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현대 #일상 #피폐 #드라마 #노맨스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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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 Chapter 2. 죽어버린 채 살아가기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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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해."

"그 있잖아, 이런 모습까지 너답다고 하면 상처받나?"

"알면서 왜 굳이 입으로 꺼내는 걸까……."

난 아무데나 내팽겨쳐진 오징어마냥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다. 갑자기 우울해져선 이러는 거 사실 종종 있는 일이라, 좀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의진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고 있었다.

그래도 힘 없는 건 진짜라고? 악몽 꾼 것부터 알바에 의진이 갑자기 만난 것까지 아주 그냥 사흘을 연속으로 사건사고들이 팡팡 터져대는데 어떻게 안 힘들 수가 있겠냐.

침대가 그립구나. 의진이 쌩까고 침대로 돌격해버릴까.

"아, 그러고 보니 안 물어본 것 같은데, 노을이 너 TS 증후군 걸린 거 얼마나 됐어?"

"으응?"

완전히 축 늘어져 있으니까 머리도 안 돌아가는 것 같았다. 갑자기 화제가 전환될 줄 몰랐기에 몇 초 정도 멍만 때리다가 겨우 답했다.

"……오늘이 3일째네. 어."

"대답 늦어!"

좀 태클이 걸려오는 것 같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정말로 여자가 된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나도 잘 모르니까, 그냥 앞으로는 내가 일어난 시점에 여자가 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처음 의식이 돌아왔을 때만 해도 난 내가 여전히 남자인 줄 알았다고.

아니, 보통의 상황이라면 여전히 남자인 게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당연했어야 했는데.

이것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울해지는구만.

어쨌든.

"그래도 음, 오늘이 3일째면 진짜로 얼마 안 됐네?"

"너한테 내가 왜 연락을 안 했겠냐…. 난 진짜로 하려고 했다고. 네가 오늘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그래도 이렇게 바뀐 모습 봤으니까 좋은 거 아닐까? 좋게 해결됐잖아?"

"……나도 너처럼 긍정적일 수 있으면 참 좋겠네. 하아."

누구는 피곤해 뒤지겠건만.

의진이는 그런 애다. 성격이 밝다 못해 가끔씩 태양처럼 빛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애. 그냥 외향적이다라는 표현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에 나랑은 상성이 진짜 정반대다.

오히려 그런 성격이라서 나한테 계속 다가오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말이 있던데.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의 마음에 들었을 때 입양되는 거라고……. 내가 펫은 아니지만, 어째 적절한 말 같네.

"아, 그러고 보니까 너 오늘은 혼자 왔네? 저번에도 친구들 끌고 오더니."

난 고개를 돌려 의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의진이가 인싸라는 소리는, 카페에 올 때 종종 친구들도 끌고 올 때가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괜히 단골이 아니라니까? 최근에는 방학이라서 그런지 잘 안 왔지만 학기 중에는 어느 정도 매출을 책임져주는 역할이라고. 며칠에 한 번씩은 꼭 오고, 그 중에서도 9할 정도는 친구 몇 명도 데리고 온다. 물론 그렇게 왔을 때는 내가 불편해할까봐 나 아는 척은 되도록 안 하지만.

아무튼, 얘는 혼자 오는 게 오히려 드문 케이스라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오히려 이 상황에선 단둘이 만난 게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 껴 있었으면 더 귀찮아졌을지도 모른다.

"방학이잖아. 애들 요즘 학원 간다고 바쁘더라고."

의진이의 대답이었다.

"저번에 너네 왔을 때도 방학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피씨방 가려고 주말에 모였던 거고. 오늘 월요일이라서 애들 다 시간 안 맞을걸?"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네가 다른 애들 시간 맞춰줄 수 있지 않냐? 너 학원 없잖아?"

"학원만 문제가 아니라 학원 숙제도 문제지 걔네들은."

"아."

솔직히 초등학교 때 이후로 학원은 다녀본 적 없으니까 잘 모르긴 한데.

고등학생의 학원 숙제라. 그거 생각보다 양 뒤지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다른 게 아니라 고3이면 당장 수능 준비해야 하는 때기도 하고. 시간이 없을 만 하네.

그와는 정반대로 의진이는 학원을 안 다닌다.

"근데 너는 좀 공부 좀 하는 게 좋을 텐데? 네가 나처럼 자퇴를 한 것도 아니고."

"노잼! 개노잼!"

"그 소리 나올 줄 알았다."

정확히는 공부를 안 하니까 학원을 다닐 이유도 없는 거지만.

내 주변에 은근 공부랑 담 쌓은 사람 많다. 민재도 그렇고 은찬이도 그렇고. 다들 머리가 나쁜 편이라곤 생각 안 드는데 말이지.

"아니, 나는 애초에 대학 때문에 공부하는 걸 이해를 못하겠다니까? 필요한 것만 배우고 싶다고 난."

"그거야 넌 대학이 목표가 아니라서 그런 거고. 래퍼 지망생이잖아 너."

"이미 곡을 낸 시점에서 지망생은 아니지 않나 싶은데."

"사클에만 올렸잖아."

"그런가?"

대신 얘는 랩을 한다.

작년 초쯤인가, 얘가 갑자기 음악 파일 하나 던져놓고서는 이거 음악 어떠냐고 물어왔던 적이 있었다. 진짜 뜬금없긴 했지만 아무튼 들어보긴 했는데, 랩이었다. 처음 듣는 노래였고 내가 랩을 잘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당장 듣기에는 나쁘진 않아서 그냥 뭐 괜찮네 하는 식으로 답장을 보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이 자식의 자작곡이었고, 그날부로 의진이의 음악 인생이 시작되었더랬지. 물론 그 전부터 음악을 만지긴 했겠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솔직히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은 놈 치고 랩은 전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본인이 좋다는데 뭐 어쩔 수 있나.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다. 남의 꿈 보고 뭐라 하는 짓도 웃기는 일이고.

"아니, 그래도 나 쇼미에도 나갔었다고! 2차까지 갔으면 래퍼 맞지!"

작년에는 그 뭐냐, 힙합 TV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까지 나갔단 말이지. 심지어 1차를 붙고 왔댄다. 어떻게 한 거냐?

"통편집 됐잖아."

"리액션 정도는 나왔어!"

"그걸 우리는 통편집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의진아."

"너무해라. 힝."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냐?"

"아잉."

"어우 씨발."

좆같네. 나는 헛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키 180 넘는 남자새끼가 애교 이지랄 하면 진짜 진심으로 못 봐주겠다. 징그러워!

근데 사실 키가 중요한 건 아냐. 은찬이가 애교를 떤다? 그건 그거 나름대로 역겨울 것 같거든?

설은찬 키가 165cm였던가. 1년 전쯤에 마지막으로 알려준 키가 대충 그 정도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내가 이래 봬도 남자였다는 사실을 제발, 좀, 알아주도록, 해줄래? 으응?"

나는 의진이를 노려봤다. 여전히 저 과거형을 써야 하는 게 썩 기분이 좋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딱히 네가 여자라서 이러는 건 아니라는 거 알잖아?"

"알면 좀 이 새끼야!"

"힣."

"쪼개냐?!"

그래도 의진이의 저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남자였을 때라고 뭐 다르진 않았으니까. 하지 말라는데도 애교 떨고, 순딩이마냥 텐션 높아져가지고 방방 날뛰고. 다른 사람한테까지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앞에선 거의 항상 이래왔다.

"아아, 재밌다. 그래도 뭐, 네가 여자든 남자든 간에 솔직히 상관 없는 건 맞아."

"어? 뭐?"

"넌 너잖아. 그거면 됐지 뭘."

그리고.

웃으면서 뱉은 아무런 생각 없는 듯한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왜 갑자기 정곡을 찔러."

"정곡이라니. 난 있는 그대로를 말한 거야."

"……."

텐션이 높고, 순딩이 같고.

그 말이 결코 얘가 생각이 얕다는 의미가 되진 않는다. 가끔씩 이렇게 내 약한 부분을 찔러오는 걸 보면, 얘도 얘 나름대로 생각이 깊은 사람이란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단지 좀 평소 행실 때문에 가려질 뿐이지.

내가 왜 얘랑 친해지게 됐는지는 잘 몰라도.

계속 친하게 지내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나 여친 있잖아? 어차피 우리 사이 달라질 거 하나도 없다?"

"……아. 얌마."

의진이의 헛소리 때문에 내 감상이 전부 깨져버렸다. 망할. 이게 대체 뭔 개소리야 씨발.

"진짜, 진짜 존나 죽여버리고 싶은데. 내가 남자 좋아했을 것 같냐 이 미친놈아? 모솔한테 기만질이야?!"

"어, 어우. 진짜 무서운데."

"……이런 썅. 내 팔자야……."

그러고 보니 작년부터 사귀고 있는 여친이 있다 했었나. 저번에도 말해준 적이 있었지.

나는?

없었지.

없고.

없을 거야.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앞으로도.

"……우울해."

"또?"

"너 때문이잖아!"

난 다시 오징어가 되어서 축 늘어졌다.

좆같네.

아, 이제 좆 없…….

…….





*****





"그, 아까 못 물어본 건데."

"……뭔데."

의진이는 한껏 축 늘어져버린 날 보고서 물었다.

"저기 쇼핑백들은 다 뭐야?"

"아."

저 구석에 있는 옷들 말하는 거구만.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진짜로 정리할 때가 되긴 했나 봐.

"은설 선배한테 끌려다닌 결과물."

"은설 선배? 그러면 어제 갔다 온 거야?"

"그저께."

"그저께? 그러면 너 여자 되자마자 끌려다닌 거야?"

"어. 뒤지게 힘들었다고."

"그 선배…… 와. 그 정도로 빡센 사람이었어?"

의진이가 약간 기가 질려버린 눈치가 되었다. 아니, 그래도 그거 반쯤은 내가 부탁해서 그랬던 건데.

그러고 보니 의진이랑 은설 선배도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듯했다. 다른 건 아니고 나 때문에 의진이 쪽에서 선배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었는데. 내가 의진이보단 은설 선배 쪽이랑 더 먼저 일찍 친해졌으니까 말이다.

지금 와선 딱히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그래서, 옷은 왜 저기에 놔둔 거야?"

"안 그래도 오늘 제대로 정리해두려고 했어. 정신 없어서 그냥 팽개치고 있었던 거여."

"오? 그럼 나 있을 때 한 번 입어봐! 내가 봐줄 테니까."

"내가 미쳤냐? 그걸 왜 너한테 보여줘야 하는데?"

"힝."

"또 힝 이러네 이 자식이. 이미 선배의 검토가 들어간 옷들이라 봐줄 필요 없어."

"아, 그럼 뭐."

정말로 순수한 의도로 봐주고 싶어서 그랬던 건지, 의진이는 순순히 물러났다. 너도 내가 안 차려입고 다니는 게 내심 걸렸던 거냐?

……얘 가고 나면 진짜로 옷 좀 입어보고 정리하고 해야겠다. 어째 이 생각만 오늘 수십 번을 한 것 같지만 어쩔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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