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기꾼이었다.


그것도 한 국가를 대상으로 한.


언제부터 사기꾼이었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철이 들때부터는 이미 사기꾼이었다.


첫째로 속인 것은 내 본성을 깨닫지 못한 날 입양해주신 부모님이었으며.


두번째로 속인 것은 학교에서 만난 친구였다.


계속해서 피해자가 늘었지만, 전부 자기 자신이 당했다는 걸 모른채 시간만이 지나갔고.


이루고 싶은 꿈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나는 군대에 들어가 내 능력을 입증받았다.


내 능력을 살려 적국에게 사기를 치는 것.


그것이 내 주된 업무가 되었다.


처음엔 기관의 말단 직원이었지만, 차츰차츰 단계별로 쌓고 올라가 이번엔 최고위직을 속여야하는 임무를 국가에선 내게 쥐어주었다.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했고, 실패하여 붙잡힌다면 국가에서는 나에 대해서는 시치미 뗄게 분명하기에.


실패한다면 죽음만이 기다리는 일.


그것을 얼굴이 팔려버린 내 모습으로 행하게 된다면 가뜩이나 낮은 성공확률이 0에 수렴할 것이기에, 난 모습을, 성별마저 바꾸는 영구적인 주술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


임무는 별로 진척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직 내 정체를 들키지는 않았다.


비서로 잠입하여 3년. 이 국가의 고위직인 여성은 비서로 위장한 내게 경계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목욕 중에도 나를 곁에 두거나, 아예 나와 같이 목욕하려할 정도로.


유약한 인상에, 실제로도 병약한 몸이었기에 주변에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겠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하필이면 그 대상이 나일줄이야.


조용히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여성, 아리아의 조그마한 등을 잠시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대여."


"무슨 일이신가요?"


아리아는 여전히 나를 등진 채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이 달빛을 반사하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수면에 떨어졌다.


"그대는, 이 국가의 사람이 아니지?"


"..."


아리아는 담담하게 내게 물어왔다.


어째서인지 그 기저에는 지독한 우울함이 깔린 것 같은 목소리로.


"예.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저는 변방의 한 소국에서ㅡ"


"그게 아닐세."


"그렇다면...?"


촤악.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주변의 물이 확 휩쓸려나갔다.


여전히 남아있는 물들이 그녀의 새하얀 나신의 굴곡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 나라의 사람'이 맞는지 묻고 있는 거네."


"그게 무슨...?"


겉으론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는 바지 벨트에 숨겨둔 조그마한 칼날로 손을 향했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은 분명히, 내 정체를 알아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었기에.


"...아니, 아니. 이제 와선 그런 것도 의미가 없겠지."


아리아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자 물에 젖지 않게 틀어올려 놓았던 머리카락이 풀려, 수면위로 수놓아졌다.


"자네가 이 국가의 사람이든, 아니면 타국의, 나아가 적국의 사람이어도 상관이 없네. 어차피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


그녀는 참담한 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왕권 다툼에서 밀려나, 겨우 목숨은 부지했지만 한직으로 내쳐졌고. 나같이 병약한 여성을 안으려하는 남성도, 나를 보좌해주려하는 비서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네. 결국, 자네 뿐이었어."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미모에 맞게 참으로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여전히 창백하고 병약한 인상은 지울 수가 없었다.


곧 덧없이 질 가을에 핀 꽃 같은 인상이었다.


"자네가 이 국가를 속이려한 건 이미 잘 알고 있네. 눈치를 보는 건 이미 질리도록 해봐서 말이야."


그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내 뺨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차가운 피부의 촉감에 약간이지만 몸을 움찔거렸다.


"나에겐 이제. 내편이라고는 나를 속이고 있는 자네의 위장밖에 없네. 그러니 제안이네."


아리아는 자신의 빈약한 가슴에 새하얀 손을 올리며 내게 물어왔다.


"만일, 그대가 나를 원한다면. 원한다고 말해준다면ㅡ"


그녀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지어졌다.


건드리면 부서질 살얼음처럼 불안한 미소가.


"나는 그대에게 무엇이든 내어주겠네."


나는 아리아에게 어떻게 대답해야했을까.


"네. 저는 당신을 원합니다."


"그래. 그렇겠지."


한 번 이미 속여온 것. 두 번은 쉬울 것이다.


타인도 아니고 나 자신을 속이는 일 따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난 국가를 위해. 내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그녀가 바란 나의 위장으로, 나를 꽁꽁 감싸맸다.


내 대답을 듣고 아리아가 지은 미소는 역시나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체념한 듯한, 몹시도 구슬픈 느낌이 들어서.


어째서인지 가슴 한 편이 너무나도 시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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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하나 써와봤어!!!!!!! 감상 남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