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상 단?편


생각바구니로 하려다가 길어져서 창작으로 올림


장편이 될 가능성도 있긴 한데 일단은 단편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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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오늘도 전부 사주려고 하면 죽여버릴 거야. 오늘은 내가 사게 해 줘라 좀."


"돈은 벌고 그 소리 하는 거 맞지?"


"그래서 명륜 왔잖아 개새끼야! 내가 부릴 수 있는 최대의 사치라고 이거!"


"그렇다 쳐."


"그렇다 치긴 뭘 그렇다 치는 건데 이 씨이발..."


내 인생에 마지막으로 남은 친구놈을 끌고 온 곳이라는 데가 명륜진사갈비였다.


친구 끌고 고기 먹으러 가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지만 사실 마음만 같아서는 더 좋은 곳을 데려가고 싶었다. 이 자식한테는 너무 얻어먹은 게 많은데 갚을 기회가 좀체 오질 않았다. 내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이 약속 시간보다 고작 1분 늦었다는 이유로, 그냥 자기가 사고 싶다는 이유 등등으로 정신을 차려 보면 항상 계산이 먼저 되어 있었다. 선수를 치고 싶었는데 진짜 내 타이밍 잡는 능력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사실 이렇게 내가 한 번 사는 것조차 나는 손 벌벌 떨면서 계산해야 되는 게 맞긴 했다. 맞는 말이라서 더 짜증나는 거다. 작년에 수능 한 번 더 봐본답시고 알바니 뭐니 전부 손 놓아버린 탓에 내 수중에 남아있는 돈이라곤 작년 초까지 벌어놓은 알바비를 아끼고 아끼고 아끼고 진짜 진짜 존나 아껴서 쓰고 있는 돈이랑 부모님한테서 받는 용돈이 전부였다. 근데 어차피 용돈이라봐야 한 달에 5만원이니까 크게 의미는 없고.


반면에 얘는 돈이 있어서 문제였다. 딱히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새끼는 아닌데 군대를 갔다 온 참이라 국민은행 앱 켜서 보여준다는 액수가 꽤 됐다. 물론 나도 옛날엔 남자새끼였기 때문에 저 군대에서 피 땀 눈물 흘려가면서 번 돈으로 염치없이 얻어처먹고 싶진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냥 대실패였다. 난 대단히 염치없는 새끼고 친구가 피 땀 눈물 흘려가면서 번 돈으로 얻어처먹고 있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라 나 수능 끝난 이후로 적어도 스무 번은 넘게 만났는데 그 스무 번 넘는 걸 죄다, 어휴.


미안해서 고개도 못 들 정도라 지금 고기도 내가 굽고 있다. 불판에서 자글자글 피어오르는 위가 개 꼴리는 미친 사운드를 바라보면서 난 잠시 집개 놀리는 걸 쉬고 신세 한탄을 했다.


"이 나이 쳐먹고 수능 본 내가 병신이지... 하. 재수를 내가 왜..."


"그러게 수능 보지 말고 원래 다니던 데로 재입학하라니까."


"그냥 객기 한 번 부려보고 싶었다고. 어차피 대학교 다시 가기로 한 거 그 똥통학교보다 좀 더 좋은 데 가면 좋을 거 아냐. 그 망할 개새끼 다니는 곳보단 나은 곳으로! 아 썅."


"그건 아는데, 그래서 이번에 좋은 데 합격했잖아. 수강신청도 올클했고, 개강만 하면 되잖아. 뭐가 문젠데?"


"돈이 없잖아 돈이!"


"아, 돈이 없으니까 이번에도 내가 사야―"


"이 씨발놈아!"


대화는 왜 계속 원점으로 회귀하는가. 당장이라도 이 집개라도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게 차마 저 새끼 면상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참았다. 왜 쟤는 이렇게 날 못 사줘서 안달인 거야. 이젠 짜증이 날 정도다. 물론 그럴 자격 따위 없다는 건 잘 안다.


아, 그리고 집개. 고기 안 탔나 하고 문득 생각이 들어서 고기 밑면을 잠시 들어봤더니 타긴 개뿔 아직 안 별로 안 익어 있었다. 이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상황인 걸까, 왜 이렇게 안 익냐고 욕을 해야 하는 상황인 걸까.


미친 척하고 소주라도 시켜? 근데 소주 한 병에 5000원이네. 나나 얘나 주량이 평균 이상은 되는 터라 술 먹고 취하려면 내 지갑부터 거덜나겠다 싶었다. 음, 안 시켜야지.


아니, 얘가 술 먹고 싶을 수도 있는 거잖아. 걍 시켜?


안 시켜야지. 나는 지폐 한 장에 호달달 떨어야만 하는 그지새끼니까요. 여기 점장님한테는 죄송합니다. 저흰 알뜰하게 고기만 먹고 갈게요.


"하아아아아..."


"왜 한숨이야."


"근심이 많다..."


"그럴 수 있어."


"그러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어."


"내 운명이지..."


"운명은 아냐."


"여자가 쳐 된 것부터가 운...!"


순간 버럭해서 목소리가 높아져버린 걸 깨닫고 나는 재빨리 입을 닫아버렸다. 나쁜 의도로 목소리를 높인 건 아니었지만, 내가 걸려 있는 이 TS 증후군이라는 게 딱히 남이 알아서 좋을 건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한테 들리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니다. 평일이라 그런 건진 몰라도 사람은 적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춘 채로 다시 입을 뗐다.


"아니 근데 생각해 보면, 이렇게 '여자가 됐다' 이지랄하는 것도 말이 단순하지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이거 얼마나 됐냐... 벌써 4년 가까이 됐잖아. 내가 씨발 4년 동안 아주 개같이 고민을 해 봤거든? 이건 그냥 신이 억까하는 거야.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 신이 작정하고 억까하는 게 아니면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신이 억까하는 거면 운명 맞지 이 망할!"


"...인정할 수밖에 없긴 하네. 억까는 뒤지게 억까였으니까."


"그래 씨발! 내가 이거 때문에 친구라는 새끼들 전부 연락 끊기고, 새내기 대학생활부터 존나게 꼬여가지곤 정신병 걸리게 만들고, 이 씨발 우울증이랑 망상장애랑 공황장애는 자퇴 안 하고는 못 배기게 칼 들고 협박하고! 심지어 다 낫지도 않았어. 내가 지금 뭔 생각 하고 있는 줄 알아? 내가 이 지랄 하는 거 보고 네가 지금 날 얼마나 쓰레기로 보고 있을까..."


그렇게 열변을 토하다가 갑자기 고기 생각이 났다. 지금은 뒤집을 타이밍인가?


"오, 이 정도면 뒤집어도 되겠다."


치이익. 미친 사운드다 진짜. 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고깃집 사운드냐, 와. 진짜 미치고 돌아버리겠네.


"그런 생각을 내가 왜 하는데 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좀."


"......"


뜬금없이 진지해진 그 말에 나는 내 친구의 눈을 잠시 뚫어지게 쳐다봤다.


언제나 그랬듯 거짓 하나 없는 눈빛이다. 생각해 보면 얘는 옛날부터 항상 이랬다. 농담은 해도 거짓말은 안 치고, 항상 착해 빠진 듯이 행동하고 말하고 날 대해주고.


1년 반 동안 군대 갔다와놓고선 하나도 안 변했구나.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던 성격 그대로다. 7년째 이 자식은 한결같이 상냥하기만 하다. 신기한 놈이다.


나는 7년 전과 같은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나마 같은 걸 생각해 보자면 내 가족이랑, 그리고 얘가 내 친구라는 사실 정도뿐.


"하."


나는 고기를 마저 뒤집었다.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나는 행복했다. 망할 녀석을 향해 말을 내뱉는다.


"넌 진짜 좋은 친구야. 알아?"


"그 말만 백 번은 넘게 들은 것 같은데."


"사귀자, 우리."


"그건 한 수십 번쯤 했냐?"


"씨발."


고기는 전부 뒤집어졌다. 나는 반쯤 절망하며 집개를 탁자에 약하게 떨구고선 냅다 엎어져버렸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가기 시작했다.


"또 나만 진심이지? 어...? 진짜 내가 이 말을 진심으로 하고 있다는 걸 몰라서 그래?"


"진심이라는 태도를 보여 봐."


"제대로 분위기 잡고 고백했을 때도 깠잖아 이 새끼야! 내가 더 뭘 해야 하는질 모르겠다고! 아니, 안다고 해도 안 받아줄 거잖아!"


"잘 아네. 포기해 그냥."


"이 씹..."


화내고 욕지거리를 해 봐야 나만 손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그 방향이 적어도 내 앞에 있는 개자식을 향하고 있진 않은데, 정확히 어딜 향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공허하게 화만 내는 느낌이다.


싫다, 진짜.


"후우."


이번에는 분위기고 뭐고 없는 상황이라 가볍게 말하긴 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농담으로 툭 뱉은 말도 아니었거니와 처음 해본 말인 것도 아니었다. 이미 진지하게 몇 번이나 말했던 거였다. 전부 까였고, 그래서 이제 와선 그냥 나만 매달리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아니, 이제 와서가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나만 매달리고 있었던 거겠지.


여자가 된 지 거의 4년이 다 되어 간다.


그렇게 되고 나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지금 자세히 생각해내고 싶진 않다. 다시 생각해 봐도 기분 더러워지는 일들밖에 없었으니까. 친구들 연락은 죄다 끊겨버리고 대학생활 꼬이고 정신병 걸려서 자퇴하는 과정에서 대체 무슨 좋은 일이 있었을까. 한평생 멀쩡했던 놈이 망가지는 데에는 한순간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런 내 옆에서 계속 친구 자리를 지켜줬던 유일한 사람이 이 녀석이다. 내가 여자 된 것 따위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나한테 뭔 일이 있었든 그냥 넘어가주고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기도 했고.


그냥 계속 옆에 있어 줬다. 그렇게 계속 옆에 있어 주다가, 나쁜 일들이 전부 일단락되고 내 상태도 조금 안정세를 찾았을 때쯤에 군대로 훌쩍 떠나갔다가 되돌아왔다. 떠났다곤 해도 군대 핸드폰이 많이 풀린 것 같아서 연락은 자주 했으니 크게 빈 자리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얘한테 특별한 감정이 들기 시작해버린 것이었다. 감정 자체는 얘가 군대로 떠나버리기 전부터 오묘하게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신하게 된 건 꽤 최근이었다. 되돌아온 모습을 보니 비로소 확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해야 할까.


여자로 살아온 기간이 꽤 길어지기도 했고 앞으로도 평생 이럴 거라는 걸 알아서, 이제는 그런 걸로 혼란스러워지진 않았다. 애초에 이젠 확실히 나 자신을 여자라고 정의한 채 살아가고 있으니까, 새삼스럽게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이상할 건 없었다.


해서, 전부 다 생각해 보고, 고민을 한 끝에 얘한테 고백을 박은 건데.


차였어.


또 고백했지만 또 차였고.


지금 또 차였지. 고개를 드니 하늘이 까맣다. 아, 아니, 저건 천장이구나. 아무튼 까맣다.


난 정말 여러 각오를 하고 고백한 거였는데 진짜 왜 이렇게 된 걸까. 이젠 그냥 명륜에서 고기 먹으면서 고백 박고 또 차이고.


"여, 역시 내가 돈이 없는 게 문젤까? 응? 맨날 너한테 얻어먹기나 하는데 좋은 인상이 있을 리가..."


"...넌 내가 그렇게 속물적인 인간으로 보이냐?"


"아, 아냐? 그러면 역시 내가 남자였기 때문이겠지? 확실히 나 고등학교 때까진 계속 남자였으니까... 아니, 다른 이유도 많겠지. 역시 그렇잖아? 옛날 일들이 일들이니까 솔직히, 내가 그렇게 청렴하다고 할 수는―"


"후우."


문득 앞에서 들려온 한숨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멈추고 굳어버렸다. 하지만 저 눈빛을 보니 일부러 그런 것 같았다.


녀석이 점짓 진지하게 말해오기 시작했다.


"이참에 확실히 하고 가자. 돈은 상관이 없고, 사주는 것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앞으로도 그럴 거고."


"......"


"그리고 옛날 일들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심지어 네가 남자였다는 사실도 나한텐 전혀 상관이 없다고. 솔직히 난 보이는 게 다라고 생각하거든. 나도 너 이젠 제대로 여자라고 생각해, 나도. 그리고 너도 널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런 건 진짜 아무짝에도 상관이 없는 거라고."


"...그러면 왜애..."


잠시 올려놓았던 고개가 다시 탁자로 처박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서 흘러나온 말은 사실 칭얼거림에 더 가까울 정도였다.


"왜... 안 받아주는데..."


누가 보면 소주 이미 세 병은 마셨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 따위 안 마셔도 그만치 취한 것처럼 행동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실 지금 기분도 소주 세 병 마신 거랑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너 나 싫어하는 것도 아니잖아... 나 예쁘기도 하잖아아... 그냥 그렇다는 건데..."


이렇게 되물어보면, 그 뒤로 되돌아올 말들은 모조리 비수가 되어 내 심장에 박힐 게 뻔했으니까. 나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물어봐야 하는 면도 분명히 있었다.


"너 안 꼴려 미친년아."


"이 개새끼가...!"


아 씨발 근데 이딴 식으로 쳐 나오네. 심지어 명백히 비웃음 섞인 목소리라, 정신이 번쩍 들어서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뭣도 아닌 것 가지고 목에 핏대를 세워 이야기하게 됐다.


"어, 네가 어? 봤어? 막 씨발, 내가 벗은 거 봤냐고! 뭣하면 이거 다 먹고 당장 텔 달려가가지고 어? 보여줘? 네가 핑두 이런 걸 야동 말고 봤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가 본데 이거 솔직히 내가 진지빨고 생각해도 나 몸은 괜찮―"


"아니, 아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닌데."


"...어?"


또 무작정 내 말을 끊고 들어왔지만 나는 어째 제대로 항의도 못 하고 또다시 얼어붙어버렸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니, 무슨 소리지.


"내가 모솔아다이기 전에, 네 친구거든?"


"...어어?"


"그러면 친구로서의 역할도 어느 정도 있는 거라고,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무슨 말이야. 뭐 네가 나랑 사귀면 안 되는 이유 같은 거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그거 맞는데?"


"어?"


아리송하게 답해오길래 그냥 가볍게 생각나는 대로 말했던 건데, 정작 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너무나도 허무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이, 맞다고.


뭐?


순간 어이가 없어서 멍청하게 눈만 찡그리고 있는데, 그걸 잠시 지켜보더니 말을 덧붙여 왔다.


"이대로면 나한테만 계속 기댈 게 뻔히 보이거든. 솔직히 말하면 그래."


"......!"


 ...아.


짐작 가는 부분이 있는 뼈 있는 말이라, 나는 무심코 이를 꽉 깨물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앞에 있는 친구의 표정은 일말의 변화 없이 한결같았다. 난 그게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저 눈빛이 나를 꿰뚫어보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이나 원망스러웠다.


"옛날에 너 그 꼴 됐을 때는 뭐 그렇다 치고 넘어갔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지났잖아. 너 최근에도 계속 나만 찾고 다니고 있다는 거 알아? 스스로 자각은 하고 있냐?"


"...그건 내가 고백하기 전이나 후나 똑같잖아."


"그 전후가 똑같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 3년 4년 전이랑도 똑같으니까 하는 소리거든. 이대로 정말로 사귄다고 치자. 너 그러는 게 심해지면 심해졌지 더 나아질 거라고 말할 수 있어?"


"......"


"못 하잖아."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일말의 양심이라는 게 아직 있긴 했나 보다. 차마 안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얘밖에 없었고, 지금도 얘밖에 없다. 가족이 있긴 하지만 가족은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할 뿐더러 그런 이야기를 정말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조차 아니었다.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었다. 친구이기 때문에 더 의지할 수 있는 것도 분명히 있었고, 내 눈 앞에 있는 친구가 바로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과하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내 수능이 끝난 이후로 내가 얘를 일방적으로 불러내서 만난 게 스무 번이 넘는다. 아무리 집 근처 사는 친구라 해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하물며 사귀는 사이도 아니거니와 사귀자고 고백해서 까인 관계인데도 그렇다. 얘는 그렇다 쳐도 나 자신부터가 극도로 집순이 타입인데도 이러고 있는 거다. 횟수부터가 많다.


"...맨날 불러도 된다고 했던 건 너잖아..."


"맨날 불러도 당연히 되지. 나는 이렇게 집 밖으로 나오는 것도 좋아하고, 복학 전이라 한가하고, 네 친구니까. 그런데 넌 의도가 불순한 게 보이잖아."


그리고 의도조차 불순하다. 내가 얘를 좋아하는 건 둘째 치고, 나는 그냥 옛날부터 얘를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제대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얘밖에 없었던 날들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굳어져 있었다.


제대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얘뿐인 건 여전하지만, 상황은 정말로 많이 변하고 있다.


얘는 군대를 전역했으니 이제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을 해야 한다. 대학교 고학년이라는 건 그 무게부터가 다르다. 곧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기 때문에. 물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지만 얘도 그럴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내가 행동해버리면 안 된다. 민폐다.


나는 아무튼 대학교에 새로 입학해서 곧 다니기로 되어 있다. 지난 3년 간의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하고,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한 마리 새가 되어 새로 날개를 휘젓기 위해 다시금 투쟁해야 한다는 소리다.


변곡점이다. 변해야만 했다. 우리는 변해야만 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변을 경계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뿐만 아니라 내 앞에 있는 내 친구조차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나의 정체(停滯)를, 내 친구로서.


"아무튼 그렇다고."


"...그게 다냐."


"그게 다야."


나도 알고는 있었다. 제대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얘뿐이라는 사실이 굳어져 있긴 했지만, 그걸 또 당연하다고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마음이 너무 찔리고 있었다. 걸리는 게 너무 많아서 서러울 정도였다.


나를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나 스스로가 내고 있는 목소리까지 무시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하."


취하고 싶다. 본능에 몸을 모조리 맡겨버리고만 싶다. 파도에 떠밀려 도착하게 된 종착지를 확인하고픈 마음이 내 마음 속에 거대하게 눌러앉았다.


내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내가 그러길 결코 바라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만 말해."


"뭘."


"넌 나 좋아하냐?"


"......"


다만, 마지막으로 확인하고픈 건 있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내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바라는 대로 될 수 있다면, 그때는.


이 감정을 이렇게 외면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적어도 싫어하진 않아."


답지 않게 조금 고민하던 내 친구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해왔다.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린데?"


"모솔아다가 너 같이 예쁜 사람의 고백을 거절하고서 아무런 감정이 안 들 수는 없다는 소리지."


"어머, 숨 쉬듯 플러팅을 거시네. 그러면 왜 차셨어요 이 씨발같은 새끼 씨?"


"고기 탄다."


"아니 갑자기 뭔 고기 얘기... 으아아니 진짜 타잖아 씨발! 왜 이 새끼 고대 화석으로 원시회귀하고 있냐?!"


적어도 나는 행복했지만, 이 한쪽 면이 검게 타버린 고기 녀석은 딱히 행복하지 않은 듯했다. 이런 젠장.


나는 집게랑 가위를 집어들고 곧장 성형수술을 집행하기로 했고, 그 꼴이 적어도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는지 곧 내 앞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냐?"


"성형수술. 아직 이 정도면 되살릴 수 있어."


"환자가 아마 그 한 명뿐이 아닐 텐데?"


"?! 야 너도 당장 집게랑 가위 들어! 뭐 해! 아, 아니 젓가락이라도! 빨리 고기 옮겨!"


"...허허."


정말로 어이가 없는 듯한 웃음소리다. 물론 나도 어이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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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라고 공미포 6662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