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닌함주이






짧았던 아침 실험이 끝난 뒤에는 아침 식사 시간이 찾아온다.


각종 비품들이 재적되어 있는 창고와 초라한 테이블 몇 개가 놓인 1층이, 바로 우리가 식사를 해야 하는 장소였고 말이다.


식사가 맛이 없는 건 둘째치더라도, 창고에서 날리는 먼지들을 오롯이 다 뒤집어써야 하는 것은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 어느 실험체는, 1층에 갈 때마다 재채기가 나온다고, 차라리 밥을 먹지 않겠다면서 단식을 시작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단식은 이틀을 넘기지 못한 채, 감독관과의 평화적인 협상- 그러니까 몽둥이질을 통해서 원만하게 해결되었지만 말이다.


각을 뗀 자세로 밥을 입에 욱여넣으며, '너무 맛있어요!!!' 를 외치는 그 실험체의 눈물 어린 광소가 아직도 눈에 선했다.



...잘 지내려나 모르겠네.


살아는 있으려나.


...

...

...


잠시 뒤, 1층에 모인 실험체들은 전원 20명 정도 되었다.

전부 내 또래의, 정확히는 전생한 이 몸의 또래로 보이는 10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분명 이곳에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처음엔 30명은 족히 되었던 것 같은데, 그 중 10명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모르겠다.

...뭐, 실험의 강도를 보면 언제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는 항상 밥을 혼자 먹었다.

다른 실험체들에게 질투를 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죽지 않는 몸.

나도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였지만, 다른 실험체들은 그것과 더불어 죽음의 공포 또한 견뎌내야만 했다.


그뿐인가.


영구적인 신체의 결손과 장애를 품고 살아가는 실험체들도 상당수였다.

반면 나는 죽을 걱정도 없고 어디가 썩거나 잘려도 금방 새로 자라나니, 상대적으로 질투가 동할 수밖에.

“...”

“...내려가.”

내가 테이블에 앉으려 하자, 다른 실험체들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나를 증오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동경하는 것 같았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아에서 비롯된, 막연하고 순수한 질투의 눈빛.

“...알겠어.”

그 눈빛은, 사람을 죄스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나 또한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꼬리를 내리게 되는 그런 힘이.

“...”

나는 말없이 식판을 들고 바닥에 앉았다.

엉덩이가 차가웠다. 그래도 견딜 만 했다.

이러고 앉아 있으면, 어느정도 데워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식판을 내려다보았다.



밥 두 주걱과, 동그랗게 생긴 빵 한 조각.


나는 말없이 수저를 집어 밥을 한 숟갈 입에 떠 넣었다.

차가웠다. 맛도 더럽게 없었다. 꾹 참고 몇 번 씹자 쉰 맛이 지뢰처럼 터져나왔다.

...먹으라고 준 건가. 이걸.

테이블 위를 쳐다보니 다른 아이들의 반응도 비슷한 것 같았다.

하나같이 무표정하게 배를 채운다는 느낌으로 입에 밥을 쑤셔넣고 있었다.

“...”

하긴 뭐. 여기가 호텔도 아니고. 배를 채울 밥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생각하며, 나는 숟가락을 다시 집었다.

그때.

꽈악-.

“…?"


누군가 걸어와 내 머리채를 위에서 잡았다.

“야, 시엘. 누가 편하게 밥 처먹으래?”

그리고 발길질이 날아왔다.

퍼억-!

딱딱한 신발 밑창이 가슴팍에 날아와 꽃혔고, 들고 있던 식판은 저만치 날아갔다.


테데뎅, 하고 식판이 요란하게 몸부림치며 엎어졌다.

“...윽.”

걷어차인 갈비뼈가 얼얼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서너명 남짓한 아이들의 무리가 날 둘러싸고 있었다.

내 머리채를 붙잡고 식판을 걷어찬 녀석은, 가장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긴 남자아이였고 말이다.

그의 짧은 금색 머리털은 잔디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뭘 꼬라봐. 또 처맞고싶지?”

“...게롬.”

게롬과 그의 친구들은 틈만 나면 나를 괴롭히려 들곤 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괴롭힘 또한 나의 불사에 대한 질투심에서 기인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들의 괴롭힘이 귀결하는 곳은 조금 달랐다.


“퉷.”

“...”

게롬이 뱉은 가래침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불쾌한 느낌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고개를 숙이자, 놈은 이죽거리며 머리채를 잡은 손을 억세게 잡아당겼다.

“야, 방금 피했냐?”

“미안-”

하지만 내가 그에게 사과를 건넬 새도 없이,

짜악-!

손찌검이 날아왔다.



“...”

뺨이 얼얼했다.

부어오른 것 같은 느낌이 후틋하게 들었다. 

“하, 정신 못 차리겠지?”

뺨을 맞은 내 고개가 거의 꺾이다시피 하며 돌아가자, 게롬의 아이들은 마구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

그래. 이것이 바로 이들과 다른 아이들의 차이점이었다.

나에 대한 질투로 시작된 괴롭힘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게롬과 그 무리들은 그 일련의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미성숙한 아이 특유의 무차별적인 정복욕. 

그리고 실험으로 쌓인 스트레스.

추가로, 막연한 가학심까지.

이들은 그것을 전부 나를 통해 해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 야.”

게롬은 발끝으로 바닥에 떨어진 식판을 툭툭 건드렸다.

그리곤 그것을 내 앞으로 끌고 오더니, 걷어차서 엎었다.

쉰밥이 난잡하게 바닥에 튀었다.

게롬은 그것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핥아먹어. 병신아.”

“...하아.”

이들의 행동 원리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생리적인 욕구에 충실할 뿐이니까 말이다. 

당장 오늘내일하는 실험체 입장에서, 이런 과격한 방식으로 불안을 해소하는 것도 이들 나름의 살아가는 방법일 터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더 이상은 나라고 해도 어울려주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육체적인 고통이 낫다면 나았지, 이런 종류의 굴욕감은 아무리 나란들 견디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못 해.”

나는 게롬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꼿꼿하게 치켜든 고개. 떨림 없는 목소리. 나름 강단 있는 말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뭐?”

게롬은 미간을 구겼다. 짙은 의아함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지금 자신이 들은 것을 찬찬히 곱씹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퍼억!

내 머리를 붙잡은 채로 바닥에 내리꽃았다.

“흑-!?”

대리석 바닥과 얼굴이 부딫히자, 코뼈가 으스러지는 것만 같은 고통에 눈이 번쩍 뜨여졌다.

아픔이라면 익숙한 나조차도 눈물이 찔끔 새어나올 정도였다.

“...못 먹겠다고?”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 뒤통수를 신발로 밟으며 이야기했다. 꽈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신발 밑창이 비틀어지며 내 머리를 짓이기는 게 느껴졌다.

“그럼 내가 먹여줄게. 어때?”

“...크윽.”

나는 고개를 들어올리려 했지만 뒤통수를 묵직하게 누르는 게롬의 다리는 억셌다.

아니. 애초에 이 여린 육체로 저 근육덩이를 힘으로 떨쳐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두 팔을 들어올려, 뒤통수에 올려진 놈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그것을 밀어냈다. 

“...학, 하아-.”

“뭐 하냐?”

하지만 힘을 주면 줄수록, 오히려 놈의 심기를 건들기만 한 것인지 더 강한 억눌림이 돌아올 뿐이었다.

“야, 생각해보니까 너 어차피 뒤지지도 않지?”

게롬이 그렇게 말하며 히죽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그럼 이래도 안 죽나 볼까?”

그리고 잠시 머리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더니,

“...?”

으직-!

무언가 처참하게 뭉개어지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땅에 내리꽃혔다.

“카학-?”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게롬이 내 머리채를 붙잡고 들어올릴 적에 깨달았다.

나는 머리를 붙잡은 게롬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나름의 자비를 구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하지, 말-”

“하지 말긴 뭘 하지 마. 어차피 안 죽는다며?”

놈은 봐 줄 생각이 없었다.

퍽.

그대로 다시 한 번, 내 머리는 내리꽃혔다.

온 얼굴의 뼈를 타고 짜르르, 진동이 흘러들었다.

내 몸은 생각보다도 훨씬 연약했다. 마치 으깨지는 두부 같았다. 벌써 온 얼굴이 부숴진 것처럼 아팠다.

쾅.

쾅.

한 번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얼굴이 짓이겨지고, 망가진다.

광대가 무너지고 안면이 부숴진 뼛조각으로 울퉁불퉁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바닥에 내리꽃히기도 어느덧 수 번째.

나는 그 짓을 당하는 와중에도 두 팔을 휘저으며 나름의 반항을 해 보았지만, 

그것마저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도중에 깨달았다. 

나는 결국 두 팔을 허공에 가냘프게 치켜든 채, 얼굴이 처박힐 때마다 감전된 동물처럼 그것을 움찔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양쪽 시신경이 전부 짓눌러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코는 직각으로 휘어져서 한 쪽 구멍으로밖에 숨을 쉴 수 없게 되었을 때 즈음.

“으흐하하하!! 야, 얘 얼굴 봐!!”

게롬이 내 머리를 붙잡고 들어올리는 느낌과 함께, 사방에서 터뜨려지는 악의 넘치는 웃음이 들려왔다.

주욱- 하고, 바닥과 얼굴 사이에 끈적한 피가 질기게 늘어졌다.

“그안…해주셰혀…”

나는 입을 겨우 열어서 그들에게 간청했다.

입 안에서 부서진 이빨 파편이 굴러다니는 감촉이 느껴졌다.

아팠다.

더럽게 아팠다.

뼈가 휘어지고 조각난 부분들이, 피부 뒤에서 잘그락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감각적인 사람이었다.

그나마 고된 실험으로 인해 아픔에 어느정도 익숙해졌기에 망정이지, 원래는 작은 고통에도 아파하는 게 나였다. 

그런 나의 예민한 촉수는 이럴 때 가장 쓸모가 없었고 말이다.

차라리 연구원들은 깔끔하게 목이라도 떼어내 줬는데. 차라리 그런 식으로 깔끔하게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얼굴이 얼마나 처참하게 뭉개져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아마 20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이곳을 쳐다보며 나를 비웃고 있을 게 뻔하지.

어쩌면,

 엘라도.

나를 그렇게 잘 챙겨주는 척 했지만, 사실은 이쪽을 보며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말 그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나는 알 수 없었고 말이다.

모두가 보고 있어.

모두가.

나를.

이렇게 잔인하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죽어가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니.

무언가 미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의도적이고.

짜르르, 한 게.

...그래.

아픈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항상 그러하듯,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까 말이다.

“...야. 야.”

게롬의 옆에서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뭇 진지한 그녀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사그러들었다.

그녀는 다소 두려워하는 듯, 하지만 동시에 경멸 섞인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얘 웃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