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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이상 지진파 감지, 상황이 변했습니다!」

“··· HQ, 평범한 지진일 가능성은? 작전개시라고는 했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없습니다. 소규모에 지진파 위치상 목표가 맞습니다. 현재 진행방향은 북쪽으로 추정. 목표는 제주시 같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쪽은 손을 쓰기는 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폭탄은 당연히 촉매반응을 숨기기 위해 납으로 마감했고 이 자리에 모인 3명도 각자의 기를 숨겼다.

생각할 수 있는 건.

“외부요인? 고감찬 씨, 저희 둘이서 폭탄 하나를 짎어지고 하산합니다!”

“두 개라도 문제없습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장보라 씨는 저희에게 속도 관련 버프, 그리고 헬기에 타서 나중에 합류합니다. HQ, 장보라 씨를 운송바람. 그리고 예상등장 지점에 신호탄 요청!”

「헤이스트」

황금의 빛이 나와 고감찬을 감싸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는 각각 하나와 두 개의 폭탄을 들었다.

하나당 거의 100킬로에 육박하는 괴물이지만 우리에게 큰 문제는 없었다. 나무와 바위에도 부딪쳤지만 부서지는 것은 우리가 아닌 저쪽이었다.

달렸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주는 감각을 받은 채 전력으로 달렸다. 고감찬은 폭탄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광전사의 특성상 조금 느린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빠빠른 건지 조금 뒤처졌다.

아니, 그것보다 조금 귀찮은 게 있었다.

“하도현 씨! 저기 앞에!”

고감찬이 다급하게 외쳤다. 앞에는 절벽이 있었다.

“해결하겠습니다!”

나는 남는 손으로 부적을 들었다.

「급급여율령」
「상금격벽」

“개(改)!”

부적이 던져지고 주문이 펼쳐졌다. 내 의도대로 거대한 얼음의 벽이 길고 가늘게, 절벽 끝에서 땅까지 펼쳐졌다.

“타세요!”

끼이익!

압도적인 속도를 지닌 채, 얼음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진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죽음의 미끄럼틀이지만 나를 포함한 고감찬은 빠른 도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다.

그보다 슬슬 고동 녀석의 기가 감지되었다. 조금 기가 격한 것을 보니 무언가 ‘큰일’을 하고 있었다.

“고감찬 씨! 느껴집니까!?”

“으아아악! 씨발 말 걸지 마!!!”

아무래도 내 수제 미끄럼틀에 정신을 못 차리니 내가 해결해야 했다. 다시 부적을 들고 이번에는 그것을 씹어 삼켰다.

더욱 강화된 육체로 다시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미끄럼틀은 이미 끝났고 높지 않은 절벽을 몇 번이고 내려갔을 때.

“으아아아악!”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내 시야에서는 예비역으로 여기에 오지 않은 아이들이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어째서 여기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혼란해 해서는 안 된다.


그 의문을 머리에서 제거한 채.


나는 기가 뿜어져 나오는 땅굴 하나를 발견했다.


***



“공격해! 아니, 막으면서 뒤로 빠져!”

김보훈이 열심히 외치며 뛰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헤이스트와 힐링 홀리실드도 펼쳤지만···.

쨍그랑!

유리가 힘없이 깨지는 것처럼 맥없이 부서졌다.

“씨발, 대체 뭐야!”

일행 중 하나가 날아오는 공격을 방패로 막았지만 오히려 뒤로 밀려나며 그나마 있던 강철방패는 찢어진 가죽처럼 볼품없이 망가졌다.

“튀라니까! 조금만 뛰면 출구야!”

실제로 출구는 200미터 정도 떨어졌지만 그들에게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다.

“내가 견제할게! 그러니까 이 틈에!”

김유성의 활에서 녹색화살이 쏟아졌다.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지만 자신만의 갑옷으로 무장한 고둥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흐아아아압!”

하지만 성가신 것이 아닌 것은 아니기에 진격의 속도를 늦출 순 있었고 파티가 탈출할 시간은 벌었지만.

“···어?”

김유성이 고개를 잠시 돌리자 뒤늦게 이 좁은 굴에서 자신 하나만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퍼억!

고둥은 사격이 잠깐 멈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압축한 물대포를 쏘았다.

“아아악!”

물대포가 김유성의 왼팔에 적중했다. 반사적으로 전신에 마력을 집중해 팔뚝 살이 떨어지는 것으로 끝났지만 무기인 활이 부서져 버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유성의 자세가 무너져 쓰러졌다는 것이고 고둥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아아아!!!”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김유성은 엄마를 입에 담았지만 그녀가 이곳에 올리는 없고 그것은 김유성 본인도 알고 있었다.

차악.

그때였다. 김유성은 무언가가 자신의 등에 붙은 것을 깨달았다. 방금 붙었는데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 그리고 묘하게 익숙한 마나패턴.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김유성의 몸이 떠올라 뒤로 이동했고 그녀의 옆으로 무언가가 스쳐 가며 말했다.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검은 머리카락과 한기를 흩뿌리며 돌진하는 빙과의 모습은, 김유성의 뇌리에 단단히 각인 되었다.


***


「급급여율령」
「수갑빙(手甲氷)」

고둥의 껍질과 주문까지 얹은 내 주먹이 만나며 터널에 충격을 주고 붕괴 시켰다.

그러나 수십 톤의 바위를 분쇄하는 일격이라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역시 약점은 바닥인가?’

고둥이라는 생물학적 특성상 바닥까지는 갑옷으로 감싸면 이동하지 못하기에 그런 것이 없다. 게다가 장소도 엄청나게 좋지 않았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그럴만한 수단이 있다. 김유성도 빠져나갔고 이 근처에 느껴지는 기는 없다.

“저기, 선물 가져왔는데 받을 거야?”

삐빅♪

나는 폭탄의 금속레버를 돌려 폭탄을 발동시켜 나와 고둥 사이에 있는 땅에 박았다. 시한식이 아닌, 즉발식이며 나는 전신의 기를 끌어올려 폭탄에 추가로 주입함과 동시에 신체를 보호했다.

콰아앙!

순간 엄청난 압력과 함께 몸이 떠오르고 시야는 하얗게 변하며 귀가 먹먹해졌다. 그러나 사지는 멀쩡한 것을 넘어 다치지 않았다.

단지 하늘을 나는 부유감, 실제로 공중으로 떠올랐지만 자세를 잡았고 아래에는 고감찬이 나를 받으려고 양팔을 벌렸다가 나와 눈이 마주쳐 옆으로 비켰다.

“···젠장, 살아있군.”

“제가 원래 튼튼해서요.”

“그것도 그거지만 전 저놈을 말한 겁니다.”

고감찬은 추락하는 고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보다 바닥에도 갑옷이 있다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쿵!

거대한 충격이 대지를 진동시켰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역시, 그 정도로는 죽일 수 없던 것이다.

나는 품속에서 예비 무전기를 꺼냈다.

“HQ, 조금 꼬였지만 목표가 지상으로 나왔다. 지금부터 교전을 개시한다.”

「확인, 프리스트도 근처 안전지점에 1분 내로 강하시키겠다, 무운을.」

참 든든한 말이다. 빈말이 아니라, 누군가 내 싸움을 응원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조금의 충족감이 채워진다.

흙먼지 속에서 금속조각이 날아왔다. 이것을 막을까 했지만 버프를 받은 고감찬이 신속한 움직임으로 피하는 것으로 보아 나도 회피했다.

그리고 더 빠르게, 고둥을 향해 돌진해 녀석의 상태를 보았다. 예상대로, 전신에 내 기가 묻어있으며 바로 떨쳐내지 못해 보였다.

‘운이 좋게도 폭탄은 2개. 아니, 쓰지 않는 게 베스트인가?’

전투장소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 표식이 느껴졌다. 여차하면 쓰지만 일단 시도 먼저 하고 써먹어도 문제는 없다.

나는 확실한 틈을 만들기 위해 부적들을 펼쳤다.

「급급여율령」
「무저···.」

쐐애애액!

그러나 주문이 완성되기 전 쟁반 크기의 금속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나에게 쏘아졌고 그것을 피하느라 주문이 취소되었고 또다시 나를 향해 날아오는 금속들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그것보다는 원반이 날아온 방향이다.

“하도현 씨, 놈이 금속을 원격으로 조종합니다!”

“큰 것만 피하고 자잘한 건 씹을 수 있습니까? 영창을 생략하지 않고 공격할 테니 어그로 좀 끌어주십시오.”

“···해 보겠습니다.”

고감찬이 발을 구르자 전신의 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아마 광포화인가? 그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고감찬이 돌진하여 고둥을 가격했다.

빨리 끝내야 했다. 아이들도 아직 공격 범위 내에 있었다.

다시 전신의 기를 폭발시켰다. 맨살이 드러난 의장에 검은 타이츠가 내 기에 반응해 퍼지고 면사가 씌워졌다.

부적을 펼치고 위험해 보이는 금속들을 야구 타자처럼 쳐내며 금속파편의 비를 견디는 고감찬이 보였다.

집중하자, 빨리 끝내야 한다, 다음은 없다고 생각해라.

「빛조차 거부하는 깊은 곳의 기는 만년 넘게 맞힌 한과 같구나」
「멀리서 보면 공(空) 가까이서 보면 업(業)의 무게로다」
「그렇기에 나는 이 공에 내 업을 채우리라」

푸른 한기를 머금은 부적이 내 손 위로 뭉치고 압축된 끝에 검게 변했다. 뒤늦게 고둥 또한 나에게 공격을 가했지만 그런 자잘한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푸아악!

녀석은 마지막 발악으로 금속 공격은 고감찬에게 나에게는 물대포를 날렸지만 물대포는 나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피해요!”

「무저한옥」

내 외침에 고감찬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옆으로 피했으며 내 기에 절반을 투자한 검은 한기의 구슬이 고둥을 향해 발사되었다.

그 찰나의 순간 고둥이 기용할 수 있는 모든 금속을 모아 방어했지만 그것을 뚫고 고둥의 껍집에 커다란 균열을 선사함과 동시에 큰 폭탄이 터진 충격이 울렸다.

“쯧!”

완전히 뚫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정도 했다면 충분했다.

「스트렝스」

순간 따뜻한 기가 고감찬에게 변화를 주었다. 분명한 신성술이었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장보라가 늦지 않았었다.

“나이스 타이밍! 고감찬 씨!”

“흐아아아압!!!”

고감찬은 전신에 잔 상처를 가진 채 균열을 향해 전투망치를 휘둘렀고 붉은 피와 함께 금속들이 비산했다.

“고감찬 씨, 완전히 조집시다!”

내 말에 고감찬은 몇 번이고 망치를 내리쳤고 나 또한 검을 뽑으며 속살이 드러난 곳에 깊게 찔렀다. 그렇게 5번가량 확인 작업을 했을 시점에서 놈이 죽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고감찬과 눈을 마주쳤다.

“어어아!? 으아아아!”

순간 하늘에서 비명이 들려 올려보니 기척을 숨기며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장보라가 보였다.

어차피 원거리 서포터이기도 했으니 어그로가 확실히 끌렸다면 하늘에서 저렇게 버프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문제가 있다면.

“으아악!”

“어이쿠, 추락하네요. 뭐, 훈련된 군인도 아니니 당연한가?”

“나무에 걸리거나 각성자니 크게 다치지는 않겠죠. HQ, 목표사살 완료. 내단을 회수하고 복귀하겠다.”

「확인했습니다. 사체를 회수할 수거조를 투입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약간의 감사 인사를 받은 채 나는 속살에 거침없이 손을 넣어 안에 있는 내단을 잡아 꺼냈다.

“쓰읍, 이걸 먹으면 파워업이 된다고 했나요?”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전력원으로 쓰는 게 더 급해요.”

우리는 내단을 챙기고 무기에 묻은 고둥의 체액을 털어낸 뒤 어설프게 기척을 숨기고 있던 김유성 앞으로 갔다.

아이는 마치. 아니, 상처 입고 겁에 질린 소동물 그 자체였다.

“우선, 치료부터. 지혈을 할테니, 장보라 씨 좀 모셔 와 주세요.”