴 시노비는 유리로 된 눈구멍 사이로 미심쩍은 듯이 눈을 가늘게 뜬다.


「똑바로 이쪽으로 오고 있어. 뭐지 이 놈은?」


  시노비들은 하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의 수면을 밟으며 한 사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머리 뒤로 전부 빗어넘겨 뒤통수에서 묶은 은발이 기모노의 어깨 너머로 흘러내리고 있다. 손에는 흰 바탕에 푸른색 유약이 선명히 칠해진 술병을 들고 있다. 동아줄로 묶은 커다란 병이 4개나 달려 있다.

  사내는 시노비들의 간격 바깥에서 멈추었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구려. 술잔을 나누러 멀리서 옛 친구를 찾아왔더니 선객이 있을 줄이야」

「친구라는 것은 이 츠치구모 말이냐」

「그러하오. 저기 뻗어있는 놈을 말하는 것이지」

「그럼 네놈도 오니인가」

「그리 되겠구먼」


  어느샌가 시노비들은 새로운 적을 에워싸듯 진형을 갖추었다. 누구 할 것 없이 남부럽잖은 숙련자들뿐. 이제 만에 하나라도 놓칠 일은 없다.


「오니라면 오니답게 숨어있었으면 좋았을 것을.(※역주: 시노비가미 세계관의 오니는 숨을 은 자를 사용해 표기한다) 태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 실책이다. 친구와 술잔을 나누는 건 지옥에서나 해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노비들의 공격이 쇄도했다. 사내의 신체는 눈 깜짝할 사이에 횟감마냥 조각나고 말았다.

  하지만, 필살의 협공을 맞으면서도 오니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대는 히라사카구먼. 네놈은 쿠라마의 연화왕권. 호오, 오니사냥꾼 카나도메라니 보기 드문 녀석도 다 있어. 그 쪽 묘한 차림을 한 놈은 환독당이라 했던가?」

「무슨── 어떻게 그런 것까지」

「나는 뭐든지 알고 있다네」


  태연히 웃던 오니의 모습이 슬쩍 희미해지며 사라진다. 4개의 술병만이 자리에 남아 강물을 맞고 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이름을 대지. 나는 이즈나의 겐조── 환술사라네. 덤으로 말하자면 그쪽 츠치구모는 아직 죽지 않았고, 이 술병은 잘 보게나. 그대들의 머리요.」


  경악하며 뒤돌아본 시노비들은 상처 하나 없는 츠치구모가 히죽히죽 웃고 있는 모습을 올려다보는 꼴이 되었다. 놀라움의 비명은 울리지 않았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가 환각이었던 것인지, 4인 모두 목이 잘려 나동그라져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