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까.
구구단을 4학년때까지도 못해 조리돌림 받았던 내 학창시절?
그도 아니면 사교육을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전교 꼴등을 달성한 어린 시절?
그도 아니라면, 군대에서 동기가 자살하는 것을 봐야했던 때부터여야 할까.

아니다. 그래도 그나마 행복할때부터 시작해야지.
4수에서 극적으로 좋은 점수를 맞는것에 성공한 나는, 아슬아슬하게 인서울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여러 진상들도 마주하고 많이 구르게 되었다.

그렇게 한 일주일이 지났을까.
나는 내 몸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시도때도없이 코피가 터지고, 강의실에서 그냥 쓰러져버렸을때도.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말도 그냥 넘어가버렸다.

그 결과가.

“읏차.”

호화로운 방 안이 보인다.
샹들리에는 하늘에 걸려서 반짝였다.
조명에서 나온 빛은 유리에서 쪼개졌고, 이내 찬란한 색을 띠며 바닥을 비춰냈다.

“….”

방 옆쪽에 걸린 거대한 거울.
성인 남성 두명이 누우면 딱 맞지 않을까 싶은 가로에, 높이도 소녀의 키는 훌쩍 넘는다.

그곳에 비친 풍경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마치 그림의 한폭같이 곱게 입술을 다문 금발의 소녀, 그리고 주위에 있는 고풍스러운 옷가지들.
만약에 한구석에 쳐박혀있는 컴퓨터만 아니었으면 누구라도 1600년대 풍경이라고 믿었을거다.

“Привет, с добрым утром(안녕하신가요, 좋은 아침이네요.)”

고운 미성이 아침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그렇게 치마를 들어올리고 휘날렸다.
음, 마음에 들긴 한데.

“…나라는 감각이 안 드네.”

태어나고 몇년을 살아도 ‘소녀’라는 개념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익숙은커녕, 그냥 자연스럽기만 해도 좋았다.
가끔 가다가 남성스러운 버릇이 나오는게 여간 불편해야지.

“…그나저나, 공부 안 시키는 부모라니. 뭐랄까. 이건 좀.”

솔직히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놀게만 하는게 글러먹어질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시킨다고 해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고. 밤 새면 기겁을 하니까.
그냥 잘 먹고 잘 자라고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라는게 다였다.

‘혹시 옛날 사람들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더라도, 가정의 균형은 꽤나 수평적이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지만, 구태여 직장을 구하길 원하진 않았다.
내가 전생자였으니까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썅년을 키워내지 않았을까.

“좋은 아침.”

밖에 나오자 고용인이 보였다.
이렇게 보자면, 마치 로판의 여주인공스러운 삶을 살고있는것도 같았다.
하지만 알아야 하는것이, 나는 사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밖에 창문을 열기만 해도 빌딩숲이 있었고.

그냥, 우리 부모님들이 특이한거다.
음음, 맞아맞아.

“아가씨, 목욕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친절하네. 고마워.”

내가 미소짓자 고용인이 황급히 물러갔다.
흠, 내가 무슨 잘못을 한건가?
그냥 웃은거밖에 없는데.

그렇게 거품을 보면서 멍을 때리다가, 그대로 머리카락에 샴푸를 묻히고 씻어냈다.
몇년이 지나도 중독적인 촉감의 머리카락이었다.

밖으로 나오면, 식당으로 가는 길은 이미 익혀놓은 상태였다.
나는 걸어가서 부모님을 만났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잘 잤어?”

엄마가 물어봤다.

“네. 오늘은 숙면을 취했네요. 엄마가 사주신 이불이 마음에 들어요.”

“…어쩜 말을 이리 곱게 할까.”

굳이 기분나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아빠한테도 미소지어보였지만, 아빠는 묵묵히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눈알을 굴리다가, 그냥 밥을 먹기로 했다.

음, 되게. 음. 맛있긴 하네.
그렇게 식사를 마치자, 엄마는 여전히 곱게 미소짓고 있었다.

“학교는 생각이 있니? 친구를 사귀면은 분명 너한테….”

“싫은데용.”

나는 태생이 아싸였다.
가족이 아닌 대상한테 친근하게 말을 걸수가 없다.

“…그, 그렇구나.”

엄마는 아쉬워보였다.
기본적으로 내게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인연을 맺으라고 말했던 사람이니 당연하겠지.
안타깝게도 나는 게임이 아닌 다른 취미가 없었다.
보통 높은집 사람들 하면 취미가 악기인가, 음. 뭐. 그런것 아닌가.
그런 고상한 취미는 나와 맞지 않아서 말이다.

“마리아나.”

“네?”

“혹시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내가 아는 러시아 프로게이머가 있는데 관심이 있니?”

“프로게이머라면….”

“하우스 오브 마운틴 아니냐.”

굳이 친절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미소를 가득 지어서 화답했다.

“고마워요!”

“…그래. 우리 딸이 기뻐하니 나도 좋다.”

무뚝뚝하다니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

*

*

오전에 식사가 끝나면, 카페에 가서 잠시 티타임(커피이긴 하지만)을 즐긴다.
그렇게 잠시의 휴식 이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시작한다.
어린아이가 됐으니까 즐겨도 되는거 아니냐고 하지만 성실은 반복으로 생긴다.
어릴때부터 버릇을 들이면, 커서도 버릇이 되니까.

더해서, 도서관에 갈때마다 매일 쿠키를 주는것도 덤이고.
쿠키는 좋으니까, 가서 먹어도 괜찮다.

그러다가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밖에 나가서 찬 공기를 들이마시다가 다시 들어와서 시작한다.
그렇게 반복하길 몇시간.
갑자기 어떤 여자애가 두리번거리더니, 내 앞자리에 앉았다.

“너, 역사 좋아해?”

그렇게 물은 소녀가 반짝반짝거리며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관심없어.”

“여, 역사를 그럼 안 좋아해?”

“너도 관심없어.”

안타깝게도 공감 능력은 나에게 없는 것중 하나였다.
어린애가 울음을 터트릴것 같이 바라봤지만, 존중할 필요는 못 느꼈다.

“재, 재밌을거야…. 역사….”

“역사가 재밌다고?”

한국에서 배우던 세계사와 역사가 러시아로 바뀐 노릇인데.
꼴에 한건 많다고 머리가 아팠다.
음. 그러니까, 스탈린 개자식.

“상관없으니까 가줄래?”

“미안….”

그렇게 주눅든채 돌아가던 여자애가 보이자, 그래도 약간 호기심이 들었다.

“내 이름은 마리아나인데.”

“…응?”

“네 이름은 뭐야?”

그렇게 묻자, 순식간에 반색하며 대답했다.

“올가!”

“그래, 나중에 보자.”

“응! 잘가!”

그렇게 손을 흔든 올가를 뒤로하고.
내가 집으로 향했다.

*

*

*

집에 오면은 할것이 굉장히 많다.
하우스 오브 마운틴도 해야하고, 교양 수업도 진행해야 한다.
참고로 교양 수업도 내가 신청한 것이었다.

그렇게 교수님의 설명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으로 흘리며 필기를 한다면, 그때서야 3시간의 자유가 주어진다.
어린애가 3시간밖에 못 논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에서도 놀랄만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실 6,7시간 노는것이 부모 등골을 뽑아먹는 짓이라는건 부모만이 알았다.

잠시동안 전원버튼을 꾹 누르자, 한국어로 된 로딩화면이 보였다.
러시아어만을 봐오던 내가 한국어를 잊지 않는 수단이었다.
그렇게 방송 플랫폼에 접속하게 되면, 엄선된 스트리머들의 방송화면이 나한테 보였다.
네트워크도 빵빵했고, 시간은 많았다.

나는 싱글벙글, 투컴 중 하나를 방송으로 돌리고 나머지에 하우스 오브 마운틴을 켰다.
엄마랑 아빠는 모르는 취미였다.

[마리화나:]

브론즈였던 스트리머를 저격하려고 준비했던 첫 계정, 즉 본계였지만.
브론즈였던 스트리머가 1푼에 달하는 수준이라 눈물을 흘리며 접어야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배치고사, 어엿한 다딱이가 될 준비가 완료되었다.

참고로 마리화나는 본명인 마리아나에서 ‘조금’ 변경한 단어였다.
이상한 생각이 들면 그것은 분명 그 사람의 탓이니, 마구니가 꼈다 치고.

가끔씩 가다가 시청자 중에 시참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순히 중계인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는 그 중에서 채집만함이라는 스트리머를 좋아했다.

그냥, 사람 자체가 잘 화를 내고 귀여웠다.
남자를 귀엽다고 하기는 뭐하지만 여자이니 별 상관이 있을까.
애초에, 화내는게 도를 넘어서면 측은지심도 드는것이 인간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시참 방송 진행할게요. 방제는 라이트닌, 비밀번호는….>

“일, 이, 구, 팔, 삼, 칠.”

<일이구팔삼칠이요.>

이미 지난 비밀번호를 조합해서 공식은 만들어냈다.
현재 나는 다음 방송과 다다음 방송의 비밀번호마저 알고 있었다.
틀렸다 쳐도, 반사신경으로 들어가면 되고.

<아니 미친, 또 마리화나야?>

-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한국에는 알다시피 욕이 많다.
아주 다채로운 씹소리가, 음. 저건 좀.
아무튼 나는 가녀린 8세 소녀니까, 엉엉 울면서 받아들이기로 할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우스 오브 마운틴 멀티에 들어갔다.
국가들은 총 114개, 그 중에서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은 고작 6개였다.
나머지 24개는 약국으로 분류되었고.
그에도 들어가지 못한 나라들은 전적으로 최약국이라고 불렸다.

<또, 또 리벨 제2제국 하네. 지치지도 않아요?>

-검게 검게 물들었네
-ㅋㅋㅋ 검은 셔츠냐고 미친 ㅋㅋㅋ
-산악 개꿀이죠? 아무도 못 잡죠?

다시 한번 한국에는 욕이 많다는것은 여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나, 마리아나는 강한 소녀다.
이런 허접하기 그지없는 음해들에는 결코 지지 않는다.

[마리화나: 솔직히 리벨 버프 좀]

<버프는 지랄, 제가 왜 버프해줘요. 그럴거면 강대국 하라고! 님 존나 잘하잖아!>

시작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기에 푸딩 한웅큼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달달하고 폭신한것이 1등급이었다.

“따봉.”

생각해보니까 웃기긴 하네.

일본산 푸딩을 먹으면서, 미국산 게임의, 한국인들이 들어오는 시참을 하는 러시아계 금발 소녀라니.

“누가 말하면 소설이냐고 묻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