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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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십쇼. 아가씨."



모든 엔딩이 거지 발싸개 같은 전범년이긴해도, 아직까진 전직 원수의 금지옥엽인 아가씨였다.


트렁크 하나 끌고 각성자 사관학교를 나오자마자 날 반기는건, 크고 멋진 벤츠 세단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운전기사가 직접 문을 열어주며 에스코트까지 하니, 무슨 반응을 해야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어 그래."


"네?...."


"출발 안하고 뭐해?"


"추..출발하겠습니다!"



다만 루이즈 이 쌍년이 평소에 뭘 어떻게 했으면, 그냥 덤덤하게 차에 올라타는것만으로도 운전기사가 놀라워하는걸까?

뒷자석에 가만히 앉아있는것만으로도 벌벌 떨고 있으니, 신경에 거슬린다.


루이즈 이 년이 달고 사는 두통 때문에 모든게 짜증나는데, 기사라는 놈이 내 눈치를 자꾸 보고있으니 너무 거슬려. 아오 골통이야......



"이대로 저택으로 가는거야?"


"옙. 주인님께서 바로 아가씨를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이번만큼은 중간에 어디 못들리니, 부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쩝....알겠어."


"크흑! 감사합니다!"



젠장, 그 노인네 길길이 날뛰겠네.


창밖에 보이는 평화로운 포츠담의 시내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시작부터 보스몹을 상대해야하는걸까?



물론 마켄젠 원수는 게임내에 실장된 몹이 아니지만, 독일군 원수면 보스몹 맞다.



하다못해 히로인이 되었으면 좀 낫잖아. 걔는 최소한 나치 승리 루트와 소련 승리 루트만 아니면 능욕 루트는 거의 없이 순애 루트만 있다고.


아니 나치 승리루트라도 걔는 숨만 쉬고 있어도 평생 잘먹고 잘살아.



아무리 소련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가 각성자들을 남녀 가리지 않고 징병해간다 해도, 어느 꼴통들이 황녀를 전쟁터에 밀어겠냐고. 그건 로비에스 피에르도 미쳤냐고 욕할거다.


근데 히틀러는 미친놈이 맞아서,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안되므로, 어쩌면 히로인이 되지 않은게 다행이라 할수 있다.



만약 내가 히로인이 된다면, 지금과 같이 온 세상의 억까란 억까는 다 당해서, 전쟁터 끌려간다거나, 위버멘쉬 디스펜서, 나치 고관 좆집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넘쳐난다. 심지어 게임 스토리처럼 주인공이랑 이어질지도 몰라.


NTR도 불가능한 거근 일· 독 혼혈은 생리적으로 무리.



모든게 허접한 빌런이 된 것도 개같이 꼬였는데, 모든 루트에 H씬이 존재하는 히로인이 된다 한들 개같이 꼬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그러니 이미 주인공과 히로인들한테 개꼴통으로 낙인 찍혔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남은 시기에 빙의한게 다행이라 할수 있다.



지금 히로인이랑 주인공은 한창 사관학교에서 구르면서 반란 준비 하느라 바쁠텐데, 나는 사고 치고 퇴학 당해서 할 거 없자나.


와 꿈만 같은 돈 많은 백수 생활.



"근데 아버지 화 많이 나셨어?"


"옙. 이번엔 각오하라십니다."


"샤이셰...."



하필이면 내 돈은 전부 아버지...정확히는 루이즈의 아버지인 마켄젠 원수의 통장에 묶여있다.


물론 곧 90이라 좀 빡세게 존버하면, 그 돈의 일부가 유산으로 내게도 올것 같긴하다만, 지금이 1936년이다. 게임 시나리오대로라면 3년뒤에 2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그리고 난 친위대가 되어, 전쟁터로 끌려간다.



으어어어엉. 내가 SS급 유대 볼셰비키 헌터라니. 볼셰비키는 몰라도, 죄없는 유대인을 어떻게 학살하라는거야.


무엇보다, 난 아침엔 베이글 먹어야 한다고.

내 베이글 돌려줘요!


프레첼은 짜고, 딱딱해서 싫어!



-꼬르륵.



아 배고프다.

루이즈 이 년한테 돌아갈 뇌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당떨어져서 머리가 안돌아가.



"혹시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거 있어?"


"젤리가 있긴한데, 싸구려라, 아가씨 입맛에 맞진 않으실텐데요?"


"그런건 내가 판단하니. 일단 내놔."


"그럼 여기...."



두통 때문인지, 아니면 푸른피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으르렁거리며 운전기사한테서 작은 젤리 한봉지를 뜯어내는데 성공했다.

이게 무슨 젤리인가 살핀 나는, 익숙한 브랜드와 모양에 입고리가 올라갔다.


와 곰돌이 젤리.



곰 같은 덩치의 운전기사가 이런걸 들고 다닌다는게 이상하긴해도, 일단은 당분이 들어오니 살것 같았다.


애초에 누가 야겜 스토리나 세계관에 몰입하겠냐만은, 한가지 의문이 있다.



대부분이 징병대상인 각성자가 사고쳤다 한들 어떻게 퇴학이 되는걸까?


여긴 사관학교 말고 다른 각성자 관련 기관이 더 있는건가? 혹은 굳이 각성자 사관학교를 진학해야 되는건 아니라는건가?



애초에 이 빌어먹을 똥겜에서 각성자는 그냥 인간의 형태를 한 전차 정도로만 나와서, 세계관내에서는 대우를 받는지는 자세하게 안나온다. 그나마 나오는 각성자의 종류는 사관학교 출신의 각성자와, 징집된 각성자뿐.


그나마 등장하는 징집된 각성자도 들러리일뿐, 그들에 대한 설명은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그나마 나오는건 집구성에서 맥주 빨다가 전쟁 터져서 '구트거니우스'한테 잡혀온 한스라는것.



이건 별것 아니겠지만, 상당히 중요하다.


징집된 각성자가 존재한다는건, 각성자여도 무조건 각성자로서 군복무를 해야하는건 아니라는건가?



자유민주주의가 보편적인 21세기라면, 별 생각 없이 넘어가도 되지만, 여긴 미쳐돌아가는 20세기, 그것도 독일인도 인권이 없는 나치 독일이다. 사실상 이세계의 개판 왕국 정도로 봐야한다.


현재 나치가 소수자인 각성자를 상대로 온갖 미친짓을 벌이고 있으니, 사소한것조차 제대로 알아내야 한다.


보다 많은 각성자를 얻기 위해 여성 각성자들을 끌고가서 각성자 공장도 따로 만들 정도인데, 무슨 미친 짓을 못할까. (레벤스보른은 그 옆집이다.)




"공장 가는건 죽어도 싫은데...."


"에이 아무리 주인님께서 화나셨다해도, 의절하진 않으시죠."


"그거 다행이긴한데 누가 말걸래? 나 기분 안좋으니 젤리나 있는거 다 내놔."


"........네."



곰돌이 젤리를 봉지채로 입에 털어넣고 으적으적 씹으며, 나는 이 게임의 기본설정부터 되짚어가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부터 고민했다.



애초에 이 세상에서 각성자는 유전적인 형질이 아니다.


각성자의 자식도 부모따라 각성자일 확률이 높긴하다지만, 각성자의 사돈의 팔촌의 옆집 사는 소꿉친구의 엄마가 감자 썰다가 바퀴벌레 보고 각성하는게 이 세상이다

마수나 몬스터조차 없이, 각성자만 대충 험난한 세상에 던져놓은게 다다.


물론 몬스터가 있다면, 영국놈들이 촉수앤칩스 같은걸 요리하고, 프랑스가 감도 3000배 촉수를 만들테니, 몬스터가 없다는건 인류의 크나큰 축복이다



아무튼 현재 나는 할 수 있는게 많이 없다.


각성자인 내 신분으로 출국을 하려면, 독일 당국의 엄중한 심사를 받아야 가능하거니와, 무엇보다 집안이 돈많은거지, 루이즈 이 쌍년이 다 탕진해서 가진 돈은 거의 없다.


유산이 있긴해도, 유전자적 아버지인 마켄젠 원수는 10년 정도 더 살다 죽는다. 유산 받으려면, 2차대전 끝까지 살아남아야하고, 독일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이건 정말 하드 난이도다.



최대한 많은 돈을 훔쳐서, 가짜 신분을 사서 미국가면 독일보다는 편히 살순 있지만, 그리 매력적이진 않았다. 그짓을 했다간 난 귀족 아가씨가 아니게 된다.


고작 운전기사 딸린 고급 벤츠 세단에 한번 탔을뿐이지만, 돈많은 귀족 맛을 보고나니, 이건 정말 포기 못하겠다. 왜 볼셰비키들이 공산귀족 노멘클라투라로 진화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다.



'돈많고 아름다운 귀족가의 금지옥엽.'



이게 얼마나 귀한건데.


아무리 나치가 좆같아도, 이걸 날려버리겠다는건, 좀 많이 아까웠다. 어떻게든 21세기로 돌아간다한들, 귀족 아가씨에 비해 딱히 메리트도 없으니, 그다지 돌아가고 싶진 않다.



여자 된건, 그 대가로 치면, 되.

그다지 우람하지 않은 물건을 대가로, 프리티한 영앤리치 됐다 치지. 뭐.



하지만, 어떻게든 집에 붙어있으면서, 안락한 생활을 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일단 독일의 융커 자체가 소멸하는 독일 패배 계열의 루트들은 전부 불가능.


그렇다면 남은 루트는 딱 2개 가지.



'나치 독일 승리 루트.'


'독일 4제국 루트.'



다만 루이즈 이 년은 나치 독일이 승리한 루트에서도, 엔딩이 레벤스보른인 시궁창이니, 남은건 히로인 황녀와 주인공이 반란을 일으켜 내전에서 승리한 독일 4제국 엔딩뿐이다.


게임 스토리 초창기부터 빡세게 준비들어가고, 독일의 절반과 한줌의 반군으로 독일의 정예 친위대와 이탈리아를 동시에 상대하고, 그 이후에 폴란드와 프랑스, 소련 순으로 싸워야하는 극악의 난이도지만, 어차피 내가 싸우는건 아니잖아?


주인공과 히로인들이 빡세게 구르고 있을때, 나는 중간중간에 좋은거 던져주며 숨만 쉬고 있어도, 난이도는 내가 산 코인과 주식처럼 떡락한다.


가능하다못해, 너무 쉬워서 웃음만이 난다.


어라 어째서 눈물이?



"키키킷. 다행이다."



마침, 이 년이 되기 전까지, 커뮤니티에서 자랑글 올리려고 게임속 이스터 에그나 레어 아이템들을 엄청 찾아대던중이라 히로인들고 주인공들한테 던져줄 것들이 넘쳐난다. 거기다 아직 큰 잘못을 저지른 시점이 아니어서, 얼마든지 세탁 가능하다.



고개숙여 사과?


얼마든지 해주지.


어차피 히로인이 카이제린이 되고, 주인공이 국서가 되면, 하기 싫어도 고개 박아야해.



국방군에서는 나가리 됐으니, 다시 군대로 끌려가 친위대에 들어가도, 딱 좋은 시기에 좋은거 들고 전향하면, 해피해피한 라이프로 바꾸는건 가능하다.


아니, 그냥 얌전히 친위대에서 반군들을 썰어도, 독일 제 4제국 루트중 이벤트인, '나는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을 사랑해!만 피하면 된다.


아 너무 쉬워.



"키키키킷! 키시시싯!"


"아...아가씨?"


"키시시싯!"


"지금.....도착했습니다."



쉽다못해 easy한 상황에 나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한창 젤리를 씹어대며 실실 웃는 동안, 차는 포츠담 외곽의 거대한 저택에 도착했다. 이 집에 유전자적 아버지인 마켄젠 원수가 있다.


다만 웃어선 안되는 상황이기에, 미소부터 지웠다.



"어서오십쇼 아가씨. 지금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친위대에 끌려가도, 살아남을 방법이 생기니, 자신감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무려 치하 전차의 전투력이나 가졌으니, 정도면 충분해! 이정도면 혼자 이스터에그나 히든 아이템 찾아다니기 충분해!


자 아버지여. 당신을 내게 어떤 벌을 내릴거요?


친위대? 수용소 간수? 아인자츠그루펜? 게슈타포? 상식적으로 아버지가 딸한테, 레벤스보른 가라 할리 없으니, 무슨 억까가 나타나도 다 받아칠 자신이 있다.


친위대 수송소 간수가 되도, 사진찍어서 반란군한테 프로파간다로 쓰라고 챙겨주면 되!





"하아....네년은 그냥 다 때려치고, 시집이나 가거라. 좋은 혼처를 찾아주마."


"어...."



이건 예상 못했는데?




※※


빙의 전과 후의 차이


빙의전 루이즈: 극성나치에 귀족주의를 가졌으면서, 외모에 비해 지성과 능력 그리고 인성이 딸림 (나치 전범)


빙의후 루이즈: 정상인의 지성을 가져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사랑하지만, 외모에 비해 인성이 딸림 (인터넷 분탕)




주인공 외모는 그냥 블아 마코토랑 닮았다고 생각하면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