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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보고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엄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려고 노력했다.

좀 더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거짓 없이 당당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엄마 아들이니 당당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지 의도한만큼 제대로 나는 엄마를 당당히 쳐다볼 수 없었다.

나는 너무나 위축되어 있었다.

자발적으로 오지 않은 경찰서라는 공간이 주는 압박감, 집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에 얻은 심리적인 충격,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소외감, 그리고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변해버린 내 몸은 나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아이가 정말로 세희 씨의 자녀가 맞나요?"

경찰관이 다시 한 번 엄마에게 물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엄마는 혼잣말을 했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 한 거에요."

"세희 씨 자녀 분이 아니에요?"

"그게...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는 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자녀 분이 맞다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확실하게 말씀해주세요."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저한테 딸은 없어요. 아들 하나 뿐이에요."

"그럼 아니라는 뜻이네요.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전화번호를 잘못 불러줬나봅니다. 다시 확인해야겠네요. 세희 씨는 집에 들어가보셔도 좋습니다. 늦은 시간에 부른 점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경찰관은 엄마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내 앞에 앉았다.

경찰관은 한숨을 쉬고는 이번에는 제대로 전화번호를 말하라고 했다.

말투가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더 딱딱해졌다.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던 나는 경찰관의 말투가 바뀐 것을 느끼자 더욱 입을 열기 어려웠다.

경찰관의 반응은 안 좋아졌는데 나에게는 말해줄 전화번호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엄마가 경찰관에게 갑자기 말했다.

"잠시만요, 전화번호를 불러줬다고요? 저 아이가요?"

"네, 저 아이가 불러줬죠. 안 그러면 세희 씨한테 어떻게 연락을 했겠습니까?"

"혹시, 저 아이가 알려준 전화번호를 혹시 불러주실 수 있나요? 제가 아직 완벽히 확신이 안 가서요...."

경찰관은 이번에는 대놓고 들리게끔 한숨을 쉬었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기도 했다.

경찰관은 신경질적이지만 최대한 억누르는 것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확신이 안 간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아들밖에 없다고요. 그럼 세희 씨 자녀 분이 아니라는 뜻 아닙니까? 이 아이가 무슨 신생아입니까? 자식 얼굴도 못 알아보게?"

경찰관은 갑자기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세워 엄마 앞으로 데리고왔다.

그러고는 내가 엄마를 제대로 응시하도록 한 뒤, 나에게 물었다.

"이 분이 네 어머니가 맞으시니?"

"네, 네. 우리 엄마 맞아요. 진짜 우리 엄마에요."

나는 최대한 말을 더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의심받을 만한 틈은 조금이라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저기, 경찰관님. 정말 죄송하지만 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주실 수는 없을까요? 이야기를 한 번만 나누면 정확히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요, 이야기 할 것 없습니다. 그 확신 얘기도 그만 좀 하시고요. 이렇게 확신이 안 가신다고 계속 그러시면 그냥 아닌 거 아닙니까? 이만 돌아가세요. 저희는 세희 씨랑 더 이상 할 이야기 없습니다."

경찰관은 이제 억누르는 티조차 내지 않은 채 완전히 신경질적인 말투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경찰관은 듣지도 않고 다시 나를 데려가 자리에 앉혔다.

"어? 박 경사님. 아직도 이야기 안 끝나셨어요?"

그 순간 누군가 경찰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전에 우리 집에 와서 나를 경찰서로 데려온 그 경찰관이었다.

"어, 김 순경. 그래... 아직 얘기가 끝나질 않고 있다... 진술 듣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아, 그 애... 맞아요, 저도 이해 못 할 소리를 막 해댔어요. 그런데 이 분은 왜 여기 계세요?"

김 순경이라고 하는 경찰관은 엄마를 가리키며 박 경사라고 하는 경찰관에게 물었다.

"아니, 이 애 있지, 얘 진술 듣는데 이해가 당최 되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날 밝으면 사람 불러서 얘기 좀 다시 시켜보려고 했고 일단 지금은 부모님한테 데려가라고 하려고 했지. 그런데 전화번호 좀 불러달라고 해서 불러 준 전화번호로 전화했더니 이 분이 온 거야. 근데 이 분이랑 아는 사이야?"

"아뇨, 아는 사이는 아니고요... 이 아이가 무단침입했다고 신고 받은 집에 살고 계시는 분이에요. 신고자 분 아내 분이시고요. 저는 이 분한테 내일 서로 와달라고 했었는데 지금 와 계셔서 당황스럽네요. 그런데 박 경사님, 잠깐만요. 전화번호를 불러줬다고요?"

"너도 그 소리냐? 내가 이 애 부모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겠어? 당연히 물어본거지."

"아뇨, 그게 아니라 뭔가 좀 이상해서요. 박 경사님이 분명 이 아이 부모님께 연락드린다고 이 아이에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물어보셨고, 이 아이가 불러준 전화번호로 전화했는데 이 분이 오셨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게 왜?"

"제가 신고 받고 출동했을 때 이 아이가 저 분이 자꾸 자기 엄마라고 막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가 자기 부모님 전화번호라고 불러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이 분이 왔다는게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김 순경이라고 하는 경찰관이 그 말을 하자 모두가 그 경찰관을 쳐다보았다.

"맞아요, 저도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 아이랑 한 번만 이야기 하고 싶어요. 이상한 점을 물어봐야겠어요. 그리고 분명 저 아이를 데리고 가실 때 저 아이랑 이야기 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 했잖아요.

엄마는 김 순경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김 순경, 정말이야? 정말 그렇게 말했어?"

"네... 뭐, 그 때 시간도 많이 늦어가지고... 아파트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옆집에 민폐도 될 수 있으니까... 일단 이 아이는 데려오고 나중에 서에 오셔서 이야기 해보시라고 말씀 드리긴 했죠...."

"근데 지금 조사가 안 끝났잖아. 이 아이의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그렇다는 건 세희 씨가  이 아이랑 전혀 관계 없는 제삼자일 가능성도 있는데 무턱대고 이야기판을 깔 수는 없잖아."

두 경찰관과 엄마와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엄마는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나와 이야기 좀 하게 해달라고 경찰관들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엄마의 말을 쉽게 들어주지 않았다. 한참동안의 실랑이 끝에 박 경사라고 하는 경찰관이 해결책을 하나 제시했다.

"세희 씨, 좋아요. 이렇게 합시다. 이 아이랑 이야기하게 해드릴게요. 대신에 저도 옆에서 두 분이 대화하는 동안 같이 있겠습니다. 대화내용은 기록하고요. 그리고 대화가 끝나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세희 씨 혼자서만 집에 돌아가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좋아요. 이 아이와 이야기를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아요."

"좋습니다. 그러면 여기 앉으시죠."

박 경사는 내 맞은편 자리로 엄마를 앉혔다.

"그럼... 박 경사님. 저는 가 봐도 될까요?"

"그래. 가 봐도 될 것 같아."

김 순경이 떠나고 자리에는 나, 엄마, 그리고 박 경사 세 명만이 남아있었다.

"일단 두 분이 대화를 하시기 전에 세희 씨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세희 씨는 왜 계속 확신이 안 된다고만 말씀하셨나요? 대체 그게 무슨 뜻인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한테 딸은 없고 아들 하나 밖에 없어요. 그리고 저 아이는 지금 여자아이죠. 그런데 하는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제 아들 같은 거에요. 그러니까 저 아이가 계속 말하는 것, 자기가 갑자기 여자가 되었다는 말이 진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지금 저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이 어젯밤까지 제 아들이 입고 있던 옷이랑 똑같다는 점이랑... 아까 김 순경님이 말씀하셨던 제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점이나...."

"그렇지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네, 그래서 자꾸만 확신이 안 된다고 말씀드렸던 것이에요...."

"좋습니다. 그러면 일단 먼저 두 분 이야기를 나누세요."

드디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왔다. 나는 정말로 내 앞에 있는 엄마의 아들이고 거리낄 것은 전혀 없지만,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

"좋아, 네가 정말 내 아들 진우라면, 난 네 엄마겠지. 그렇다면 먼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있는대로 말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