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예비역··· 이요?”


“그래, 너희는 내 팀이··· 지역보스를 사냥할 때 대기하는 예비역이야. 뭐, 구경만 하면 돼.”


이것이 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배려이다.


싸움을 원한다면 예비역이란 단어로 역할을 주고 그걸 싫어한다고 해도 안심을 준다. 이 애매한 구속으로 인해 ‘너희는 그 자리에 없었어’ 라는 목소리를 원천 차단한다.


물론, 만능은 아니다.


“저희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듣자니 아무래도 원래부터 혈기가 넘치는 녀석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 파티는 남자 8명, 여자 1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숫자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틀렸다.


“너희들, 전부 만렙이였지?”


“네, 그러니까···.”


“그럼 의장을 제외한 장비가 남아있어? 촉매조차 스스로 제작해야 하는 판국에? 우린 지금 일반 상점에서 살 법한 장비로 레이드를 뛰고 있는 실정이야. 다치면 피를 흘리고 상처는 HP의 숫자를 채우는 것처럼 간단히 낫지 않아. 치명상이면 더더욱 그렇고, 불구 더 나아가서는 죽을 수 있어. 그리고 알잖아, 대부분의 RPG 게임이 으레 그렇듯이 만렙부터 본격적인 게임이란 걸.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린 초보자가 점핑 캐릭터를 운영하는 꼴이잖아. 검술의 달인도, 마법의 대가도 아니라, 게임을 하던 ‘그냥’ 인간이었어.”


“···.”


정론에 반박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너무 펙트로 후두러 팼는지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기죽어 보였다.


“그래도 너희는 운이 좋아. 아직 평화로운 땅에서 그럭저럭 실전경험을 쌓았고 기술을 익힐 시간이 있잖아. 다음은 얼마든지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제일 앞으로 나왔던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뒤 그 장소를 떠났다.


“애새끼 취급하고···!”


그러나 세상 만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법.


도현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리더, 김보훈은 자신들을 아이 취급한 빙과에게 반항심을 품었다. 


“자기도 게임하는 인간이었던 주제에···.”


“조금만 있으면 우리도 20살이잖아?”


“맞아, 이미 독립할 나이도 다가왔다고!”


그리고 어른에게 반기를 드는 짜릿함과 자유를 향한 갈망이 어우러지며 파티의 분위기는 점점 더 가열되어갔다.


“저기··· 형들? 우리 천천히.”


“안 할 거라면 됐어, 우리끼리라도 할 거야. 애초에 이런 약해빠진 필드에 보스가 강할 리가 없잖아!”


그 와중에 김유성이 의견을 내보았지만 금세 묻혀버렸다. 오히려 이대로 가다가는 파티에서 추방당할 위기까지 생겼다.


‘어쩌지?’


재앙으로 인해 협소해진 인간관계가 되었다. 반 친구들은 변해버린 자신과 진작에 거리를 두었고 그것은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 파티가 아니면 사회에서 고립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올라왔다.


홀로, 세상을 살아가고 싸운다.


그것이 무서웠기에.


“나도 갈게.”


김유성은 선택을 했다.



***


“절 포함해서, 3명.”

이해가 된다. 원래 전력분배란 최소한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았다. 마침 예비역까지 있으니 최악의 경우라도 화력이 부족할 일도 없다.

「그래, 성직자 그리고 힘 좋은 광전사. 자네 무기와 같은 재료인 텅스텐 은 합금으로 만든 전투망치를 주력으로 다루지.」

국방부장관은 회의 때와는 다르게 반말을 썼다. 하긴, 나이도 지위도 저쪽이 높았기에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고 이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광전사 쪽은 알기 쉽네요. 그보다 성직자 쪽은···?”

「회복보다는 버프쪽에 능숙한 인간이지. 아무래도 회복보다는 이쪽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좋은 선택이네요.”

장관에게 적당히 칭찬해준다. 실제로 나쁘지 않은 선택에 이렇게 얼굴도장을 찍고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럼, 나머지 정보는 팩스로 보내도록 하고, 혹시 별도로 묻고 싶은 게 있나?」

성공이다. 장관이 호의적으로 나왔으니 적어도 먼저 묻는 형식이 아니게 되었다. 이 관계에서 장관의 입장에서도 나에게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 될 것이다.

“···작전과는 별개지만, 화속성 지역보스가 나타났을 때 호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로 달려가죠.”

「아아, 듬직하군.」

그 후 장관이 약간의 푸념과 잡담을 마친 후 통화가 마무리 되었다.

적어도 군대에서 내가 화속성 요괴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렸으니 이 대화는 이득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통화가 끝났다고 내 오늘치 일과가 끝은 아니다.

내 기를 먹인 검은 부적지에 푸른 촉매를 먹인 물감을 묻힌 붓으로 한자를 새겨 넣는다.

촉매라고 해봤자 내 기를 먹인 꽃을 곱게 갈아서 먹물에 첨가하는 것이 전부다. 그게, 전부이며 시작이다.

쓸만한 것이 없나 찾아보다 식물, 특히 꽃이나 광물에 기가 스며든 것을 발견했고 이것을 간신히 활용할 방법을 찾은 것이 일주일 째였다.

그 전까지는 거의 맨주먹으로 덤벼드는 원시인과 다름없었다.

“서예 좀 배워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렁이가 될 뻔했어.”

그런 점에서 요즘 서예가들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본인이 직접 제작하는 것이 품질이 제일 좋지만 형식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에 서예가들은 ‘대필가’로써 부적을 작성한다.

물론, 강력하지 않은 양산품에 그치지만 말이다. 별개로 공예사들은 웨스트 서버의 아티팩트 비스름한 것을 만들고 있었다.

“대충 이 정도면 넉넉하겠지.”

나는 책상에 수북하게 쌓인 부적과 촉매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고둥에게 쓸 것과 제주도민에게 나눠줄 것. 그리고 여러 돌발상황에 대비하는 것까지.

아마 대부분은 그 터줏대감에 쓸 것이다.

웨스트의 말로는 지역보스.
이스트의 말로는 터줏대감.

좀 강한 요괴에게 괴력난신이란 말로 통일하긴 했지만 이게 정확한 것이다. 괴력난신이란 단독으로 나라를 박살내는 그런 요괴에게 붙이는 것이니까.

나는 부적 한 장을 들고 침대에서 고이 자고 있는 도화에게 그것을 쥐어 주었다.

“좋은 꿈 꿔, 우리 딸.”


***


“장보라 입니다. 웨스트, 성직자고. 힐은 부족하지만 보조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고감찬이라고 합니다. 똑같이 웨스트, 직업은 광전사. 원래도 현장일 하는 사람이라 망치질 하나에는 자신 있습니다.”

“하도현 입니다. 이스트, 법사입니다만··· 검도를 배운 적이 있어서 그럭저럭 한 몸 건사하게 챙길 줄은 압니다.”

자기소개가 끝났다.

나는 내 앞에 두 명을 보았다. 성직자라는 직업에 어울리게 차분한 인상의 남자와 역시 광전사라는 직업에 맞게 탄탄한 몸이 인상적이다.

“그럼, 작전 자체는 간단합니다.” 

하나, 촉매를 함유한 지뢰를 백록담 기준 지하 800M까지 넣어 격발.  
둘, 상승한 고둥과 교전.
셋, 하도현이 고둥의 껍질의 일부를 침식시키고 그 부분에 버프를 받은 고감찬이 부순다.

그 이후부터는 일반적인 교전이 일어난다.

“간단하네요, 하지만 궁금한 게 두 개 있습니다.”

장보라가 손을 들며 말했다. 작전에 관한 피드백이라면 환영이다.

“말씀하시죠.”

“하나, 그 폭탄 말인데 고둥이 올라온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예상한 바이다. 고둥이 위가 아닌 아래로 숨으면 훨씬 더 곤란하다.

“폭탄과 함께 제가 투입합니다. 폭탄도 터뜨리고 제가 아래에서 놈을 공격할 겁니다.”

“···용암 내부에? 직접?”

“네, 직접. 애초에 그놈을 관측한 것도 용암 내부였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폭탄에 함유된 촉매의 반응을 지근거리까지 숨기고 빠르게 가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제어력이 좋은만큼, 감지력도 좋을 것이다.

장보라는 살짝, 아니 많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날 보았다. 하긴, 인간의 몸으로 용암 내부에 잠수하겠다는, 심지어 몰래 하겠다는 놈이 앞에 있으니 이해는 한다.

“이야, 어려운 일을 쉽게 만드는구만. 혹시 무리를 하는 건 아닙니까?”

“그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고감찬이 날··· 작전을 걱정했지만 그건 문제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럼 두번째, 예비역이 있다고 했는데 어디 있죠?”

장보라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전투가 일어나기에 각성자 이외에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원래 인원은 12명.

그러나 예비역들이 오지 않아 지금 인원은 우리 셋이다. 더 정확히는 상공에서 헬기를 띄운 채 관측과 분석을 하고 있는 정부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예외다.

“그 뭐냐, 그 녀석들은 몸만큼 어린애라고 했던가?”

“실제로 10대니 맞는 말이에요. 어차피 이름만 올리는 거라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무서워서 오지 않았을까?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보수만 문제없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동감!”

두 사람 모두 동의했다. 도화는 지금 공무원들과 같이 있을 테니 안심이다.

“그럼, 오전 12시 04시를 기준으로,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


“더 빨리 파야 해. 12시에 시작한다고 했잖아.”

“허억, 허억! 잠깐, 교대 좀.”

“···힐 줄게.”

성직자인 김보훈의 손에서 치유의 빛이 내려지자 열심히 땅을 파는 친구들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들은 체력은 되찾았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법으로 하면 안 될까? 그, 땅속성 마법 있으면 빠르잖아.”

“안 돼. 힐링이 체력은 회복해도 마나는 못 그러는 거 알잖아. 그리고 우리 전투도 해야 하잖아.”

김보훈은 스스로 말하고도 조금의 죄책감을 느꼈다. 몇 시간 전부터 땅을 팠다. 그 결과는 흡사 드릴 이용해 땅굴을 판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게 들어왔다. 심지어 그것조차 나오는 흙을 주위로 흡수시켜 마나를 최대한 절약하는 방향으로 갔다.

“그냥 어른들이 놈을 꺼낸 다음 가로채면 안 돼?”

“안 돼. 쪽수랑 화력으로는 우세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

김보훈은 자신들끼리 했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또한 정의롭다는 사실에 또 집중했다.

이번 기회에, 귀찮은 것들을 청소하는 꼬맹이들이 아닌 제대로 된 영웅이 되는 것이다.

쿵!

그리고 그때, 땅 깊숙한 곳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진?’

순간 김보훈의 머릿속에는 그런 사정이 떠올랐지만.

쿵, 쿠쿠궁! 크르르릉!

뭔가, 진동이 강해지는 것만이 아닌, 점점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